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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샤 Nov 18. 2019

금융 길치 친구들을 위한
오픈뱅킹 내비게이션 사용법

Banking without Bank #1

은행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수 십 년 된 구닥다리 금융공동망을 누구나 쓸 수 있게 '열어 open' 준 것뿐인데, 4 산업혁명의 엔진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블록체인, IoT 신기술의 등장보다 몇 배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 듯합니다. 다른 은행 APP에서 자기 은행 계좌를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상황을 실제로 경험하니, 새로운 손님을 유치하는 '막연한 기회'가 아니라 기존의 손님을 빼앗기는 '명백한 위기' 상황임을 깨닫게 된 것이겠.  


그런데 오픈뱅킹 모멘트에 대응하는 은행들의 방향성을 보면 역시나 '은행스럽다'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은행 입장에서 아쉬웠던 것, 은행들이 하고 싶었던 서비스만을 미련스레 설계하고 있을 뿐... 오픈뱅킹이 만들어 낼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감은 전혀 못 잡은 듯 하니까요.


메신저 플랫폼을 놓친 통신사처럼,

커머스 플랫폼을 놓친 유통사처럼,

끈질기게 움켜쥐고 있던 금융업의 나와바리도 조만간 네이버나 카카오에 넘어가겠다는 예감이 듭니다.



내비게이션을 써도 길 놓치는 친구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 길안내를 자주 놓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나이들어 시력이나 청력이 약해져서 그렇다기보다는,

내비게이션의 기능이 시원찮아 그렇다기보다는,

내비게이션의 '정확한 사용법'을 모르는 탓인 것 같습니다.


내비게이션 길안내의 핵심은 '어느 타이밍에 회전할 것이냐'입니다.

그런데 차량의 속도는 천차만별이므로 내비게이션은 회전의 타이밍을 시간이 아닌 '거리'를 통해 알려주지요. 300미터 앞, 100미터 앞, 30미터 앞... 회전해야 할 '남은 거리'를 계속 말해줍니다.

하지만 이 남은 거리를 눈으로 가늠하지 않는 운전자가 많습니다. 100미터나 30미터 정도는 누구나 눈대중으로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거리인데, 내비게이션의 음성 안내중 '00미터 앞'은 무시하고 우회전이냐 좌회전이냐만 챙겨서 운전하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죠.


오픈뱅킹은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설계하고 추진하는 국책 사업입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현실의 문제와 미래의 비전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공식적인 제도와 정책의 산물이지요. 따라서 해당 제도와 정책을 추진하는 '취지와 목적'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오픈뱅킹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지,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지의 예측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어떠한 맥락에서 왜 만들어졌고 무엇을 목표로 한다라는 '사용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내비게이션 켜 놓고 엉뚱한 교차로로 빠지는 시행착오 반복하게 될 겁니다.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

올해 2월 25일 금융위원회는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을 발표합니다. 현재의 오픈뱅킹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맥락 그리고 정책의 목적은 모두 이 혁신 방안에 담겨있습니다.

http://fsc.go.kr/info/ntc_news_view.jsp?menu=7210100&bbsid=BBS0030&no=32976


모든 법체계가 헌법에 기초하듯이, 오픈뱅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첫머리'인 추진 배경이 가장 중요합니다.


■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중심의 금융혁신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특히 금융결제 부문에서 혁신과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

■ 금융결제는 많은 고객 접점빅데이터 등을 통해 종합적인 금융 플랫폼으로 발전하는 등 핀테크 혁신의 교두보 역할

■ 주요 선진국들은 금융결제 부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과감하게 인프라 혁신을 추진 중

■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핀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간편 결제, 금융 플랫폼 등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신용카드 위주 결제와 단순 마케팅 경쟁 지속

■ 현재의 낡은 금융결제 인프라를 계속 유지할 경우,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금융결제 혁신 흐름에서 뒤처질 우려


금융이라는 산업의 범주에는 참으로 많은 기능이 포함됩니다. 돈을 금고에 보관해 주는 단순한 기능에서 출발해서, 여윳돈을 맡겨 이자를 받고, 사업을 하거나 집을 구할 때는 대출도 해주고, 펀드 같은 투자상품도 제공해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 거래는 그야말로 어쩌다 한번 하는 것일 뿐,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생활 속의 금융 거래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거나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는 거래이지요. 금융위원회는 오픈뱅킹을 통해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핵심 타깃이 일상 경제와 직접 맞붙어 있는 금융결제 분야임을 다시 한번 상세히 설명합니다.


