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의 새벽은 캄캄하다.
미국은 한국처럼 가로등이 사방에 있지 않아서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있다.
그런 하늘을 보면서 사실 글로 쓸만한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만 그 하늘과 하나가 되어버린다.
밤하늘과 나는 하나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리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느라 목 뒤가 뻐근해져서야 '아!'하고 나에게 돌아오고 마는 거다.
빨간머리 앤처럼 멋진 단어들로 밤하늘을 묘사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생각 들 때도 있었다.
밤하늘을 보고 재미있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내 상상력의 한계를 탓할 때도 있었다.
나에게 남아 있는 건 감각 뿐이다. 그날 코끝이 찡하게 추웠다던가, 앞 집에 웬일인지 불이 켜 있었다던가, 바람결에 아카시아 향이 날아온다던가 하는.
사실,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마다 나는 늘 몽골 사막으로 돌아간다.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에 나오는 아모스처럼 뒹굴뒹굴 굴렀던 그날의 밤 하늘로.
사막의 하늘은 나에게는 너무 광대했다.
내가 '신'이라는 존재를 처음 느꼈던 건 그날이었다.
밤하늘이 너무 광대하고 놀라와서 두려운 느낌, 하늘에 빨려들 것 같은 느낌.
내 고민이 하찮아지고, 내가 티끌같아 지는 느낌.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회복했다.
그 광활함 앞에서 날 괴롭히던 삶의 문제는 티끌같았고, 처음으로 '어떻게든 될거야'라는 누군가에겐 대책없는 말이겠지만, 나에게는 희망같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물론 그 후에도 주머니는 늘 비어있었고, 반지하 단칸방에서 식비도 아껴가며 서울생활을 해야 했지만.
나는 당면한 삶을 살았다.
기대를 낮추고, 전투적이지 못한 나를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그런 내 모습은 나를 열등감에 시달리게 하지만. 그래서 질투가 날 만한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는 산책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와 꽃을 보면서 다시 나를 돌려놓는다.
'그래서 나는 지난 여행에서 새벽하늘과 저녁하늘과 밤 하늘을 보고 싶었구나.'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