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연 Feb 13. 2022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월가 기업문화에 대한 오해 정리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직장에선 보이는 데로 평가를 받더라. 한국에서처럼 너무 겸손 떨다 보면 오히려 이뤄낸 성과에 비해 보이는 것이 적어서 본인 손해로 돌아온다. 조금 포장이 필요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쇼맨십을 보여줘라.'다소 편향적인 관점일 수도 있지만 본 저자는 이러한 사고를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해온 한인 커뮤니티 속에서 특히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느낀다. 물론 한국 기업 문화에서도 겸손이 무조건적으로 좋다고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IT강국인 한국이 세계적으로 투자금을 더 유치하기 위해서는 겸손보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당시 구글 창업지원팀 파트너십 및 프로그램 수석 매니저였던 Bridgette Beam의 6년 전 주장도 한국 창업계의 투자금 유치 전략에 한몫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최고라 여기고 투자자들에게 공격적으로 어필을 해야만 글로벌 무대에서 관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은 겸손보다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Bridgette Beam, 2016)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사원에게 겸손하지 말고 업무 성과를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알려야 한다는 조언을 자신 있게 해 줄 수 있는 직장 내 상사는 찾기 힘들 것이다. 반면에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고 하면 미국 기업문화 배경에 맞추어 인정받고 돋보이기 위해서는 너무 겸손하려 하지 말고 본인 성과에 대해 거침없이 보여주라는 조언을 종종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조금 과장된 포장을 곁들인다 할지라도). 실제로 본 저자가 첫 정규직을 위해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 주변에서 받은 많은 조언과 셀 수 없을 정도로 찾아본 유튜브와 블로그 글 속에서 대부분 공통적으로 언급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 기업 문화 중 월가는 각 직원과 그 직원이 속해있는 부서, 그리고 회사 전체의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모든 직원을 매년 평가한다. 그 어느 업계보다 meritocracy를 (능력주의) 강조하는 월가에선 이 퍼포먼스에 따라 매년 한 번씩 있는 보너스가 (성과금을 뜻한다) 좌지우지하며 이 보너스는 기본 연봉의 40%에서 100%가 넘는 엄청난 범위 속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더 치열한 점은 같은 부서의 같은 애널리스트 그룹이라고 하더라도, 상대평가를 통해 직원마다 랭킹이 주어지며 이에 맞추어 보너스가 다 다르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사무실 내 바로 옆 자리에서 매일 키보드와 마우스를 부여잡고 밤낮을 함께 버텨온 동기랑 보너스가 무려 60% 이상 차이 난다고 생각해보자. 생각만 해도 매우 쓰릴 넘치면서 잔인한 시나리오다. 


[출처: VectorStock]


가뜩이나 본인 성과를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야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미국에서 월가는 얼마나 더 이 접근법이 중요하게 작용할까? 업계를 대표해서 어느 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업계의 반 이상은 이러한 생각을 한 번씩 해보고, 어떻게 해야 본인을 더 잘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을 세워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회사 내부적으로 경쟁구도가 뚜렷하게 설립된 월가에서 더 빠른 승진, 더 많은 연봉 그리고 차이나는 보너스를 위해 각 직원은 쉼 없이 업무를 맡을 테고 본인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제일 효과적인 어필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본인을 어필한다는 것은 겸손하지 않다는 것과 개념적인 측면에서부터 거리가 멀다. 즉, 너무 겸손하면 손해 볼 수 있다는 미국 기업 문화에 대한 이해는 접근에서부터 어긋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본 저자는 겸손이야말로 어느 상황 속에서라도 본인이 더 성장할 수 있고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미덕이라고 믿으며 이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첫째, 겸손은 애초에 보여주기용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때로 의도와 조금은 다르게 행동해야 할 상황을 마주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간혹 우리 스스로를 낮춰야 하는 때도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며 겸손이라고 흔히 착각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겸손이 아닌 ''이다. 겸손한 척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겸손의 참된 뜻은 본인의 마음가짐과 연결되어있다. 


