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글이 글처럼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머릿속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그 무언가가 여느 때와 같이 강렬한 메시지를 두드리고 있음에도 그 떨림이 손가락까지 이어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창작을 한다는 건 그 만큼 인내와 고통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비단 고귀하게만 느껴지는 ‘예술’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의 창작 과정은 나도 모르게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에서 태어난다 할지라도, 그 순간 또한 어쩌면 그 동안 쌓여온 내 인생의 일기가 만들어낸 정리법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히스토리를 눈앞에 펼쳐놓고 눈에 쏙 들어오는 한 구절을 제대로 집어내어 짜깁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현실을 배제하고 탄생할 수는 없다. 상상은 여전히 현실에 기반을 두니까 말이다. 내가 꿈꾸고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건 나의 찬란한 역사 속에서 태어난다. 그 찬란한 역사를 버리지 않고 내 품에서 안고 가는 건 나의 객관적인 숙명과도 가깝다. 정지영 감독의 90년대 작품 중 하나인 이 영화는 필자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한 점을 찍었을 정도로 보다 이상적이고 보다 구체적이다.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헤매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이를 통해 현실이 어떻게 이상이 되고, 이상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그 성장 과정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는 한 편의 성장 드라마에 가깝다. 두 명의 인물을 중심에 두고 그들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성장하게끔 만드는 건 ‘충무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이상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이 꿈꾸는 이상을 멀게 만 펼쳐놓기 보다는 점점 그 이상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선보이며 그 이상이 어떻게 현실화되고 구체화되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등장인물과 함께 내면의 움직임까지도 함께 이동시켜가는 성장 드라마라는 거다. 병석(최민수 분)은 물론 명길(독고영재 분)까지도 ‘영화’를 통해 학창시절을 보내고 성(性)에도 눈뜨고 사랑을 알게 되는 등 누구나 그렇듯 그들만의 청춘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성장한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됐을 때, 한 명은 이상에서 빠져나온 후이며 한 명은 여전히 이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다. 정지영 감독은 이 둘을 자연스레 대비시켜 관객들에게 삶의 두 가지 선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은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병태(고정일 분)의 시각에서 바라본 석대(홍경인 분)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 만들어 낸 현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글이 글처럼 써지지 않을 때 가끔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품이다. 단순히 개성 강한 두 인물의 청춘을 읽어내려 한 성장 드라마라는 측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꿈꾸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채색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그 구분을 짓는데 노력하게끔 만든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 미래의 변화를 통해 그 시기에 따라 ‘영화’라는 매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가고 있는지를 세밀한 시각에서 그려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그 속에 그들이 느끼고 겪게 되는 ‘청춘’을 리얼하게 선사함은 관객들이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전히 강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만한 캐스팅도 없다는 생각이다. ‘영화’에 빠져 그들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들의 시각과 관점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한 마디로 ‘영화’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최대한 자연스럽고 가깝게 그려내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감상할만한 가치를 지녔다. 유년기에 자신의 인생에 생채기를 낸 흔적은 성장한 후에도 여전히 이를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생채기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 삶을 구성하고 만들어낸 내 인생의 색깔과 같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색으로 채워졌는지 궁금할 때, 이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통해 이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