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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y Mar 16. 2018

<호주 생활> Go, Jony - 마흔여섯 번째

좋지 않은, 아니 좋은 마무리.

결국 난 미국에 가기로 했고, 과장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으나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내 학력이었다. 대학 1학년 도중 자퇴를 해버린 나로선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J-1비자 취득조차 어려웠다. 

"그럼 어떤 다른 방법이 있지요?"

"음... 우선 자룡 씨 상황으론 호주든 한국이든 대학 2학년 이상을 마치거나, 미국에서 학생 비자를 통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 다니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거 불법 아닌가요?"

"그... 렇죠."

전화를 끊은 후에 가장 화났던 건 다른 외부적 요인들이 아니었다. 기회가 와도 등신같이 잡지 못하는 나였다. 그냥, 나라는 한 사람을 저 지구 건너편에서 알아주고 좋은 제안을 했다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평소 생각했던 대로 내가 좋아하는 요리 하면서 평생 호주에 머무를 수도 있는데, 그러면 맨해튼에 가서 살아볼 일은 두 번 다시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학기 재입학 접수는 끝났어요. 그리고 학생, 지금 국제전화로 거는 것 같은데 요금 많이 나오니깐 메일로 보내든지 해요."

자퇴한 학과의 행정조교는 그렇게 딱 잘라 말하고 내 전화를 끊었다. 딱 새옹지마였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한 통의 전화는 온갖 나쁜 일들을 몰고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쁜 일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차가 박살난 것보다 더 화나는 일은 집주인 잭키에게서 터졌다.

"그러니까, 보증금을 왜 못 돌려주겠다는 건데?"

"원래 돌려주는 거 아니야. 그리고 몇 개월간 살면서 니가 쓴 가스비, 수도세는 생각 안 해? 너 맨날 요리하고 이틀에 한 번 빨래 돌리잖아. 우리 집에 사는 사람들 중에 대체 누가 그렇게 하는데?"

"나 참 어이가 없네."

"다른 사람 집세는 다 올렸어. 후키한테 물어봐. 아니면 검트리 사이트 들어가 보거나. 그리고 난 니 태도도 맘에 안 들어. 넌 날 집주인으로 대우하긴 해?"

"그건 또 무슨 소린데."

"조니. 너 말투도 좀 고쳐야 돼. 나는 여성이라고. 니가 그냥 툭툭 내뱉은 말들일지 모르겠지만, 난 상처받아. 나는 뭐 욕할 줄 모르는 줄 알아? 나도 씨발 씨발 잘 해! 그리고, 나 시민권자야. 니 태도 때문에 시청에 고소하러 갈 수도 있다고!"

"그래 씨발(Fucking) 정말 어이가 없다. 가서 고소해 봐. 시민권? 좆까고 있네. 난 뭐 불법 체류자인 줄 알아? 그리고 분명히 입주할 때 보증금 돌려준다 했었고, 수도세, 전기세 얘기는 그동안 꺼낸 적도 없어. 그런 불만 있으면 왜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했어?"

"니가 맨날 화난 표정으로 퇴근하자마자 들어가니깐 그렇지."

"그럼 내가 뭐 때리기라도 해? 그리고, 내 태도 때문이라고 그러는데, 잭키, 니 태도도 고쳐야 돼. 넌 남이 알아서 해야 할 일에 오지랖이 너무 넓어. 내가 그때 차 샀을 때, 자동차 보험료 물어보고 내 월급에 뭐 그리 비싼 보험을 드냐고? 내가 미국 갈지도 모른다니깐 넌 미국 세탁소 일하는 니 친구 얘기 꺼내면서 나 까내렸잖아. 그래 놓고 태도? 씨발 진짜 웃기지도 않네."

"니가 한국인이라서 그래. 우리 필리핀에선 그거 그렇게 민감한 문제 아니라고."

"그래 그만하자. 내가 그래도 한 반년 정도 살면서 미안한 것도 많아서, 니가 정중하게 보증금 주기 어렵다 하면 나도 그동안 미안했다 하고 끝내려고 했어. 근데 아주 별의별 핑계를 다 대는구나. 짐 정리는 다 해놨고 내일 아침 동트자마자 나갈 테니깐 그렇게 알라고."

나는 돌아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동안에 서로 어떤 좋은 기억들이 있었든, 이 집에 한 순간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뭐 그딴 년이 다 있어!"

나보다 더 화난 건 팀원들이었다. 칼굴리에서 지내는 마지막 저녁, The View on Hannans 모텔 하우스키핑 팀은 나를 위해 동네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마련해주었다.

"시민권자? 자기가 시민권자래 엄마. 하하. 어떻게 생각해?"

"미친년 아니야? 조니. 그런 건방진 년은 당장 머리채를 쥐어 흔들어야 돼. 필리핀인들의 수치야. 전화번호 불러. 아니, 그냥 주소 말해."

엘리시아가 말했다. 

"아니야. 그냥 그렇게 살라 그래. 그러다 보면 자기도 남들한테 당할 날이 올 거야."

"조니. 보증금이 얼마라고?"

다이안이 물었다.

"250불 정도."

"하... 그냥 줘 버려. 금액이 적어서 고소도 하기 힘들겠다. 어차피 내일 가니까."

"맞아 조니. 그리고 난 집주인이 자동차 보험료까지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게 제일 이해 안 돼. 자기가 뭔데? That's fucking none of her business!"

투아도 거들었다. 

"아무튼, 이 얘기는 이쯤 하고,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즐기자고."

나는 마지막을 이런 얘기만 하다 보내는 건 너무 싫었다.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들을 앞에 두고 말이다. 

"음, 나의 마지막 날이니깐, 축복을 좀 해줘야겠어. 먼저, 그레이스. 세 아이의 엄마. 차기 하우스키핑 매니저가 된 걸 축하하고, 앞으로도 가정의 평화가 함께하길."

"고마워 조니."

"투아. 가면 갈수록 예뻐지네. 요새 운동 열심히 하나 봐. 사실 처음 입사했을 때 제일 무서웠어. 나 잘릴까 봐 덜덜 떨기도 했고. 그래도 나 많이 챙겨주고 격려해줘서 반년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거 같아. 앞으로도 행복하길 바랄게."

"조니. 너도 행복하렴."

"로켈. 내가 어느 정도 할 줄 알게 되니깐 대들고 해서 마음도 많이 상했을 거라 생각해. 그래도 아들같이 대해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해줘서 고마워. 그동안 고마웠어."

"조니..."

"로미오. 이건 나의 굿바이 파티이기도 하지만 당신 생일 파티이기도 하잖아. 생일 축하하고, 오늘 비싸게 나올 텐데 계산 부탁해. 정말 좋은 매니저였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모텔을 잘 이끌어줘."

"조니. 너보고 돈 내라 할 생각도 없었어."

"앨리시아. 나의 엄마. 우리 팀 중에 가장 왕엄마, 이제 손주들 대학 갈 때도 됐지? 앞으로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길 바래."

"고마워 아들."

엘리시아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다이안. 당신은 결혼을 너무 일찍 했어. 가브리엘(다이안의 남편이자 모텔 매니저) 아니었으면 내가 데이트 신청했을 거야. 아무튼 앞으로 좋은 엄마이자 아내가 되길 바랄게."

"니가 신청했으면 딱 잘라 거절했을걸? 호호. 조니도 잘 가. 그동안 고생 많았어."

"모두들, 정말 고맙고 앞으로도 행복하길 바래."

우린 박수로 마무리했다.


가브리엘의 생일파티
직장에서의 티타임
엘리시아의 집에서.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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