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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라도 불법으로 체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14년 간의 외국 체류기간 동안 수없이 듣던 말이다.
내 나라에서는 학교에 입학하면 그냥 학생이었는데 외국인으로 살아보니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등록금 내역과 서류들을 제출하여 학생비자를 받고 때가 되면 연장을 해야 법적 거주에 문제가 없었다. 내가 누구이고 왜 거기에 있는지 목적을 가진 합법적 좌표값이 필요했다
물론 캘리포니아만 하더라도 서류화 되지 않은 이민자의 수가 상당하고 상점, 식당, 마켓 어디서나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불법체류는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고 후에 취업 등으로 영주권을 신청할 기회가 올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구멍으로 남을 수 있기에 단 하루의 공백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다른 나라에서 법을 지키며 사는 외국인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지냈다.
유학생이던 남편과 나는 스튜디오시티 근처에 있는 이민법 변호사 사무실을 주기적으로 찾아갔다. 전형적인 화이트 칼라, 오피스 룩의 키가 훤칠하고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50대 후반 즈음의 변호사가 우리를 위해 모든 서류 일을 해주었다.
분명 우리가 의뢰인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때면 괜히 주눅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려운 영어를 못 알아듣지는 않을는지, 빠트린 서류는 없는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항상 노심초사, 긴장이 되었다.
Alien.
서류상 나의 법적 신분 상태는 “에일리언”이었다.
에일리언하면 민머리에 까만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괴생명체가 떠오른다. 또 시고니 위버가 불굴의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그 유명한 영화 시리즈가 생각난다. 대체 나의 어디가 외계인이라는 건지 썩 기분이 좋지 않고 합의 없이 그렇게 분류되는 게 못마땅했지만 “그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 다른 세계 태생이자 잠시 방문 중인 외국인 정도로 본다는 거는구나라고 이해해 줬다. 다시 말하면 일시적 거주가 가능한 외국인 또는 이방인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 합법적으로 나를 증명하며 체류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이었다.
5번 고속도로를 타고 엘에이에서 샌디에이고 방향으로 남쪽을 향해 운전해서 내려가다 보면 아주 생소한 도로 표지를 하나 보게 된다. 샛노란 배경에 한 식구처럼 보이는 부모와 양갈래 머리를 한 어린 여자아이가 허겁지겁 뛰어가는 그림이다.
캘리포니아를 통해 불법으로 국경을 통과해 미국으로 넘어오는 이민자들이 도로 위에서 차와 충돌하여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기에 위험을 경고하는 표지판이다.
앞이 아닌 땅을 보고 달리는 남자에게서 불안함과 위태로움이 느껴지고 엄마로 보이는 여자에게 손목이 잡힌 채 종잇장처럼 휘적거리며 매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이 지금 봐도 애처롭고 급박해 보인다.
보통은 고속도로 표지에서 사슴과 같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사람이, 그것도 한 가족이 그렇게 그려져 있는 모습은 이상하고 슬프다 못해 참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 또한 낯선 땅에서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어서였을까? 노란 네모 칸 안에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이 실루엣으로만 존재하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원하고 바라기에 익숙하고 소중한 것들을 떠나 낯선 땅에서 애를 쓰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이는 환경 속에서 정말로 꿈꾸던 것들을 잘 찾아가고 있는 걸까?
표지판 속의 세 사람이 대변하는 수많은 이민자들과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다행히 이 불법이민자 주의표지판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불법이민자 숫자가 급격히 감소한 데다가 끊임없이 인종차별적 이슈로 문제가 되고 있었기에 2018년 이후 마지막 표지까지 다 철거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인 스팅의 세계적 히트곡, ‘잉글리쉬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옇고 두터운 안개 같은 그의 목소리가 무척 쓸쓸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I don’t drink coffee I take tea my dear
커피 말고 차로 마실게요
I like my toast done on one side
토스트는 한쪽만 익힌 걸 좋아해요
And you can hear it in my accent when I talk
그리고 내 억양을 들어서 알겠지만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나는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랍니다
See me walking down Fifth Avenue
5번가를 걷는 나를 보면
A walking cane here at my side
곁에 지팡이를 짚고 있을 거예요
I take it everywhere I walk
어딜 가나 가지고 다니거든요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나는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랍니다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아 나는 이방인. 합법적인 이방인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에요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아 나는 이방인. 합법적인 이방인이에요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에요
legal alien.
합법적 이방인.
이 영국인도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꼈구나!
생각해 보니 꼭 그 나라 언어가 유창하지 못해서, 생김이 다르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15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첫 2-3년 동안 외국생활에서 느꼈던 낯섦, 이질감과 당혹감을 내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느꼈으니 말이다. 한국말도 하고 생김도 비슷한데 오히려 그래서 더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 차라리 내가 외국인이라면 적응하기가 더 낫지 않을까 싶은 희한한 생각도 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고독감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스스로 그런 느낌에 더 빠져들고 위축된 면도 있다. 어쩌면 내 것을 고집하느라 마음을 열지 못한 채 당분간 이방인으로 지내기를 자처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환경에 가능한 한 빨리 적응하고 변화되어야 할 것 같은 초조함과 동시에 이제껏 옳다고 믿으며 살아온 삶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 태도와 방식 등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잃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전 것을 꼭 쥐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타지생활에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오늘도 우리는 길을 나서면 수많은 타인들 사이에 섞여 걷는다.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 희로애락이 담긴 자기만의 인생 페이지들을 지나온 수없이 많은 사람들. 수없이 많은 낯선 세계들을 마주한다.
자신과 비슷한 지점을 발견할 때 안도하며 자연스레 마음을 열기도 하고 생소하고 낯선 모습에 지레 물러설 수도 있다.
서로의 삶에 놀라움으로 경의를 표하기도 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때로 분노하고 경계한다. 위로와 공감으로 서로의 거리를 좁혀보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냥 두기로 하며 그렇게 모두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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