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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티나인즈 Jul 13. 2022

괜찮아, 방향만 알고 있다면

제로웨이스트 숍 <일상공감> 대표 _ 김민이


열심히 키워낸 사회적 기업 <땡큐 플레이트>를 그만두고, 제로웨이스트 숍 <일상공감>을 연 김민이 대표. 작지만 따듯하고 알찬 공간에서 그는, 서로의 작은 일상을 공감하는 삶을 제안하고 응원한다. 거창한 신념보다는 그저, 삶의 방향이 이끄는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라고 말하는 그. 일 년을 일구기 위해 무려 한 달을 방향 찾는 시간으로 보낸다는 김민이 대표의 영감 어린 이야기를 전한다.






<일상공감> 한편에 마련된 부엌에서 그릇을 정리하는 김민이 대표



유보라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랜만에 뵈어서 반갑네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민이  안녕하세요. 저는 성북구 길음동에서 제로웨이스트 숍 <일상공감>을 운영하는 김민이입니다. <일상공감>은 2021년 11월부터 열었고요. 2013년부터 2020년까지는 음식, 아이들, 디자인과 관련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땡큐 플레이트>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어요. 디자인 일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보라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잘 모르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설명을 조금 해주신다면?


김민이  말 그대로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자란 의미의 환경운동이에요. 제로웨이스트를 외치면서 제품을 판매한다는 데에 좀 어폐가 있지만. (웃음) 제로웨이스트 숍은 쓰레기를 줄여나갈 수 있는 일상용품들을 소개하고 제안하는 가게예요. 생분해되는 제품, 플라스틱과 비닐을 최소화하는 제품들을 판매하죠.



큰 창문이 인상적인 공간



유보라  저는 사실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잘 몰랐는데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더 관심 갖게 되더라고요. 대표님은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김민이  저도 사회적 기업에서 일할 때 어딜 가든 만나게 되는 단어가 제로웨이스트였어요. 아무래도 사회에 선한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 다른 사회적 가치들과 동일선상에 있는 가치니까요. 그렇지만 처음에는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사회적 기업을 정리하고 다시 출발선 위에 서게 되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거죠. 나는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사는 게 맞을까. 어떤 삶을 살아야 의미가 있을까. 그러던 중 제로웨이스트란 단어를 다시 만나게 됐고, 이거라면 제가 했던 디자인 일을 아주 내려놓지는 않으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해서 이 가게를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고민을 짧게 하고 가게를 빨리 연 터라, 저도 이제야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하하.


유보라  <일상공감>의 뜻이 궁금해지네요. 특히 ‘공감’의 의미가 무얼까 싶어요.


김민이  가게 이름을 정할 때, 제로웨이스트란 단어를 먼저 생각하긴 했어요. 그런데 제로웨이스트는 아직 저에겐 좀 크고 어려운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대신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 일상생활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자란 말에서 ‘일상’이란 단어를 따왔어요. 제로웨이스트적인 삶이란 게 일방향적인 제안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는 제안이면 좋겠단 의미에서 ‘공감’이란 단어를 선택했고요. 실은 가게 이름을 ‘일상공감’ 말고 ‘일상공간’으로 하려고도 했어요. 이 가게 공간이 저에게 주는 의미가 컸거든요.



언뜻 보면 제로웨이스트 숍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소품숍의 느낌이 난다.



유보라  어쩐지. 대표님이 공간 디자인에 공을 들이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민이  하하, 엄청 공을 들인 건 아닌데. 그냥 단순한 집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로웨이스트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공간을 일상적인 공간으로 꾸며봤어요.


유보라  편집숍, 소품숍 같은 느낌도 나네요.


김민이  그것도 노렸어요. (웃음) 작은 동네 가게이긴 하지만. 여기를 마을 분들에게 대여해 드리기도 해요. 전에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 마을 활동가들이 모일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거든요. 당시 저 또한 그런 공간의 필요를 느꼈고요. 그래서 이곳에 이 테이블을 들여놨어요. 많게는 여섯 명까지도 앉을 수 있답니다.