금융결제는 여타 금융서비스와는 달리 금융, 실물, 대외부문 전반에 걸쳐 연결성과 파급력이 큰 금융혁신의 핵심 토대

■ 많은 고객 접점을 바탕으로 여타 금융업으로 확장 및 종합적인 금융 플랫폼으로 발전 가능

알리바바계좌 기반 QR결제 서비스(알리페이)를 통해 중국 모바일 결제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 이후 투자, 신용평가, 소액대출 연계 등을 통해 종합적 금융업으로 성장

■ 금융결제 과정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등에 대한 광범위한 빅데이터가 창출되고 이를 활용하여 금융업 및 여타 사업에서 경쟁우위 확보 가능

■ 금융결제는 대규모 상거래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의 산업·서비스와 밀접하게 관련

■ 효율적인 결제 서비스는 낮은 수수료 및 결제편의 제고 등을 통해 사업자 부담을 경감하고 상거래를 활성화하는 효과 및 모바일 쇼핑, O2O, 공유 서비스, 지급결제 기술·보안 등 新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

온라인 해외직구, 해외여행·유학, 해외 송금 등과 연계하여 다른 금융업에 비해 해외 진출의 가능성과 기회가 많고, 동시에 글로벌 결제사업자의 국내 진입 등 대외 경쟁 노출도 높음


금융결제, 흔한 말로 페이먼트 payment 비즈니스는 대부분 '상거래'에 기초하는데, 한국은 상거래의 결제수단으로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신용카드는 결국 구매자의 통장에서 판매자의 통장으로 돈을 옮겨주는 하나의 중간다리에 불과하지요. 우리가 식당에서 음식값을 지불하건,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건 결국 나의 은행 통장에서 식당 주인이나 온라인셀러의 은행 통장으로 구매대금을 입금해주는 행위일 뿐입니다.


신용카드는 편리하지만 한국의 신용카드 산업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만성화되어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낡은 금융결제 인프라'의 문제점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합니다.


 ■ 우리나라는 고비용 신용카드 결제가 고착화되어 혁신적인 직불·간편 결제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인프라 보유

 ■ 신용카드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외상 결제로 인해 가계 건전성에 부정적이고 고비용 상거래 구조로 경제 전반에 부담(연간 카드수수료로 부담하는 비용은 약 11조 원)

 ■ 은행은 전 국민의 결제계좌를 보유하고 있으나, 예대 마진, 담보 위주 대출 등 보수적 행태를 보이면서 직불결제 시장 개척 등 새로운 역할에는 매우 소극적

 ■ 핀테크 결제사업자는 간편 결제·송금 등 새롭고 편리한 서비스를 통해 결제시장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은행 결제망 접근 및 이용에 어려움, 제한적인 서비스 범위, 신용카드 위주의 제도 등으로 혁신을 주도하는데 한계


금융위원회는 이렇게나 명백하고 친절하게 오픈뱅킹의 '정확한 사용법'을 밝혔습니다. 대한민국 금융의 여러 분야 중 특히 신용카드 중심의 상거래 결제 관행에 문제가 많으니 이의 혁신위해 은행의 직불결제 인프라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은행의, 은행에 의한, 은행을 위한

처음 세상에 나온 대한민국 은행들의 오픈뱅킹 서비스는 아직 '우물 안 개구리' 수준입니다. 오픈뱅킹의 취지와 목적인 지급결제 인프라의 혁신은 전혀 고민하지 않고, 오직 '타행 계좌 이체하기'에만 몰빵 했습니다. 100년 넘게 못해왔던 서비스이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만도 했을 겁니다. 타행 계좌에서 돈을 빼서 자기 은행의 예금이나 펀드를 가입하는 흐뭇한 상상만이 가득했겠죠.

