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메탈계의 시인, 주체할 수 없는 저항정신
RATM의 앨범은 연이어 성공하고, ‘좌파밴드’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의 화제성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가 오래간 것은 아니었다. 로차가 2000년 RATM을 탈퇴하자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로차는 당시 『MTV』와의 인터뷰에서 탈퇴 이유에 대해 “밴드로서 모인 우리 네 명의 열망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내 생각이 우리의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생각을 악화시키고 있다”라며 “나는 음악가로서나 활동가로서나 우리들의 일에 매우 자부심을 느끼고,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결속력을 표현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로차가 탈퇴하자 모렐로와 커머퍼드, 윌크, 세 사람은 새로운 보컬을 찾아야만 했다. 한때 오지 오스본의 백밴드가 되는 고려했지만 그들은 사운드가든 보컬 출신 크리스 코넬과 함께 ‘오디오슬레이브’라는 밴드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오디오슬레이브의 첫 앨범 《Audioslave》가 빌보드 차트 7위를 차지한데 이어 이어진 앨범 《Out of Exile》과 《Revelations》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해 RATM 시절 못지않은 인기를 이어갔다.
‘좌파밴드’라고 불리던 RATM과 달리 오디오슬레이브는 정치적인 색깔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코넬이 지나친 정치색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정치와 아예 거리를 둔 것은 아니고 이라크 전쟁 같은 큰 사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했다. 오디오슬레이브는 2003년 3월 할리우드 공연에서 “1 갤런 당 얼마나 많은 이라크인이 필요한가”라며 “텍사스 근처 마을에서 얼간이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수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모렐로는 이정도 저항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오디오슬레이브와 별개로 나이트워치맨이라는 개인 밴드를 조직해 활동했다. 순전히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활동이었다. 나이트워치맨은 2000년대 중반 앨범 발매 대신 공연 활동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클래시, 브루스 스프링스틴, 펄 잼 등과 함께 앨범 《Songs and Artists That Inspired Fahrenheit 9/11》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녹음 작업에도 참여하기 시작했고, 2007년 《One Man Revolution》, 2008년에는 《The Fabled City》를 각각 발매했다. 차트 성적은 별 볼일 없었지만 애초에 상업성이 아닌 정치적 메시지 전달을 위해 만든 앨범이었다. 『Allmusic』은 《One Man Revolution》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다른 포크 멜로디처럼 이 앨범의 멜로디도 친숙하다. 모렐로는 복잡하거나 혁신적인 것을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는 그 자체에 대해 시도했고, 그 자체에 대해 나아갔다. RATM의 노래 <Voice for the Voiceless>처럼 말이다.’ - 2012년 1월 9일 『Allmusic』
그러나 코넬 입장에서는 오디오슬레이브를 놔두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모렐로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코넬은 정치적 색깔이 짙은 멤버들과의 성격도 맞지 않았다.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지다가 코넬은 2007년 2월 오디오슬레이브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코넬이 밝힌 탈퇴 이유는 ‘음악적 견해 차이’와 ‘해결할 수 없는 성격 차이’였다.
코넬의 탈퇴 후 음악팬들 사이에서는 RATM 재결합설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모렐로와 로차는 RATM 해체 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사이였기에 재결합설이 나오는 게 일상한 일은 아니었다. 또 모렐로와 코넬의 갈등 원인이 성격 차이였던 반면 로차는 모렐로 못지않은 반항아였기에 성격적으로도 맞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