캡슐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기, 쓰다 만 크레용을 버리지 않고 새활용하기



유보라  와, 공간 대여도 하시다니. 그럼 주로 어떤 모임을 하러 오시나요?


김민이  독서 모임이 많아요. 청년 독서 모임, 어머니들 독서 모임 같은. 종이팩 수거 동아리 모임도 있고요. 한 번은 친구 셋이서 같이 기타를 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다고 해서 저희 공간을 내어준 적도 있어요.


유보라  작지만 알찬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민이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공간을 대여해 줄 때 비용을 받긴 하는데, 정말 의미 있는 모임이다 싶으면 비용을 받지 않을 때도 있어요. 의미 있는 마을 모임이 많이 생겼으면 하고 바라거든요. 저도 청년 시절 그런 모임이 필요했던 사람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김민이 대표의 명함은 독특하다. 디자인하고 남은 종이를 예쁘게 자르고, 그위에 스탬프를 찍어 만든다.



유보라  대표님이 이전에 하시던 일과 어느 정도 결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실 때에도 마을 분들과 교류하셔야 했잖아요.


김민이  그렇긴 한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마을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동네 가게 사장님과 관계를 맺을 때도, 사회적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사업적으로 다가가야 하니 뭔가 거리감이 있었거든요.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저도 그냥 똑같은 자영업자라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게 훨씬 편해진 것 같아요. 부담감이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유보라  이전에는 대표님이 마을의 장을 펼쳐줘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지금은 그냥 그 마을의 일원이 된 거군요.


김민이  맞아요. 더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동네 사장님들과 서로 투명하게 알아가고 있어요. 옆집 사장님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게 되고, 어디가 아픈지 알게 되고. 가까이에 있으니 화장실 가다가도 보고, 슈퍼 가서도 보고. 그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동네 가게 사장님들도 누군가 이야기해 주길 기다렸구나 하는 느낌들도 받았어요.


유보라  아까 가게에 들어올 때, 누군가와 친근하게 대화 나누시는 모습을 봤어요. 그분도 동네 사장님이신가요?


김민이  네, 그분은 저 아래 영어책 서점 사장님이세요. 외국인 손님들이 많은 곳인데요. 서점 사장님이 그분들에게 종종 동네를 구경시켜주거든요. 그래서 자주 마주친 터라 더 친해지게 된 것 같아요. 이 주변에 청년 사장님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요. 그분들과 편하게 교류하며 지내요. 어떤 가게에서 박스가 급하게 필요하다 하면, 서로 나눠주고.


유보라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실 것 같아요. 느슨한 연대가 이런 건가 싶네요.


김민이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면서, 필요할 땐 가까이 가 기꺼이 도움을 주고받는. 저 아래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는데요. 사장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종합소득세 같은 걸 신고할 때 조금 어려워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팩스 받거나 프린트하는 걸 도와드리곤 했거든요. 또 한 번은 소상공인 지원금 신청하는 걸 제가 도와드렸고요. 그랬더니 그분께서 저에게 용돈을 주신 거예요. (웃음) 진짜로요! 봉투에 넣어서. 제가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는데, 가게 사장님이 너무 주고 싶다고 하셔서 받았는데요. 이런 게 진짜 관계라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마을 사장님들에게 이런 게 필요했구나, 이런 자그마한 도움들이 서로의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겠구나, 생각했어요.





유보라  사회적 기업 대표에서 개인 사업자가 된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계신 것 같아요. (웃음)


김민이  지금까지는 재밌어요. 재밌으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재미라는 건 그 일을 계속하게 해주는 마음이잖아요.


유보라  재미 외에도 대표님에게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들이 있을까요?


김민이  예전부터 좋아하는 공간에 있을 때 힘이 나는 타입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숍을 꾸려가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됐는데요. 좋아하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놓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일상공감>도, 실은 공간부터 계약하고 3개월 뒤에야 제로웨이스트 숍을 기획한 거예요. 이 공간을 처음 보고 제가 그랬어요. 나는 저기 저 초록색이면 된다. 이곳을 만나지 못했다면 <일상공감>도 없었을지도 모르죠.


