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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y Mar 15. 2018

<호주생활> Go, Jony - 마흔다섯번째

Mr.Oh

"완전 재밌더라. 조니. 처음 왔는데 되게 좋은 경험이었던 거 같아."

"그렇지? 사람들도 다 좋고."

오지 슬랭 클래스를 마치고 조지아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해넌스 대로의 사거리를 지나칠 때 쯤, 난 페이스북 메시지 하나를 받았는데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이자룡씨. 저는 미국 뉴저지 D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Oh라고 합니다. 얼마 전 KBS방송에서 자룡씨가 열심히 호주 생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간 되실 때 대화 가능할까요?>

시간이 저녁 9시쯤이었으니 뉴저지는 아침이었다. 나는 Mr. Oh에게 통화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곧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자룡씨. 반가워요. 호주는 지낼 만해요?"

"네. 반갑습니다. 방송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자룡씨 방송 보고 한참을 찾았거든요. 호주 칼굴리 모든 호텔에 메일도 돌리고, 여러가지 노력도 했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혹시나해서 페이스북에 쳐보니깐 바로 나와서 이렇게 연락드리게 됐어요."

"아…….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신지요?"

"다름이 아니고, 저희 사장님이 자룡씨를 굉장히 인상 깊게 보셨어요. 호주도 괜찮지만 저희 회사에서 함께 해보실 생각 없으신가 해서요."

나로선 정말 뜻밖의 제안이었다. 나는 매우 중요한 통화였기에 조지아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대략 이러했다. 현재 이 회사는 설립한 지 약 15년 된 그룹이며, 약 다섯 개 법인을 가지고 있고 뉴저지에 본사를 두고 있다. 자금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경영방침에서 사람을 가장 우선시 생각하기에 한국에 있는 인재들을 많이 영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로선 좋은 제안이었지만, 단순한 통화만으로는 이 사람이 정말 진심인지 아니면 다른 마음을 품은 사기꾼인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뉴저지, 뉴욕, 크게 보면 미국 동부엔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 왜 저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기술도 없고, 방송에 나와 잘 한 거라곤 접시 열심히 닦고 청소 빠릿빠릿하게 한 것 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시려면 근처에도 넘쳐날텐데요."

"물론 그렇죠. 저희도 아이비리그 나오고 MBA 나오고 한 사람들 다 써봤어요. 하지만 자룡씨가 방송에서 보여준 그 열정은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다 생각합니다."

나는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정말 웃기게도,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얼마 전에 산 중고차였다. 과장이 조금만 더 일찍 연락을 줬더라면 돈 오백만원을 차 사는데 쓰지 않았을 거란 생각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회사가 정말 과장 말대로 멀쩡한 회사인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이에 난 구글에 회사 사명을 검색한 후, 국제전화를 통해 회사로 전화를 걸어 과장을 바꿔달랬고, 다행히 Mr. Oh가 전화를 받았다.

"네 과장님, 혹시나해서 회사 번호로 연락드렸습니다."

"네? 하하. 잘 하셨어요. 여기도 사기꾼들이 많아서."

"괜찮으시면 제 친구가 회사를 방문 해봐도 되겠습니까? 현재 뉴저지 럿거스 주립대학교를 다니고 있거든요."

"그래요? 좋죠."

난 내 친구에게 연락해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보고 와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이 친구는 거기에 더해 고맙게도 회사에서 한 달간 인턴을 하고 나왔다. 친구 말로는, 규모가 어마어마하진 않지만 사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배우기엔 딱인 학교라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내 인생 전체를 바꿔놓을 결정일 수 있기에 훨씬 신중해야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과, 직장 동료들, 내가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여러 가지 말들을 들었다. 이런 기회 없다는 긍정적인 조언부터, 굳이 그렇게까지 가야하나라는 보수적인 생각들까지. 

나는 전화를 받은 후 일주일간 이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회사 위치가 어딘데?"

"맨해튼."

"뭐? 뉴욕? 그거 정말 굉장하다!(Awesome)"

브런치를 같이 먹던 교회 친구들이 나에게 말했다.

"근데 가려면 차부터 팔아야 해. 차산지 한 달 됐는데."

"조니. 나한테 맡겨. 내가 팔고 너한테 송금해줄게."

지미가 나에게 말했다. 딱히 지미를 못 믿는 건 아니었고 차는 다시 사면되지만, 내 인생 전체를 흔들어버릴 수 있는 결정은 단순하게 결론나지 않았다. 특히나 이 문제에서 나를 화나게 하는 건 집주인 잭키의 태도였다.

"거길 대체 왜 가냐? 내 친구가 미국 세탁소에서 일하는데 시급 7불 받고 일하더라."

"잭키. 나는 그런 일 하러 거기까지 가는 게 아니야."

"뭐가 다른데? 우리 남편은 여기서 광부 하는데도 연봉이 10만 불이라고. 거기 3만 불 준다며? 왜 가려고 해? 그냥 하던 일 해."

나는 그녀의 태도에 상당히 화가 났는데, 첫째, 아무리 남의 일이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의였고, 두 번째, 철저하게 돈만 생각해 판단하는 속물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 이후 나는 잭키와 깊은 대화를 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딱 필요한 얘기만 나눴다. 

내 신경은 점점 곤두섰지만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나는 일마치고 항상 콜스 슈퍼마켓으로 차를 몰고 갔는데, 얼마 전 원주민 폭동이 일어난 것도 있어서 어보리지널들만 보면 긴장되었다. 세 명 정도가 몰려와서 점원에게 이유 없이 자기들에게 불친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고, 주차장엔 언제나 그랬듯 바닥에 앉아 차를 빼려는 고객들에게 접근해 2불만 달라고 구걸하는 중이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거절한 후 차를 탔는데 의도치 않게 문을 잠그면서 차량 경보음이 주차장에 크게 울리기 시작했고, 구걸하던 원주민 할머니는 주변 원주민들까지 불러와 내 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차를 빼다 왼쪽 철제 기둥을 인지하지 못했고, 내 차는 와지직 소리를 냈다. 나는 짜증이 난 채로 차에서 내려 차량을 확인했는데, 스크래치가 심하게 난 것뿐만 아니라 아예 뒷좌석 왼쪽 문이 짓눌려져 있었다. 원주민들은 꼴좋다는 듯 낄낄대며 자기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보험사까지 운전해 가는 데 지장은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자차 보험 들어놓으셨으니깐 보상은 되고요, 현재 차는 지정된 수리점에 가셔서 견적 받아보셔야 해요. 칼굴리엔 지금... 여기로 가셔야 되네요."

보험사 안내원의 안내를 받고 간 카센터에선 견적을 3천불 정도로 보았다. 5천불 주고 산 차를 3천불내고 고쳐야 된다는 생각에 천불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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