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메탈계의 시인, 주체할 수 없는 저항정신
랩메탈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의 파괴력,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욕설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1990년대 인종 차별을 부르짓는 장르가 힙합뿐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멤버인 로차는 멕시코계로 어린 시절 인종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이들의 외침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매력적이면서 정치적 의식이 있는 데뷔였다. 로차는 밥 말리의 카리스마와 척 디의 랩 스타일을 섞어 놓은 진짜 스타다. 그의 랩은 가차 없고, 음악 자체도 터프하다.’ - 2002년 12월 1일 『Los Angeles Times』
이후 RATM은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을 지지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EZLN은 멕시코 치아파스 주의 마야계 원주민들에 대한 토지분배와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난 반정부 투쟁단체다. EZLN은 1994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현재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보이고 있다. EZLN은 무장을 한 투쟁단체지만 특이하게도 평화시위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한다.
RATM의 두 번째 앨범 《Evil Empire》는 첫 앨범 발매 4년이 지난 1996년 3월에야 발매됐다. 《Evil Empire》 역시 정치적 메시지가 가득한 앨범이다. 로차는 당시 『MTV』와의 인터뷰에서 “《Evil Empire》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비판한 것에 대한 RATM의 시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미 소련은 수년전에 해체됐기에 뒷북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Evil Empire》는 당당히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Evil Empire》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사악한 제국이다. 여기서 제국은 미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실상 미국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앨범이었다. 앨범 발매 후 RATM 멤버들은 『Saturday Night Live』에 출연해 성조기를 거꾸로 메달아 펼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당황한 방송국 직원들은 성조기를 끌어내리고 RATM 멤버들을 무대에서 쫓아냈다. 직원들은 방송국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는 했지만 훗날 방송을 이어가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9년 7월 우드스탁 콘서트에서는 아예 성조기를 불태워버렸다. 이는 커머퍼드의 계획으로 알려졌으며 마지막 곡인 <Killing in the Name>을 부르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날 공연에는 메탈리카, 림프 비즈킷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함께했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온통 RATM을 향했다.
1999년 11월 발매된 RATM의 세 번째 앨범 《The Battle of Los Angeles》도 당당히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수록곡 <Calm Like a Bomb>은 영화 『The Matrix Reloaded』에 삽입되는 등 록 마니아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평론가들에게도 인정을 받아 『Rolling Stone』과 『Time』은 1999년 최고의 앨범으로 《The Battle of Los Angeles》를 꼽았다.
앨범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곡은 <Guerrilla Radio>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놓고 알 고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가 하면 무미아 아무자발의 무죄를 주장했다. 아무자발은 블랙팬서 활동가 출신의 기자로 1981년 백인 경찰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당초 아무자발의 사형은 1999년 말 집행될 예정이었지만 이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돼 현재도 복역 중이다.
‘누가 은행을 가득 채우나. 누가 파티에 참여하는가. 고어를 위해 아니면 마약왕의 아들. 저 위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끈을 잘라버려. (…) 무미아의 자유를 외치자. 누가 연방 정부 파일을 체크했는가. 너희 모든 펜 악마들은 그 재판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알잖아. 돼지들의 군대는 내 스타일을 조용히 만들려 하고 있어.’ - <Guerrilla Ra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