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 국립공원
'자이언캐니언'. 영어로 읽었을 때 자이언,우리나라 성경에는 ‘시온’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이 곳은 히브리어로는 ‘예루살렘’, 거룩한 성소라는 뜻이다. Virgin River의 North Fork가 절묘하게 깎은 붉은 돌이 성소처럼 숭고해 보였기 때문에 불리게 된 이름이다. 자이언캐년의 Virgin River Valley에는 수렵과 채집을 하며 8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다. 이곳은 고대에는 예배장소였고 1800년대 후반에는 몰몬교인들이 이주해 왔고 그 후에는 미국 정부 탐사대의 탐방장소였다. 지금은 한국에서 와서 단기로 미국에 사는 우리 가족이 여행할 만큼 잘 알려진 곳이 되었다.
지난겨울 서부여행을 할 때도 자이언 캐니언에 한 번 들렀지만 눈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남편과 아들은 지난겨울 자이언 캐년을 제대로 하이킹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는데, 그래서 솔크레이트 시티까지 9시간이 넘게 종일 운전하고, 솔크레이크 시티에서 다시 차로 4시간이 넘게 운전해서 올 만큼 꼭 방문하고 싶어 했다. 엔젤스 랜딩은 생에 다시 또 갈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꼭 추첨이 됐으면 하고 바랐다. ‘시온’의 ‘엔젤스 랜딩’이라니. 이름만으로도 대단할 것 같지 않은가.
솔크레이트 시티에서 자이언 캐니언까지는 502 킬로미터. 거의 4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으면서 엔젤스 랜딩 추첨을 신청하고 오후 4시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비지팅 센터로 가는 것이 그날의 계획이었다.
호텔에서 짐을 실을 때는 빗방울만 하나 둘 내렸는데 차에 타니 빗방울이 거세졌다. 이내 비가 온 사방을 때려대더니 거짓말처럼 해가 쨍 해졌다. 한참 쉬지 않고 달려 자이언 캐니언에서 한 시간 남은 곳에 있는 도시 Ceder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월마트, 판다익스프레스, 각종 식당이 있는 나름 큰 도시였다. 이제 햄버거랑 샌드위치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멕시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익숙한 엔첼리타랑 치미창가 말고 런치스페셜 메뉴 2개와 타코를 시켰다. 해산물이 들어간 메뉴는 매운 게 먹고 싶다고 했던 아이들의 입맛을 딱 만족시키는 음식이었다. 총 음식값은 팁 포함 87달러. 유타주는 필라델피아보다 물가가 싼 편이다.
자이언 캐년에서 삼일동안 묵을 숙소 La Quimta by Wyndham에 도착하니 4시였다. 주차를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국립공원 내부도 아닌데 보이는 곳마다 캐니언이 있었다. 숙소는 킹 침대 하나와 벙커 침대가 있는 방으로 예약했다. 이 숙소의 가장 좋은 점은 야외 수영장이 있다는 거였다. 하이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야외 온수장에 몸을 담그곤 하면서 캐년을 보면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는구나' 싶었다.
짐을 풀고 자이언 캐니언 비지팅센터로 갔다. 이제 극성수기가 지난 건지 아니면 오후라 그런 건지 비지팅 센터 앞이 한산했다. 아이들의 주니어레인저 뱃지를 위한 주니어레인저 책을 받고 왓치맨 트레일로 갔다. 왓치맨 트레일은 자이언 캐년 비지팅센터에 트레일 헤드가 있어서 자이언 캐년 셔틀을 타지 않고 갈 수 있다. 자이언 캐년은 편도 차선이라 자가용을 이용할 수 없다. 자가용은 숙소에 두고 자이언캐년 아래에 있는 마을인 스프링데일에서 셔틀을 타거나 일찍 일어나 비지팅 센터 앞에 주차를 해두고 비지팅 센터에서 셔틀을 탈 수 있다.
셔틀은 2000년에 생겼다고 한다. 지금의 셔틀의 마지막 정거장에 있는 ‘네로우’강에는 차량이 50대 정도 주차가능한데 5000대가 몰려버렸다고 한다. 차도 돌리기 힘든 편도 차선에서 꽉 막힌 길을 상상해 보라. 주차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비키지 않는 차와 새치기 하는 차. 길에 갇힌 차들은 오도가도 못하며 길에서 하루를 보냈을거다. 그래서 현명하게도 ‘셔틀’로 아예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루치 물을 짊어지고 다닐 수 없기에 셔틀을 타는 곳에는 마실 물을 받을 수 있는 식음대도 있고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왓치맨 트레일 헤드에 가는 길에는 비가 많이 왔는지 황토색 물이 콸콸 흐르는 강이 있었다. 물만 보면 물수제비를 뜨느라 아이들은 저만치 뛰어갔다. 5분 정도 기다리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까 내려와서 물수제비 해." 하고 아이들을 재촉하자 재미없게 걷기만 하는 게 지겨운 둘째는 "이번에는 몇 마일인데?" 물었다. "5.3 킬로미터." "그럼 두 시간 정도야?" 이제 선수가 다 됐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이니 5시에 하이킹을 시작해 뒷산 가듯 슬슬 걸어갔다 와도 충분하다.
쉬운 코스라 그런지 우리 가족 말고도 대 여섯 가족이 아이들을 데리고 걸었다. 5살쯤 되어보이는 아이들도 등산화를 신고 엄마 손을 잡고 걸었다.
그랜드 테턴과 글래시어에 있다가 유타주로 오니 사막 기후인 것이 느껴졌다. 산은 더 황량했고 빙하가 깎은 뽀죡한 봉우리가 아니라 퇴적층이 융기했다가 강이 깎은 곳은 협곡이 되고 산 정상은 평평한 평지인 것이 보였다. 여기는 곰이 살지 않는데 내가 곰이어도 여기는 살기 힘들 것 같았다. 베리도 없고, 사냥할 만한 동물도 없으니. 도마뱀만 간혹 보일 뿐이었다. 등산화 밑으로는 고운 흙이 양탄자처럼 밟혔다. 걷다보면 소리가 동굴처럼 울리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우리 아이나 다른 아이나 노래를 불러댔다. 시끄러워서 도마뱀이 깬다고 타박을 주면 “소리를 내면서 다녀야 블랙베어 안 나온데.” 했다. “여긴 곰 안 살거든.“ 경치에 큰 관심이 없는 둘째는 그렇게라도 지루함을 견디고 싶었나보다.
선인장은 열매를 맺었고 꽃도 피었다. 위쪽 왼편에 있는 꽃은 RESINBUSH, 오른쪽에 있는 꽃은 잘 모르겠고, 제일 아래에 있는 아주 연한 보랏빛이 도는 꽃은 SACRED DATURA다. 하이킹하는 내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었다.
숙소에 돌아가니 저녁 8시 20분. 캐년 너머로 해가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