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앞으로, 그림이맘 이야기
우리 예쁜 아가도 볼 수 있고,
침대에 누워 편하게 잘 수도 있고,
이제 깨끗하게 씻을 수도 있겠어.
집에 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붕 뜬 설렌 마음을 가라앉히며 오느라고 고생했다. 부푼 기대를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가 상상하며 그려왔던 부푼 기대는
꿈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의 생활은 산 넘어 산, 첩첩산중이었다.
갓난쟁이 유림이 때문에 밖에 돌아다닐 수 없어
우리는 온전히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유림이를 낳기 전, 그림이와의 전력질주에 몰두한 나머지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면..’이라는 계획을 그려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삶의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탓일까.
두 아이를 돌보며 하루종일 집안에 있는 것은 상상이상의 삶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지쳐가는 힘겨운 하루 속에서 나의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철장없는 감옥처럼.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내 답답함은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온전히 버텨내야하는 공간에서
고개를 돌려 그림이를 보고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아이의 두 발이 바닥에 딛고 있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옷장과 화장대같은 집안의 가구와 가구사이들을 암벽타듯 넘어다니며
장롱 속 이불을 모두 꺼내놓고
장난감통에 있는 장난감들을 모두 꺼내놓고 바닥에 흩뿌려놓았다. 가지고 놀지도 않으면서..
스위치 커버는 붙어있는 것이 없고 리모컨 버튼들은 모두 빠져있다.
집 안의 물건들은 다 부서져 쓸 수 없게 되었고
집안은 치워도 치워도 정리가 되지 않았고
아이는 집안 가구 어딘가에 올라타있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스런 집모양세였다.
요즘처럼 더운 한여름에 두꺼운 겨울이불을 겹겹이 몸에 둘러놓은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고 표현하면 그 느낌이 전달이 될 수 있을까.
아이 둘을 키우는 집이 다 그런걸까
아들 키우는 집이 다 그런걸까
아니면 내가 우리 아이가 갖고 있는 장애때문이라고 생각해 유난스럽게 반응하는걸까
장애를 이해하지 못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더 힘들게 느끼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려했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쨍그랑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뛰쳐나가기를 반복한다.
그날 밤. 아이들이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힘겨웠던 하루를 끝내며 나에게 꿀처럼 달콤한 휴식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옆에서 쌔근거리며 자고 있는 유림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길고 까만 손눈썹.
올망졸망 눈코입.
하얗고 통통한 볼.
아가천사가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찬찬히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유림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아이에게 약속했었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들려줄게. 아기천사야.’
그 순간 마음이 붉게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며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아가 손 등 위에 똑 떨어졌다.
내가 처음 아기에게 했던 약속을 하나도 지켜주지 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며 미안함과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