그런데, 오픈뱅킹으로 타행 계좌를 등록하기만 하면 천년만년 자신들의 APP에서 소비자들이 머무를 것이라 믿고 있는 걸까요?  카카오나 네이버가 은행보다 허접한 APP을 만들 것이라 믿고 있는 걸까요?


은행들이 타겟팅하는 오픈뱅킹의 후속 서비스는 뱅크샐러드와 같은 종합자산관리 영역에 올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객들의 금융 거래 내역과 자산 현황에 대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취합해서 '팔고 싶은' 상품을 추천하고 싶은 욕망이 불타오르겠죠. 매우 은행스러운 사업 모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상품들이란, 금번 DLF 사태를 통해 충분히 드러났듯, 소비자에게 유리한 상품보다는 은행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금융위원회가 기대하는 알리바바의 금융 플랫폼 모델이 은행, 특히 메이저 은행으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입니다. 유통업에서 시작한 알리바바가 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오프라인 결제 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고, MMF와 같은 리테일 금융상품은 물론, 중국 정부도 하지 못한 전 국민 신용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온라인셀러 전용 대출까지 창조해 내는 포용적이고 거시적인 맥락은, 단기 업적 주의에 완전히 매몰된 은행원들의 논리 구조로는 절대로 생성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은행들은 직원 1인당 오픈뱅킹 유치 실적 몇 개라는 실적 할당 쥐어 짜 뿐, 소비자들이 원하는 본질적 서비스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뜬구름 잡고 있을 겁니다. 타행 계좌를 자신들의 APP에서 컨트롤하면 '고객과의 접점'이 저절로 만들어지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겠지요.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대응에 실패해 망해버린 코닥필름의 사례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닥필름이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낮거나 오만해서 무너진 것은 아니라 합니다. 지금 당장 눈 앞에서 수익성 높은 사업을 하는데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일 뿐이얘기지요.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 상황에서는 외부에서 시작되는 변화의 속도와 압력이 더디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 한국의 은행들에 똑같이 적용되고 있을 자연법칙입니다.



오픈뱅킹 사용법의 정석, 네이버페이

네이버가 고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오래 봤고 너무 오래 썼고 너무 오래 그대로라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네이버가 위기의식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시그널은 계속 감지됩니다. 구글이 검색 마켓셰어를 급속도로 추격하고 있고, 기사 필터링과 댓글 조작을 의심받는가 하면, 실시간 검색어의 상업화에 대한 부작용도 커지고 있으며, 온라인 소상공인과의 갈등도 심심챦게 노출됩니다. 업의 특성상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니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이겠죠. 하지만 그때그때 매우 신속하고 과감하게 문제에 대응하며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상시적인 위기의식을 구조적으로 체화시킨 회사인 듯합니다.


특히 네이버가 페이먼트 사업에 진출하여 확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영악한 사업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네이버페이가 '구매상품' 데이터를 획득해낸 방법론입니다.


3,500만 회원의 데이터를 10년 넘게 모았지만 솔직히 쓸 만한 데이터가 없다...

[OK캐시백 관계자]


회원이 얼마를 썼는지만 알 뿐, '무엇'을 샀는지는 모른다. 포인트 제공 등 CRM 마케팅을 하고 싶은데 뭘 알아야 하지...

[신한카드 관계자]


신용카드 회사를 포함한 기존의 모든 페이 사업자들이 실패했던 것이 바로, 소비자들이 '무엇'을 샀는가에 대한 구매상품 데이터를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카드회사나 OK캐시백과 같은 포인트 회사, PG 등 모든 페이 사업자들은 누가 어디에서 언제 얼마를 결제했다는 '결제정보'만을 획득할 뿐, '무엇'을 샀는지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쿠팡이나 11번가 같은 온라인 커머스만이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판매한 상품에 한하여 제한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었을 뿐이.


네이버는 이 어려운 문제를 '주문서'를 패키지로 공급받는 방식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결제 과정 그 자체에는 어떤 상품을 주문했는가에 대한 정보가 굳이 필요 없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네이버 페이를 쓰려면 무조건 상품정보를 같이 제공하도록 구조화한 것이죠. 단순한 결제 대행 서비스가 아닌, 주문~결제 결합 서비스로 포지셔닝을 한 겁니다. 온라인 판매자 입장에서는 별 고민 없이 이 서비스에 도장을 찍었겠지만 네이버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공짜로 수집할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를 온라인 쇼핑몰에 몽땅 깔아놓은 겁니다.

