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rvis Jan 13. 2020

최고 SF시리즈의 아쉬운 부활, 혹은 몰락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를 보고 쓰는 세 번째 글

필자가 처음으로 본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터미네이터:제니시스>였다. 지금처럼 SF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특별한 이유 때문에 본 것은 아니다. 그냥 고등학생일 때 친구들과 놀던 중에 당시 상영 중이던 영화 중 하나를 본 것이다. 당시에는 그럭저럭 재밌는 영화인 것 같은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혹평을 쏟아내는지 알지 못했다. 그 후에 지금처럼 SF에 대해 관심이 생긴 이후 1, 2편을 정주행 하여 시리즈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제니시스>가 왜 그런 혹평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시리즈의 니즈(NEEDS)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크 페이트>(이하, 3편)는 킬링타임용으로 본다는 생각 없이 정말 기대를 했다. 제임스 카메론, 린다 해밀턴 등 <터미네이터> 시리즈 원로 배우들의 복귀가 기대감의 주된 원인이었다. 아마도 이 영화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다들 이런 이유에서 기대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기대감 속에서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끝난 직후 필자의 평가는 '이 정도면 양호하다'였다. 나름 재미있게 보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영화는 분명히 엄청난 혹평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PC와 관련된 이슈로 공격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서론은 이 정도만 쓰고 이제 이전 글과 연결하여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2편이 1편이라는 밑그림에 색을 입혔다면 3편은 거기에 입체감을 더한 느낌이다. 1, 2편에서 기계끼리 싸울 때의 묵직함은 좀 덜했다. 하지만 초반 그레이스와 rev-9의 빠른 액션과 추격전은 훌륭했다. 그리고 마지막 액션신에서 해머(?)를 이용한 그레이스의 액션 역시 인상 깊게 보았다. 1, 2편에서는 총과 맨몸으로만 투박하지만 묵직하게 싸웠다면 3편에서는 방패나 해머, 쇠막대 등의 도구를 이용한 액션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한층 정교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되지 않는 거 같아서 아쉬운 장면이 있다. 필자는 중반에 상공에서 펼쳐지는 비행기 액션을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보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이렇게 높은 하늘에서 액션이 펼쳐지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함과 한층 거대해진 탈 것들의 추격전은 터미네이터의 가장 중요한 니즈인 긴장감을 한층 배가하는 요소였다.


개인적으로 액션과 관련해서 이 영화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스릴러스러운 요소나 터미네이터들 간의 특유의 묵직한 액션이 사라져서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3편에서의 한층 날렵한 액션은 시대의 변화에 맞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터미네이터> 1,2편이 엄청난 명작인 것은 맞지만 너무 그 완벽함에만 매몰되어 이후 작품들을 근본 없이 까내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이즈 오브 더 머신>, <미래전쟁의 시작>도 마찬가지이다.) 액션은 훌륭하지만 <다크 페이트>에는 분명 아쉬운 점이 많다. 이제는 그 아쉬운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그레이스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등장하는 그레이스는 스스로를 '강화 인간'이라고 한다. 기계의 인터페이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있고, 인간보다 몇 배는 강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초반 액션신에서 rev-9이 던진 쇠몽둥이에 팔의 살이 일부 뜯겼을 때 그 속은 기계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간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힘이 약해지고 인간이 먹는 신경계 약물이나 그녀가 갖고 있던 연료를 투입해야 다시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과 똑같이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도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설정들이 모순되는데 그것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왜 그런지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래에서 그레이스가 부상을 입어 기지에 왔을 때 스스로 강화인간 수술을 받겠다고 한 장면 말고는 그녀가 왜 저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냥 본인은 인간이고 강화됐을 뿐이라고만 말한다. 이런 점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레이스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혼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마지막에 rev-9을 죽이기 위해 몸에서 연료 전지를 꺼내는 장면은 필자도 많이 의아했다. 도대체 그레이스는 캡틴 아메리카 같은 슈퍼 솔저인 건지, <미래전쟁의 시작>에 나온 마커스인 건지, 뭔지 혼란스러웠다.             

