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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그림 Sep 20. 2018

#11. 산 넘어 산, 첩첩산중

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그림이맘 이야기





우리 예쁜 아가도 볼 수 있고,

침대에 누워 편하게 잘 수도 있고,

이제 깨끗하게 씻을 수도 있겠어.

집에 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붕 뜬 설렌 마음을 가라앉히며 오느라고 고생했다부푼 기대를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가 상상하며 그려왔던 부푼 기대는 

꿈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의 생활은 산 넘어 산첩첩산중이었다          



갓난쟁이 유림이 때문에 밖에 돌아다닐 수 없어 

우리는 온전히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유림이를 낳기 전그림이와의 전력질주에 몰두한 나머지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면..’이라는 계획을 그려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삶의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탓일까.

두 아이를 돌보며 하루종일 집안에 있는 것은 상상이상의 삶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지쳐가는 힘겨운 하루 속에서 나의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마치 철장없는 감옥처럼.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내 답답함은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온전히 버텨내야하는 공간에서 

고개를 돌려 그림이를 보고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아이의 두 발이 바닥에 딛고 있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옷장과 화장대같은 집안의 가구와 가구사이들을 암벽타듯 넘어다니며 

장롱 속 이불을 모두 꺼내놓고

장난감통에 있는 장난감들을 모두 꺼내놓고 바닥에 흩뿌려놓았다가지고 놀지도 않으면서..

스위치 커버는 붙어있는 것이 없고 리모컨 버튼들은 모두 빠져있다.     




집 안의 물건들은 다 부서져 쓸 수 없게 되었고

집안은 치워도 치워도 정리가 되지 않았고

아이는 집안 가구 어딘가에 올라타있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스런 집모양세였다.     




요즘처럼 더운 한여름에 두꺼운 겨울이불을 겹겹이 몸에 둘러놓은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고 표현하면 그 느낌이 전달이 될 수 있을까.               




아이 둘을 키우는 집이 다 그런걸까

아들 키우는 집이 다 그런걸까 

아니면 내가 우리 아이가 갖고 있는 장애때문이라고 생각해 유난스럽게 반응하는걸까 

장애를 이해하지 못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더 힘들게 느끼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려했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쨍그랑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뛰쳐나가기를 반복한다.          




그날 밤아이들이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힘겨웠던 하루를 끝내며 나에게 꿀처럼 달콤한 휴식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옆에서 쌔근거리며 자고 있는 유림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길고 까만 손눈썹.

올망졸망 눈코입

하얗고 통통한 볼.

아가천사가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찬찬히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유림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아이에게 약속했었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좋은 것만 들려줄게아기천사야.’       


그 순간 마음이 붉게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며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아가 손 등 위에 똑 떨어졌다.

내가 처음 아기에게 했던 약속을 하나도 지켜주지 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며 미안함과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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