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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Sep 13. 2022

[반항의 대중음악가] 톰 모렐로④

랩메탈계의 시인, 주체할 수 없는 저항정신

  정치적 열망으로 가득한 모렐로와 로차는 2007년 4월 『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공연에서 다시 뭉쳤다. 원년 멤버 그대로의 RATM이 재결합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공연 뒤편에는 EZLN 깃발이 걸려있었다. RATM은 이후 『Rage Against the Machine Reunion Tour』라는 이름을 건 공연을 시작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등 미국 지역은 물론이고, 일본, 호주, 독일, 영국, 프랑스, 칠레, 브라질 등 세계 전역을 돌아다녔다. 

  RATM은 이 시기 다시 한 번 파격 행보를 보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8년 9월, 공화당은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엑셀에너지 센터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정후보로 지명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열었다. 당시 초강력 허리케인 ‘구스타프’가 미국 남부 지역을 강타해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았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도 전당대회 대신 구스타프로 피해를 입은 텍사스주를 방문했다. 

  전당대회 둘째 날이었던 2008년 9월 2일, 엑셀에너지 센터 바로 옆에서 록 공연이 열렸다. 공화당을 반대하는 미국 시민들이 모인 일종의 항의 공연이었다. RATM은 당연히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았고, 무대 위로 올라가 공연을 하려 했다. 그러나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이 RATM의 공연을 저지했고, RATM은 무대 아래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RATM은 이날 밤 시민들과 함께 가두행진에 참여했다. 

  다음날인 9월 3일, 인근에 위치한 타겟센터 종합운동장에서 RATM의 공연이 열렸다. 공연의 주요 목적은 당연히 공화당 비판이었고, 공연 후 흥분한 관객들은 반공화당 가두행진 시위를 벌였다. 이날 경찰에 체포된 사람만 100명이 넘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RATM은 민주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시위대를 거리 한쪽으로 몰아넣었고, 스무 명 정도의 팬들만 현장을 빠져나왔다. 경찰은 후추 스프레이를 동원해 시위대를 격파했다. 체포된 사람을 감옥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총 두 대의 버스가 필요했다. 공화당 전당대회 덕분에 동네는 야생과도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 2008년 9월 4일 『Rolling Stone』 


  RATM은 이후에도 전쟁 포로들을 수용한 쿠바 관타나모 감옥의 폐쇄를 요구하는가 하면 브라질 공연에서는 토지분배를 요구하는 농민들과 함께 행동했다. 콜트기타 해고 사태를 비판한 것도 이때쯤이다. 재결합 후 앨범은 내지 않고, 공연과 사회운동에 몰두하다보니 일각에서는 RATM을 음악가가 아닌 사회운동가로 분류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11년 이후 RATM 멤버들은 사회활동보다는 각자 솔로 활동에 매진했다. 모렐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E스트리트밴드라는 팀을 조직해 활동했고, 오랜만에 나이트워치맨 이름으로 앨범 《Union Town》과 《World Wide Rebel Songs》를 발매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RATM 멤버인 모렐로, 커머퍼드, 윌크에 더해 퍼블릭 에너미의 척 디와 디제이 로드, 사이프러스 힐의 비 리얼 등 여섯 명이 모여 프로펫츠 오브 레이지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조직한 것이었다. 로차는 개인 활동을 이유로 프로펫츠 오브 레이지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일로 모렐로와 로차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소문도 있지만 공식석상에서 서로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프로펫츠 오브 레이지는 2016년 5월부터 10월까지 『Make America Rage Again Tour』라는 이름의 공연을 펼쳤는데 공연장에서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반대하는 목소리로 넘쳐났다. 이들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프로펫츠 오브 레이지는 2017년 앨범 《Prophets of Rage》에서 울분을 토해냈다. 《Prophets of Rage》는 빌보드 차트 16위를 차지해 프로젝트성 밴드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모렐로와 RATM은 사회운동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음악가로서의 존재감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RATM은 2000년 앨범 《Renegades》 이후 20년이 넘도록 앨범을 발매하고 있지 않다. 2020년 RATM의 세계 공연이 예정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그 사이 다른 유명 밴드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RATM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RATM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당연히 그들의 음악이었다. 모렐로는 1990년대 지미 헨드릭스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기술을 구사하는 기타리스트였다. RATM이 데뷔한 1990년대는 헤비메탈의 유행이 끝난 시기였음에도 랩메탈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빌보드 정상에 오른 것은 당연히 그들의 실력덕분이었다. RATM이 메탈계의 밥 딜런으로 불려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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