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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Mar 17. 2020

두 인생을 산 한 남자... 노예12년

노예12년


어디든 여행을 떠나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도 가득하고 또 새로운 곳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설레임도 온 몸을 적시우게 된다.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거다. 비단 새가 되어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마음이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 내가 원하는 곳에 닿을 때의 그 새로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이처럼 평소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닫아버린 채 자유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쉽게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가 나를 둘러싼 표면적인 의미의 자유가 아님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마음을 닫는다는 건 표면적인 의미와 반드시 상관관계를 가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자유가 차단되는 건 내가 가진 자유에 대한 마음을 자연스레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가게끔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우리의 삶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되고 말이다.    



1840년대 미국은 혼란의 격동기였다. 흑인 노예의 수입이 금지되면서 미국 내 자유 주(州)에 속한 흑인들을 몰래 납치해 노예 주(州)로 팔아넘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실존인물인 ‘솔로몬 노섭’ 또한 이러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의 굴곡 많은 인생사를 가장 강렬하게 비틀어대고 또 악센트 강하게 담아낸 작품, 영화 <노예 12년>(2013)은 그가 겪은 비참한 사회적 현실이자 비극적인 미국 역사를 향한 후대의 강한 경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암흑에 가까운 어두운 현실 속에서 희망의 빛줄기 한 자락을 찾아내고자 애를 썼다. 전혀 아름답게 비치지 않을 그의 노예 인생은 그러한 상황을 넘어 관객들에게 희망을 향한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갈구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이 루이지애나의 어느 가정에서 ‘플랫’이라는 이름의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처절함은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수많은 이유와 자신감을 드러내게끔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인물의 두 가지 삶의 채색은 누가 봐도 명확히 대비되는 부분이지만, 그가 겪은 자유에 대한 갈망은 그 자체로서 두 삶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부분이 됐다.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한 인물의 아픈 역사를 단순히 되새기는 게 목적이 아님을 화면 곳곳에서 드러낸다. 단순히 현실 속 고통에 빠져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내용이었다면 그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쉽게 지치고 말았을 거다. 그렇지만 스티브 맥퀸 감독은 화면을 그런 부정적인 요소들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처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자 애를 쓰는 그의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확연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측면이 쉽게 눈에 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치웨텔 에지오포는 여러 환경을 가진 주인들을 거쳐 가는 과정 속에서 솔로몬 노섭이 어떻게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지 그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고자 노력했다. 한 인간의 아픈 역사를 되짚고 사회 제도를 향해 쓴 소리를 날리는데 주력하기보다 자유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성취하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를 접할 때마다 그 의미가 새로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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