같은 회사 내 같은 부서 속에서 동일하게 80점짜리 성과를 내고 있는 직원 A와 직원 B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직원 A는 보다 더 효과적인 '어필'을 위해 본인의 성과가 80점인 것을 인지하면서도 더 잘 보이는 데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본인 성과를 약간 부풀린 85점으로 주변 동료와 상사에게 보고하게 된다. 직원 B 또한 본인의 성과가 80점인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 B는 직원 A와 달리 80점까지의 성과를 내면서 배운 점과 나머지 20점이 부족했던 이유에 집중하며 본인의 성과를 있는 그대로 보고한다. 이 예시에서 두 직원의 타인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잠시 뒤로 해보자. 직원 B는 직원 A와 같은 성과 속에서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에게 마련했고, 이러한 배움을 통해 앞으로의 발전에 대한 방향도 더 뚜렷하게 잡을 수 있다. 결국, 겸손이란 마음가짐은 본인의 발전에 제일 도움이 많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원 B는 직원 A보다 덜 인정받고 보너스도 덜 받게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직원 B의 단기적인 성과가 직원 A보다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직원 B의 장기적인 잠재력은 직원 A보다 몇 배로 더 커 보이며 이에 맞게 직원 B의 실력은 직원 A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다. 결국 길어봐야 1년 동안 덜 받고 그 뒤로부터는 더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명심하자, 커리어는 100미터 질주보다 마라톤에 더 가깝다.  


[출처: CJ Burton]


둘째, 야망은 겸손과 공존할 때에 더욱더 큰 빛을 낼 수 있다. 리더십과 조직발전에 대해 연구하는 Harvard Business Review의 작가 Bill Taylor는 "If Humility Is So Important, Why are Leaders So Arrogant?"라는 글을 내며 왜 수많은 리더들은 겸손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쉽게 자만에 빠지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Bill은 너무 많은 리더들이 겸손함과 야망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Bill은 겸손과 야망은 서로 충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미지의 세계와 같은 우리 사회 속에서 Bill은 큰일을 하고자 하는 리더들에게 야망과 겸손이 공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고방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즉,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보다는 겸손과 야망의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때 큰 시너지 효과가 (1+1 = 3+일 때) 나타난다는 뜻이라고 본 저자는 받아들인다. 겸손함이 지나치다 보면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넘어 행동이 소극적이고 자신 없어 보이는 모습을 비추는 경우를 우리는 간혹 볼 수 있다. 반대로, 큰 야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 조직과 사회로부터 형성된 경쟁 구도 속에서 보다 더 돋보이기 위해 본인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자만함이 행동에 베이고 생각까지 지배하는 경우 또한 볼 수 있다. 본인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은 강한 자존감을 지니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이때 겸손함을 잃는다면 이 자존감이 쉽게 스스로를 해치는 자존심으로 바뀔 위험이 커진다. 모르는 것을 인정할 줄 알고 더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자존감은 묵직하게 자리 잡게 되며 우리는 우리만의 큰 야망을 자신감 있게 채워나가고자 전진할 수 있다. 


[출처: Chief Executive]

셋째,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 본인 어필도 효과적으로 잘한다. 우리가 직장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어필이란 무엇인가. 본 저자는 어필이란 나만의 장점을 설득력 있게 얘기 함으로써 상대방의 머릿속에 나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본다. 설들력 있게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뜻이지, 거짓으로 포장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곧 나의 장점에 대해 얘기하기에 앞서 나의 약점 또한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 나의 약점을 내가 알고 있다는 뜻은 그만큼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나 자신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잘 아는 것만큼 나의 생각과 행동에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나의 약점을 파악해야 어떤 부분을 보안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 수가 있다. 사실 첫 번째 이유는 본인에게 더 직접적으로 좋은 영향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 이유는 함께 일하는 팀에게도 직접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의 보안점이 무엇인지 틀이 잡히면 이에 대한 액션플랜을 짤 수 있고 이는 보다 더 빠른 성장에 뒷받침이 되어준다 (나의 성장은 곧 의 성장에도 기여할 수밖에 없고). 팀에 끼치는 이러한 좋은 영향은 결국 본인에게 돌아오게 되는데, 진정성 있는 나의 약점과 이에 대한 대책 액션플랜을 함께 얘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사자는 이미 지난 성과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잠재력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스마트한' 어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장점을 내세우며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약점과 액션플랜을 함께 선보이며 상대방이 가질 수 있는 걱정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현명한 어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글을 정리해보자면, 겸손이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데에 있어 독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은 몇 가지 단계의 필터링을 거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조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과연 상대방은 겸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시야가 단기적인지 중장기적인지 등 꼭 한 번쯤은 고심해봤으면 하는 본 저자의 바램이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을 통해 해외에서의 직장생활도 결국 사람이 구성원이 되어 운영되는 조직에서의 생활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보이는 것 같다. 물론 각 나라마다 그 배경 문화는 다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거는 다 똑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주제는 늘 토론의 여지가 있어 재밌으면서도 끝이 없지만, 오늘 본 저자는 겸손이 미덕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자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커버 사진 출처: The Wall Street Journal]

매거진의 이전글 월가 투자은행에서 워라밸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