네이버페이 개발자센터 Q&A

   

최근 네이버페이는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습니다. 카카오페이가 QR키트를 보급한 것이 2018년 5월이니 무려 1년 6개월이나 늦게 발동을 걸었죠. 그런데 그 방식이 사뭇 다릅니다. 카카오페이는 자체 QR코드를 만들어 전국의 모든 오프라인 매장을 대상으로 직접 배포를 하고 대형 체인점과 개별 계약을 맺어 '자신들의 울타리'에 하나하나 끌어 모으는 전략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페이가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QR코드 체계가 다르다는 지극히 자사 중심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죠.

카카오페이 QR키트


네이버도 오프라인 매장에 QR키트를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네이버의 QR키트에는 정작 QR코드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오직 '제로페이는 네이버페이로'라는 슬로건을 강조한 초록색 안내문만 들어있지요.

네이버페이 QR키트


카카오페이가 놓것이 있습니다.

제로페이는 페이 사업자와 소비자 그리고 오프라인 가맹점을 연결하는 저비용 Card-less 결제 인프라를 '국가가 대신'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융위원회의 오픈뱅킹 사용법을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 간편 결제 사업자의 제로페이 참여를 유도하여 가맹점 확보 지원

ㅇ (현행) 결제사업자별로 가맹점을 모집함에 따라 단기간 내 충분한 사용처 확보 어려움 → 범용성 저하 → 소비자 이용 유인 약화

ㅇ (개선) 제로페이에 참여할 경우, 전국적으로 가맹점 통합 모집·이용 가능 → 사용처 확보를 통해 범용성 제고 가능


제로페이는 신용카드 인프라를 우회하는 간편 결제 사업자들이 전국 300만 개 오프라인 매장과 즉시 연결 수 있는 '가맹점 ID'를 공짜로 깔아주는 사업입니다. 카카오페이가 해야만 했던 노가다를 국가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죠.


한국의 신용카드 회사들은 수십 년에 걸쳐서 오프라인 매장을 '카드 가맹점'으로 하나하나 유치하며 그들만의 인프라를 차곡차곡 구축해 왔습니다. 그야말로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제로페이는 국가 정책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가맹점에 '결제 ID'를 대신 깔아주며 '누구나' 그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준 겁니다.


네이버는 이러한 역학 구조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로페이와 오픈뱅킹을 추진하는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는 카카오가 하건 페이코가 하건 은행이 하건 네이버가 하건 '고비용 결제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간편 결제 한도를 늘려주고, 후불 결제를 통해 신용카드의 외상 기능을 대체하는 후속 조치 역시 금융결제 인프라의 혁신이라는 대주제, '고비용 신용카드 인프라'를 무너뜨리기 위한 촘촘한 도구 중의 하나.  


최근 미래에셋과 함께 네이버파이낸셜을 만드는 것도 이러한 제도 변화에 부응하는 착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것도 역시 오픈뱅킹 사용법에 나옵니다.


■  결제자금을 보유하지 않고 정보만으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급 지시 서비스업, My Payment” 도입

→ 지급 지시 서비스에 한 번의 로그인만으로 모든 은행의 자기 계좌에서 결제·송금을 처리

은행 제휴 없이 독립적으로 계좌를 발급·관리하고 이를 통해 자금이체할 수 있는 “종합 지급결제업” 도입

→ 은행 계좌 없이도 현금을 자유롭게 보관·인출할 수 있으며 결제·송금뿐만 아니라, 금융상품 중개·판매 등 종합자산관리도 가능


네이버가 그동안 인터넷전문은행 참여에 유보적이었던 반면, 증권 기반의 미래에셋과 공격적인 금융업 진출을 시작한 배경에는 '은행 제휴 없이 독립적으로 계좌를 발급·관리'한다는 파적인 제도 시행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플랫폼 구축의 절대 조건, 트래픽

그런데 네이버는 왜 굳이 QR키트를 만들어 배포하는 걸까요? 인쇄비에 배송비까지 하면 못해도 1만 원은 들어가고 만약 100만 개 매장이 신청하면 100억이나 소요될 텐데 말이지요.

