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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vis Dec 25. 2019

'완벽'한 SF영화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를 보고 쓰는 두 번째 글

이전 글에서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본질이라는 주제를 <터미네이터 1>을 통해 이야기해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끊임없이 쫓는 자와 아슬아슬하게 도망가는 자의 추격전.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스릴감이 바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대한 니즈이자 본질이다. 그리고 그것 자체이자 그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터미네이터 1>이다. 이 내용은 이전 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한 번 보고 오기를 추천드린다.

                                             

이전 글에서 필자는 <터미네이터 1>이 밑그림과 같다고 했다.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하는 <터미네이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과 스릴의 진수였고, 그게 곧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대한 니즈가 되었다. 동시에 1편은 소묘와 같다고도 언급했다. 연필이라는 기본적인 도구만 사용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그림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카메론 감독은 1편의 속편을 낼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1편에서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1편을 보고 열광한 <터미네이터>의 팬들이 속편을 원했고, 결국 6년 만에 <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1편에서 이야기는 이미 끝났기 때문에 1편과 2편의 스토리는 거의 완벽하게 동일하다. 1편의 인물들의 역할이 다른 인물에게 옮겨지기만 했다. 그렇다면 1편과 2편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가 표현하기를, 제임스 카메론은 1편이라는 밑그림에 색을 입혔다. 

"완벽하다." 2편을 본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에서 이 말이 흘러나왔다. 하다 못해, <다크 나이트> 같은 작품도 작정하면 깔 수 있는데(#히로인 #매기 질렌할) <심판의 날>은 완벽 그 자체이다. 1편의 오리지널리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그 위에 관객으로 하여금 더 다양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첨가했다.

2편과 1편을 가장 차별화하는 요소는 T-800이다. 카메론 감독은 전편에서 극악무도한 악당이었던 T-800이 속편에서 영웅으로 등장하는 과감한 반전을 선보였다. <터미네이터>를 극장이 아니라 미디어로 먼저 접한 사람들은 T-800이 선역이라는 사실에 무덤덤할 수 있겠지만, 당시 이걸 극장에서 본 사람들에게는 아마 기겁할만한 반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존 코너 일행과 T-1000간의 어느 정도 대등한 액션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사실 대등하다고 하기에는 T-1000이 너무 월등하지만 그래도 1편이랑 비교했을 때, T-800 덕에 어느 정도 시간 벌기가 가능해졌다. T-800과 T-1000이 선보이는 로봇 간의 액션은 1편에 없었던 요소로 관객에게 스릴 외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1편에서는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가 일방적으로 쫓기기만 해서 한편으로는 답답했을 관객들의 심리가 2편에서 그래도 악당에게 유효타를 날리는 T-800 덕에 보상된 측면도 있는 듯하다.       

두 번째 차별화 요소는 '어린' 존 코너와 T-800의 관계이다. 어리다는 걸 강조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어린아이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어린이 특유의 순수함, 천진난만함, 감정의 솔직함 등이 그것이다. 극 중에서 존 코너는 T-800을 믿지 못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 사라 코너와 달리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인간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행동을 학습하는 능력이 있는 T-800은 존의 행동을 따라 하면서 인간의 외형과 행동을 닮아간다. T-800이 존의 행동을 따라 하는 장면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워서 웃긴 동시에 관객에게 '인간과 기계의 우정'이라는 철학적인 담론의 여지를 준다.

T-800은 비록 기계이지만 어찌 보면 존 코너에게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자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목숨을 바쳐 나를 지키려는 사람. 1편에서의 사라 코너의 역할이 존 코너에게 투영되었다면 카일 리스의 역할은 T-800에게 투영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존을 통해 '인간적임'을 학습한 T-800은 마지막에 가지 말라는 존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기를 택한다. 무조건적으로 존 코너의 명령을 따르도록 프로그래밍된 T-800의 설정과 반하는 이 행동은 그가 자아를 가진 로봇이 되어간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존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이 눈물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그의 행동은 마치 그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요소들이 1편과는 달리 관객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무언가 생각할만한 여지를 준다. 그 덕에 영화가 더욱 풍성해졌고 연필과 명암만 있던 그림에 색이 입혀졌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 요소는 사라 코너의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사실 사라의 캐릭터는 1편에서도 입체적이었다. 처음에는 터미네이터와 카일 리스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했던 나약한 사람이 후반부에서는 홀로 터미네이터에게 맞서는 강인한 인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사라가 2편에서 또 한 번 변화한다. 그녀는 처음에 존 코너를 지키러 왔다는 T-800의 존재와 주장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를 경계한다. 2편의 삭제 장면 중에 보면 스위치를 리셋한다는 이유로 T-800이 스스로 자신의 CPU를 꺼내 주는 장면이 있다. 이때 사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망치를 들어 그의 CPU를 박살 내려고 한다. 존의 만류로 간신히 저지되기는 했지만 이는 그녀가 얼마나 T-800을 믿지 못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녀는 T-800의 도움을 받아 탈옥에 성공하고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스카이넷과 심판의 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온 힘을 다해 존을 지키고 따르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떠올린 건 아마 카일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작동하는 동안은 그가 존의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서서히 믿게 되고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몇 년 전 자신을 죽일 듯이 쫓아왔던 터미네이터에게 먼저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존과 함께 슬퍼한다. T-800을 경계하는 사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와 협동하기를 바랐던 관객들에게는 아마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감동적인 서사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데 사라 코너는 정말 잘 만든 캐릭터이다. 1, 2편의 중심에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굳건히 있었기 때문에 이런 흥행과 완성도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지난 글에서 1편에 대해 다루고 이번 글에서 2편과 <다크 페이트>(3편)을 동시에 다룰 예정이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자칫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3편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글로 미루기로 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제 색까지 입혀 완벽해진 <심판의 날>이라는 채색화에 또 어떤 요소가 첨가될지 이야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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