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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허용될 수 있을까?

by 박현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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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잘못했는가?”
이혼 소송에서 가장 먼저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혼을 사랑의 실패로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법정에 서는 순간, 사랑의 끝은 책임의 무게로 변합니다.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누구의 탓이 더 큰지, 법은 차갑게 따지죠.


그러나 사랑의 끝이 반드시 누군가의 전적인 잘못일까요?


혼인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한 시간은 언제부턴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말하지 못한 오해들,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들. 그 모든 것이 쌓여 결국에는 서로를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는 지점에 이릅니다.


최근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던졌습니다.
“혼인이 이미 깨졌다면, 그 끝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은 그 판결을 통해, 사랑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사건의 시작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


A씨와 B씨는 2010년에 결혼했습니다. 같은 해, 사랑의 결실로 딸을 품에 안았죠.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 모두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갔습니다. 오해와 다툼,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들이 쌓여갔죠. 결국 A씨는 집을 나갔고, 2016년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습니다. 이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A씨에게 더 크다.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


그렇게 A씨는 혼자서 시간의 벽 너머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딸의 양육비를 꾸준히 보내고, 가족과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2019년, A씨는 다시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부부가 아닙니다. 이제는 끝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법원의 질문 — 사랑의 끝에도 책임만 남아야 할까?


1심과 2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다시 A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번에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정말로 혼인관계가 회복될 수 없는 상태라면, 잘못한 사람이라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법원은 이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책임이 희석되는 순간


대법원은 기존의 유책주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예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1. 혼인관계가 사실상 끝났을 때

장기간의 별거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혼인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사라진 경우


2. 상대 배우자도 혼인을 유지할 의사가 없을 때

이혼을 거부하는 이유가 단순히 상대를 괴롭히거나, 재산 문제 때문일 때

실질적으로 혼인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 없이 이혼만을 거부할 때


3. 상대 배우자의 취약성을 고려할 때

상대방이 경제적·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한 경우 이혼 청구를 허용하기 어렵습니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이혼이 자녀에게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책임이 희석될 수 있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혼인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랑의 끝, 그리고 법의 역할


이번 판결은 혼인의 파탄과 법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법은 여전히 유책주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묻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현재의 혼인관계가 회복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없는 길임을 알고도, 억지로 손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서로를 더 깊이 상처 내는 일일 뿐입니다.




변호사의 조언 — 이혼 소송, 감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혼이라는 선택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절차입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감정은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혼 소송을 고민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꼭 고려하세요.


1. 혼인 파탄의 원인과 정도를 파악하세요.

법원은 혼인이 왜 깨졌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2. 별거 기간과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세요.

장기간 별거가 법적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 상대 배우자의 혼인계속 의사를 살펴보세요.

상대가 진심으로 혼인을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이혼을 거부하는 것인지 확인하세요.

4. 자녀와 상대 배우자의 상황을 고려하세요.

미성년 자녀가 있다면, 자녀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이혼은 감정의 끝이지만, 법적으로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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