 

거래량 traffic이 없는 사업을 플랫폼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특정 영역에서 최소 30% 이상의 마켓셰어는 가져야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붙여줄 만하지요.

그러면 금융 플랫폼은 어디에서 traffic이 발생할까요?


toss가 인기를 끌면서 개인과 개인 간의 송금 거래가 뱅킹의 대세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더치페이하는 경우가 많아 거래량이 늘어났다손 치더라도, 특별한 유형의 개인사업자가 아닌 일반 개인들이 1달에 송금거래하는 건수는 많아야 10건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뱅크샐러드와 같은 자산관리 APP도 너무 자주 들여다보면 재테크 과민증으로 오해받을 것이고요.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일어나는 금융거래는 결국 payment입니다.


밥 먹고, 편의점 가고, 마트 가고, 온라인 쇼핑하고 하는 일상적인 금융거래가 바로 상거래 결제 프로세스인 payment에서 발생합니다. 하루에 최소 3~4번 이상, 1 달이면 100건 정도의 traffic이 발생하는 최대의 금융거래 발생처인 것이죠. 알리'페이',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애플'페이' 등 비금융 플랫폼 사업자들이 금융업에 진출할 때 예외 없이 payment 영역을 출발점으로 하는 이유는 바로 traffic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카카오페이가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payment 사업의 직접적인 수익성이 높지는 않을 겁니다. 직접적인 수익성이 높지 않으니 그동안 은행들이 방치했던 영역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 그런데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payment를 잡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한 traffic 없이는 플랫폼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소프트뱅크 산하의 PayPay가 10일 만에 100억 엔(1천억 원)의 현금 프로모션을 퍼부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 행동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의 비용은 우습게 여겨질 만큼 payment 플랫폼의 비전은 크고 강력하기 때문일 겁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소프트뱅크는 자신이 투자한 알리바바의 성장 스토리를 보면서 payment 플랫폼의 파괴력과 잠재력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아래는 알리바바의 내부자료인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구글에서 찾은 것입니다. 알리바바의 모든 융복합 비즈니스가 Seller와 Buyer를 연결하는 접점인 Alipay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Alibaba's Ecosystem


네이버도 알리페이를 상상하고 있을 겁니다. 카카오페이가 스스로의 매몰비용에 갇혀 제로페이의 잠재가치를 등한시하고 있을 때, 네이버는 규제와 제도의 흐름을 빠르게 캐치하며 제로페이를 자신의 브랜드와 결합시켰습니다. 제로페이를 통해 획득하는 직접적인 수익이 없을지라도,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traffic 확보를 통한 온오프라인 통합 payment 플랫폼의 원대한 비전을 발견했기 때문이겠죠.


네이버페이가 한국의 알리페이로 진화할 수 있는 결정적 모멘트에 한 발짝 앞서 있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플랫폼의 양면성, 지배 혹은 소멸

제로페이라는 정책 혹은 비즈니스에 대해 많은 은행은 'Winner' 없는 관치 게임이라고 폄하합니다. 정부가 하라니까 그냥저냥 하는 시늉만 내고, 기존 수수료만 줄어드니 아깝다는 생각만 하고... 그런데 만약 은행 밖의 누군가가 Winner로 등극하면 자신들의 안방을 송두리째 내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전혀 못 느끼나 봅니다.


플랫폼이 갖는 공통된 속성은 독점과 집중이 가속화된다는 사실입니다. 네이버, 카카오, 라인, 유튜브, 아마존, 페이스북... 일단 일정 규모 이상의 사용자가 확보되고 나면 기하급수적으로 마켓셰어가 늘어나고 한번 구축된 지배적 플랫폼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요. 

반면, 플랫폼의 타깃이 된 기존 사업자들은 속절없이 소멸되기 시작합니다.


FOMO라는 말이 있습니다. Fear Of Missing Out.