유보라  공간이 주는 힘에 저도 공감해요. 한창 코로나가 심했을 땐 굳이 어떤 장소로 가지 않아도 업무를 할 수 있고 교류를 할 수 있어서 편하다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점차, 한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것과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게 다르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되더라고요.



김민이 대표가 이 공간을 선택한 이유. "이 초록이면 됐다, 싶었어요."



김민이  저도 그래요. 아, 저의 동력이 되는 공간이 또 있는데요. 저는 일 년 중 한 달은 해외에 가서 봉사를 해요. 그 한 달의 시간과 해외라는 공간이 제가 한 해를 살아가는 이유이자 힘이에요.


유보라   년에  달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잖아요. 어떻게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김민이  20살 때의 일인데요. 그때까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어서 비행기를 타보는 게 당시 제 삶의 목표였어요. 그런데 마침 교회에서 중국 조선족 마을로 단기선교를 간다는 거예요. 무조건 간다고 했죠.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걸 느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이런 곳에서 배울 것과 해야 할 일이 많겠다’란 걸 깨달은 거예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 후로 해외 봉사는 갈 수만 있다면 다 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는 게 너무 즐거운 일이란 걸 알게 됐어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여전히 친구로 지낼 수 있고, 또 친구들을 만나러 또 갔던 곳에 가기도 하고요. 친구들이 사는 곳에 가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돕고, 함께 시간을 나누고, 좋은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 게 저에겐 굉장히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사실 사회적 기업을 그만두고 저의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도, 그 결과로 <일상공감>을 열게 된 것도, 결국은 코로나로 인해 그 소중한 시간을 못 갖게 되어서였어요. 마지막으로 갔다 온 게 2020년 2월, 세네갈이었는데요. 그동안 그 한 달을 위해 나머지 11개월을 열심히 일했는데, 그 한 달이 없어지자 내가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었죠. 고민 끝에 ‘새로운 공간’에 도전을 하게 된 거예요.


유보라  해외에 나가서는 보통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김민이  세네갈에선 땅을 보러 다녔어요. 하하. 지역아동센터를 짓는다 해서, 관계자분들과 같이 땅을 보러 다니고.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하면서는, 제가 다니고 있는 한국 교회와 연결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줬어요. 교회에서는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돕고 싶어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어딘지 볼 수 있는 눈이 없어 못 돕고 있었는데, 제가 그 눈이 되어 줘서 고맙다고요.





유보라  ‘눈’이자 ‘다리’가 되어주셨던 거네요. 그럼 대표님이 그곳에서 얻고 돌아오시는 건 뭘까요?


김민이  우선 친구들과 조카들을 얻고요.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알게 되는 시각이요. 왜,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제로웨이스트도 저에겐 그랬어요. 발을 담그기 전엔 몰랐던 세상이에요. 그렇지만 직접 발로 밟으며, 직접 경험해 보며 차차 이게 뭔지 알아가고 있죠. 그리고 저는 일을 할 때, 이 일을 왜 시작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하는 편인데요. 그런 고민은 하루, 이틀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나 자신에게 충분히 주는 편인데, 그게 ‘해외에서의 한 달’인 거죠. 덕분에, 해외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면서 내가 일하는 계기와 방향을 다시 한번 바로잡을 수 있어요.


유보라  그래선가 보네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표님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자신이 가장 건강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민이  제가 좋아하는 독일 단어가 있어요. ‘Richtung(리히퉁)’, 방향이란 뜻이에요. 저는, 방향만 잘 잡으면 무엇을 해도 된다는 걸 20대 중반을 지나서야 알게 됐어요. 그걸 알게 되고부턴 겁도 없어지더라고요. 그저,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요.


유보라  소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할 독자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드릴게요.


김민이  제로웨이스트에 대해선, 이거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거. 제로웨이스트적인 삶은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고를 때 여러 가지 선택지들 중 좋은 것을 선택하는 단순한 일이라는 거. 수세미 바꿔야 할 때가 됐는데, 이번엔 이걸로 써볼까? 이런 작은 선택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방향만 알고 있다면,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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