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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Oct 10. 2023

새벽, 하늘을 보며

필라델피아의 새벽은 캄캄하다. 

미국은 한국처럼 가로등이 사방에 있지 않아서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있다.

그런 하늘을 보면서 사실 글로 쓸만한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만 그 하늘과 하나가 되어버린다.

밤하늘과 나는 하나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리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느라 목 뒤가 뻐근해져서야 '아!'하고 나에게 돌아오고 마는 거다.


빨간머리 앤처럼 멋진 단어들로 밤하늘을 묘사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생각 들 때도 있었다.

밤하늘을 보고 재미있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내 상상력의 한계를 탓할 때도 있었다.

나에게 남아 있는 건 감각 뿐이다. 그날 코끝이 찡하게 추웠다던가, 앞 집에 웬일인지 불이 켜 있었다던가, 바람결에 아카시아 향이 날아온다던가 하는.


사실,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마다 나는 늘 몽골 사막으로 돌아간다.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에 나오는 아모스처럼 뒹굴뒹굴 굴렀던 그날의 밤 하늘로.

사막의 하늘은 나에게는 너무 광대했다. 

내가 '신'이라는 존재를 처음 느꼈던 건 그날이었다.

밤하늘이 너무 광대하고 놀라와서 두려운 느낌, 하늘에 빨려들 것 같은 느낌.

내 고민이 하찮아지고, 내가 티끌같아 지는 느낌.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회복했다.

그 광활함 앞에서 날 괴롭히던 삶의 문제는 티끌같았고, 처음으로 '어떻게든 될거야'라는 누군가에겐 대책없는 말이겠지만, 나에게는 희망같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물론 그 후에도 주머니는 늘 비어있었고, 반지하 단칸방에서 식비도 아껴가며 서울생활을 해야 했지만.

나는 당면한 삶을 살았다.

기대를 낮추고, 전투적이지 못한 나를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그런 내 모습은 나를 열등감에 시달리게 하지만. 그래서 질투가 날 만한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는 산책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와 꽃을 보면서 다시 나를 돌려놓는다.


'그래서 나는 지난 여행에서 새벽하늘과 저녁하늘과 밤 하늘을 보고 싶었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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