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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Nov 26. 2023

2000불이 날아간 날

땡스기빙 여행으로 칸쿤을 큰 맘먹고 예약했다.

망설이고 망설였는데 미국 집에서 4시간 비행으로 갈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가는데만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영원히 안 갈 것 같아서다.

이동 시간도 길고, 시차까지 버텨가며 놀 마음이 없기도 했다.

게다가 다들 칸쿤이 그렇게 좋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다.


마야 유적지 투어랑 다른 액티비티를 예약했다.

숙소에서 새벽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올 것 같았기 때문에 숙소는 저렴한 에어비앤비로, 비행기도 저가항공인 SPRIT으로.


저가 항공사 예약이 실수였던 걸까?

결론은 우리는 비행기에 타지도 못했다.

J비자로 미국에 온 사람은 비자가 만료되어도 DS2019라는 서류를 연장하면서 유효기간이 남아있으면 캐나다와 멕시코를 방문할 수 있는 예외규정이 있다.

지인들도 우리처럼 비자가 만료돼도 법이 그러니 아무 문제 없이 다녀왔다.

우리는 비행기 수속까지 마치고 탑승하려는데 직원이 막았다.

아무리 DS2019 예외조항을 설명하고 심지어 보여줘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슈퍼바이저에게 가라고 해서 갔더니 그 슈퍼바이저는 알아본다더니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나와서는 안된단다.

 비행기는 그렇게 떠났고, 아이들은 너무 놀라서 울고, 우리는 짐을 찾느라 두 시간 정도 공항에서 더 보내고 돌아와야 했다.

슈퍼바이저가 준 명함에 적힌 SPRIT항공 전화번호로 전화했더니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줬다.

결국 홈페이지에 남기라는 거였다.

고객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항공사였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내기만 하고 결국은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슈퍼바이저란 직책은 왜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다행히 두 시간 정도 걸려서 짐은 돌려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비행기를 못 타게 된 시간부터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20분 정도 걸렸는데 그새 짐을 뺐나 보다. 짐이 칸쿤으로 날아가지 않은 게 그날 있었던 일 중에 제일 운이 좋았던 일이었다.

그 항공사 분실물 사무실 앞에는 화가 단단히 난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이틀째 캐리어를 돌려받지 못해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삼일째라고 했다.

다들 화가 단단히 났다.

하지만 그 사무실 직원이 유일하게 말을 듣기는 하는 사람이었는걸.


취소할 수 있는 건 취소했지만 취소 불가라 받지 못한 돈은 2000불이 넘는다.

취소불가 올인클루시브 호텔로 예약했다면 아이들이랑 같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화가 났지만, 일단 친구의 도움을 받아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선택지는 두 개.

1. 계속 손실난 돈을 곱씹으며 화를 낸다.

2. 일단 집을 떠나 어디로든 여행한다.


캐리어에 있는 여름옷을 겨울옷으로 바꾸고 바로 차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그래이트 스모키 마운튼.

첫째 아이가 가 보고 싶어 했던 곳이다.

가는 데는 차로 10시간 정도.

그래! 그 정도면 가능하다. 게다가 아이들은 수요일까지 결석계를 내놓아서 월요일에 ‘짠’하고 학교에 가는 것도 싫은 모양이다.

그것도 이해 간다.

그러니까 테네시주로 떠나자!


오후에 출발한 거라 우리는 5시간 정도 걸리는 버지니아 렉싱턴에서 하루 자고 아침 일찍 길을 떠나기로 했다.


저녁에도 속상하긴 여전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40 퍼센트 정도만 남아있었다.

평생 여행을 이걸로 액땜했다고 생각하면서 정신승리도 해봤다.


하지만 나는 밤새 뒤척였다.

꿈에서는 항공사 직원의 멍청한 얼굴이 나왔다. 뒤척이다 깨서 다시 선잠이 들면 손실난 2000달러로 살 수 있었을 블랙프라이데이 장바구니 목록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미국 소비자보호센터에 어떻게 신고해야 할지 생각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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