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 국립공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켜고 recreation 앱을 켰다.
왠지 이번에는 엔젤스 랜딩 추첨에 성공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엔젤스 렌딩 당첨“
사실 마음의 절반은 차라리 추첨에서 떨어지길 빌었고 마음의 절반은 그래도 남편이랑 아들이 저렇게 원하니까 추첨에 성공하길 빌었다. 추첨에 4번이나 실패한 사람도 있다길래 남편도 나도 6달러씩 내고 추첨으로 넣었는데 둘 다 당첨됐다.
가위바위보도 항상 지고, 이런 추첨에 성공한 적이 없는데 평생 추첨 운을 여기에 다 써버렸다.
엔젤스 랜딩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하이킹 코스 중 하나라고 한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여기서 얼마나 죽었는지 집계해보았다고 한다. 어떤 뉴스는 9명이 죽었다고도 하고, 어떤 뉴스는 17명이 죽었다고 한다. 어쨌든 떨어져서 죽을 수 있는 절벽에서 쇠사슬을 잡고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힘들고 위험하다는 말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될까 걱정됐다. 그런데 당첨이 됐다고 하니 아들은 뛸 듯이 좋아했다.
남편도 우리가 언제 엔젤스 랜딩에 또 오겠냐고 한다. 마음속으로 '에효~' 한숨을 쉬고 그날의 짐을 꾸렸다.
엔젤스 랜딩을 하이킹한 후 점심을 먹고 네로우 강에서 물길을 거슬러 하이킹을 한 후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 그날의 일정이었다. 자이언 캐니언 내에서는 음식을 사 먹을 식당이 없어서 아이스박스에 빵과 과일을 넣고, 네로우 강에서 신을 물놀이 신발과 발을 닦을 수건도 챙겼다. 평소에는 자동차 크렁크에 넣고 다닐 물건을 모두 가방에 넣었더니 평소보다 가방이 두 배 무거웠다.
엔젤스 랜딩은 추첨권을 넣을 때부터 오전 9시 이전에 갈 것인지 오전 9시 이후에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9시 이후를 선택했다. 비지팅 센터에 주차하고 The Grotto에 내려 산 입구에 도착하니 9시 반이었다. 우리는 나름 서두른 건데 다들 도대체 얼마나 일찍 일어난 건지 하이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사람보다 많았다.
길이 6.9 킬로미터, 1.3킬로미터 고도의 트레일 해드에서 정상까지 가면 정상은 1.76킬로미터. 힘들고 위험하다고 악명 높은 거에 비해 시작은 순조로웠다. 사암이 잘게 부서져서 깔린 고운 모래가 폭신했다.
첫 번째 스위치백까지는 아침에는 그늘이 없어 고스란히 해를 받으며 걸어야 했다. 붉은 바위도 색을 잃게 만드는 뜨거운 해였다. 공기도 건조해서 해는 여과 없이 눈과 피부를 찔러댔다. '아침 9시 이전에 산을 올랐어야 했나.' 생각이 들 만큼 뜨거웠다. 그래도 이 구간을 지나니 양쪽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그늘이 나왔다. 여기는 야생 부엉이가 사는 곳이라 조용히 걸으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목소리 낮추고 걷다 보니 시원한 바람도 한 줄기 불었다.
부엉이가 사는 구간도 지나면 월터스 위글 스위치백이다. 여기에는 21개의 스위치 백이 있는데 월터라는 사람이 고안한 방식이라고 한다. 갑자기 경사가 심해지는 구간이라 경사가 있는 스위치백을 촘촘하게 올라야 다음 구간으로 갈 수 있는 듯했다. "여기 스위치백이 21개 있데." 했더니 산을 올라가기 귀찮다고 투덜거리던 딸이 다다다 앞서 뛰어가며 길이 몇 번 휘어져 있는지 세었다. 길은 22개. 꺾여있는 힌지가 21개다. 월터스 위글 스위치백은 경사가 있지만 각 구간이 짧아서 걸을만했다. 열심히 끝까지 오른 후 잠시 앉아 물도 마시고 사탕도 하나씩 입에 물고 다시 걸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스카우트 오버룩이다. 추첨에서 떨어진 사람은 여기까지 갈 수 있다. 여기서도 이미 경치는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는 앤젤스 랜딩 당첨자다. 얼마나 위험한지 구경이라도 해보자 싶었다.