뭔가 애매하긴 하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

플랫폼에 의해 소멸된 기업들은 모두 FOMO의 단계를 거칩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 두려움을 기회로 전환시키지는 못하지요. 코닥필름이 그러했듯 말입니다. 


플랫폼 구축의 경험이 전무한 은행들은 혁신적인 모멘트에서 더더욱 취약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은행들이 타행 계좌를 핸들링하는 쾌감에 빠져있는 동안, 네이버나 카카오는 금융 거래의 traffic을 확보하는 포석을 거듭할 겁니다. 아마도 그 포석의 최종 목적은 '모바일 지갑'이 될 것이고요.


사람들이 주거래 은행과 주거래 계좌를 하나씩 두고 있는 것처럼, 네이버나 카카오는 주거래 모바일 지갑을 만드는데 집중할 겁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돈을 보내고 받을 때, 금융 거래를 조회할 때, 금융 상품을 가입할 때 가장 편하게 꺼내어 쓸 수 있는 모바일 지갑.

그리고 그 지갑의 메인 기능은 당연히 payment일 겁니다. 

가장 많이, 가장 자주 쓰는 기능일 테니까요.


여러 은행의 계좌를 조회하거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은 그 다음 다음 다음에 곁들여 따라오는 2차 서비스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 2차 서비스의 품질마저도 payment를 통해 취득하는 구매상품 데이터가 없이는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지요.


오픈뱅킹을 통해 만들어질 플랫폼의 타이틀은 명백합니다. 

종합금융 플랫폼.

금융의 영역에서 플랫폼이 구축된다는 것은 기존 금융기관의 지위가 소멸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픈뱅킹 모멘트에서 고객 접점 확보에 실패한 기존 금융기관들이 상품 제조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누군가의 예측은 매우 예리하고 정확해 보입니다.



스웨덴의 은행 연합 페이플랫폼, Swish

그런데 은행업은 정말 동네북인 걸까요?

혁신의 DNA, 플랫폼의 DNA는 은행업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걸까요?

오픈뱅킹 사용법은 한국의 은행이 나아가야 할 롤모델에 대해서도 힌트를 남겨놓았습니다.


한국은 유난히 신용카드 거래비중이 높아서 그런지, 신용카드가 아닌 다른 결제 방식은 현금밖에 없는 게 아닌가 오해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선진 국가들이 신용카드의 대체 수단으로 계좌 to계좌 방식의 직불형 간편 결제를 빠르게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지급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 中


전 세계적으로 간편 결제 비중이 가장 높은 스웨덴에는, 중국에서의 알리페이와 비슷한 Swish라는 간편 결제 사업자가 있습니다. 거래비중이 80%에 달하는 압도적 플랫폼이지요. 그런데 이 회사는 스웨덴의 은행들이 연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은행들 스스로가 payment의 DNA를 부활시켜 신용카드 인프라를 대체하고, 비금융 플레이어들이 석권하는 payment플랫폼 영역을 '지켜낸' 것이지요. 스웨덴의 은행들은 금융 거래의 '고객 접점'을 스스로 방어하는 데에 성공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QR코드 방식의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블루투스를 이용한 태깅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결제 분야에서의 차세대 기술 도입도 리딩하고 있지요.

 

https://www.nets.eu/Media-and-press/news/Pages/Nets-and-Swish-partner-on-first-of-its-kind-in-store-payments-pilot.aspx


아마 금융위원회가 기대하고 선호하는 금융 플랫폼의 벤치마크 모델은 Swish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비용 지급결제 인프라의 혁신도 필요하지만 금융 산업 전반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내야 할 임무도 병행해야 하니, 가급적이면 기존의 은행들이 알아서 잘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남모를 기대가 있을 겁니다.


오픈뱅킹의 시행을 통해 은행을 중심으로 한 전통 금융기관들과,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T 대기업, 그리고 toss나 뱅크샐러드 같은 핀테크 스타트업들 간의 전면전이 맹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게임의 Rule'을 정확히 이해하는 참가자의 승리 가능성이 훨씬 높으리라는 점이겠지요.


링에 오르는 모든 참가자들이 모쪼록 오픈뱅킹 사용법을 정확하게 숙지하여, 내비게이션 켜고 엉뚱한 교차로로 빠지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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