두 번째는 등장인물들 간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레이스와 대니는 사라 코너와 접점이 되는 설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칼과도 전혀 모르는 사이이다. 이 점이 큰 문제이다. 만약 그레이스가 사라 코너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면 사라가 자신에 대해 굳이 PR하지 않아도 순순히 그녀를 동료로 맞이했을 것이다. 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되면 그레이스와 대니가 왜 사라와 칼과 같이 가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위해 납득하는 시간과 관객이 납득하는 시간이 거의 일치하게 된다. 관객은 사라 코너와 칼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둘에 대해 전혀 모르면 그레이스와 대니가 그들을 동료로 맞이하기 위해 납득하는 시간에 딜레이가 생긴다. 사라와 칼이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고, 왜 당신들을 도우려고 하는지 관객들이 다 알법한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작품의 핵심 전개와 관계없는 자신들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데에 시간이 허비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 스토리가 대단히 흥미롭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막말로 그레이스 입장에서 사라 코너는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자신을 구해준 보통의 노인일 뿐이다. 칼도 그냥 노쇠한 기계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믿음이 가겠는가?(그런데 개인적으로 가족과 사랑의 개념을 스스로 깨우쳤다는 칼의 스토리는 꽤 흥미롭게 보았다.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하다. 세 번째는 등장인물 각각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라, 칼, 그레이스, 대니 각각의 캐릭터와 역할이 너무나 단조롭다. 1, 2편과 비교하면 명확히 알 수 있다. 1편에서 사라 코너는 피보호자, 카일 리스는 보호자 역할이다. 동시에 사라는 평범한 웨이트리스에서 강인한 전사로 성장하는 캐릭터성을 갖고 있고, 카일은 미래에서 온 사라의 남편이자 존 코너의 아버지라는 캐릭터성을 갖고 있다. 2편에서 존 코너는 피보호자, T-800은 보호자 역할이다. 그리고 사라 코너는 존의 어머니로서 T-800보다 더 직접적인 존의 보호자인 동시에 인간으로서 T-800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피보호자이기도 하다. 캐릭터성 또한 이전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뚜렷하다.    

하지만 3편은 그레이스, 사라, 칼 모두 보호자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3명 모두 별다른 캐릭터성을 띠지도 않고 그냥 대니를 보호하는 데에만 치중한다. 대니 역시 캐릭터성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이다. 1, 2편에서는 사라 코너가 작품 중 성격이 변화하는 입체적인 인물로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고 중심을 잡았다. 3편에서는 그 역할을 대니가 했어야 하는데 대다수가 대니가 각성하는 과정이 너무 설득력 없다고 평하고 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그레이스가 대니를 보호하는 이유 역시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라서 새롭지 않고, 미래의 대니가 리더십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대니는 어디서 많이 들은 듯한 대사만 늘어놓는다. 이렇게 인물들의 개성이 부족한데 괜히 수만 늘어나면서 영화의 전반적인 활기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수가 늘어난 만큼 감독은 인물들에게 그 인물이 아니면 안 되는 역할을 각 인물에게 부여했어야만 했다. 즉, 여전사인 사라 코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순수 기계인 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강화 인간인 그레이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부여하여 관객들이 각각의 캐릭터를 구분하고 몰입할 수 있게끔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기껏 원조들이 귀환하여 고군분투했고 시리즈의 핵심 인물인 존 코너마저 억지로 죽이는 결단까지 감행했으나 결과가 처참해서 참 아쉽다.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단 존 코너를 초반에 그렇게 죽인 것부터가 팬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리부트의 성격을 갖는 작품으로써 전작의 흔적인 존 코너를 치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저런 식은 좀 아니었다. 존 코너의 죽음부터 시작해서 위에서 언급한 여러 아쉬운 점 때문에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팬이라면 용납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액션은 훌륭하기에 킬링타임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한 SF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