앤젤스 랜딩 입구 도착하니 레인저가 입장 허가권과 신분증을 확인하고 우리를 들여보냈다.
첫 구간은 그다지 고도가 있지는 않다. 쇠사슬에 의지해 절벽을 하나 옆으로 건너야 할 뿐이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도 내려가는 사람도 쇠사슬이 필요해서 알아서 교통정리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정도 안전한 구간이 나오면 산을 오르는 사람이 먼저 올라가고 그다음에는 내려가는 사람이 갔다. 목숨이 달려 있으니 눈치껏 길을 양보했다.
이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겐 쉽은 구간이 나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고 어지러워서 앞만 보고 걸었다. 눈앞에 보이는 한 골짝을 넘으면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약이 오르게도 거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뒤에서 걷던 남자도 “여기가 끝이길 바랐는데.” 탄식했다. 거기는 그래도 안전하고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오레오로 열량을 채추며 남편에게 물었다. "더 올라가게?" "무서우면 여기서 기다리거나 스카우트 오버룩에 가서 기다려." 남편이 말했다. 아들도 “엄마, 무서우면 진짜 안 와도 돼.” 했다.
그 자리가 편했다. 바람도 솔솔 불었고 풍경도 어느 정도 보였고 쇠사슬을 잡느라 긴장했던 마음도 편해졌고 앉아있는 바위도 평평했다. 딸과 더 앉아 있기로 했다. "둘이서 가."
딸이랑 앉아서 오레오를 먹는데 다람쥐가 오레오를 덮칠 것처럼 알짱거렸다. 사람들은 우리를 스쳐 정상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우리를 지나쳐 앤젤스 랜딩으로 향했다. 겁이 나서 엉거주춤 걸으면서도 친구나 연인의 응원과 격려 속에 한 걸음씩.
30분쯤 쉬다가 나랑 딸도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우리도 정상까지 갈까?”
“그래, 기다리는 게 더 지겨워.”
생각보다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떨어질까 봐 앞만 보고 걷느라 고소공포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이들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누군가 나를 실수로 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두려웠다. 다행히 누군가 실수로 나를 치는 일도 없었고, 미끄러지면서 나를 밀치는 일도 없었다. 물론 쇠사슬을 잡느라 오르는 길에 사진은 한 장도 못 찍었다.
길은 사암이 갈린 모래가 깔려 있어서 미끄러웠다.
미끄러지지 않게 등산화를 잘 신고 신발끈을 꼭 조이고 급하지 않게 앞사람의 속도에 맞춰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줄 때 최대한 안전하게 몸을 낮추면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었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고 있자니 백인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10살요."
"여길 내려가면 스페셜 주니어 레인저 증표라도 달아야겠는걸요." 딸은 옐로 스톤에서 산 주니어 레인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정말 그래야겠어요."
만나는 사람과 인사하고 격려하며 한 걸음씩 가다 보니 드디어 정상까지 올랐다.
“어? 엄마다.”
“응, 어쩌다 보니 올라왔어.”
이제 내려오려고 했던 남편과 아들과 딱 마주쳤다.
정상에는 엄청난 장관이 기다라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협곡.
휘어지며 협곡을 깎고 있는 버진리버.
엔젤스 랜딩은 그린넬 글래이셔나 델타트레일처럼 초반에 지겨운 평지가 이어지고 이어지는 트레일이 아니다.
짧고 강하게 빡! 임팩트 있는 짧은 등산로였다.
가성비가 좋다고 해야 할까.
만 10살, 12살 아이들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니, 자이언에 방문한다면 한번 추첨을 신청해 보는 건 어떨까?
내려가는 길에는 우리가 초반에 올랐던 길이 더 잘 보였다.
정말 지그재그로 올랐구나.
하산 시간은 1시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