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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y Mar 19. 2018

<내일로> 안동

2015.7.17. 금요일. 맑음.

경주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외국인과 한 남자가 떠들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밌는가 싶어 말을 붙여보았다. 남자는 이태준, 외국인은 Gerber Michel이다. Mr.Michel은 1년간 세계를 여행 중인데, 멕시코를 거쳐 남미를 돌고 일본, 대한민국으로 왔다고 한다. 태준 씨는 9급 공무원 시험 필기에 붙었지만 면접에 아쉽게 떨어졌고 다시 필기시험을 치고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다. 

열차가 도착했고, Mr.Michel은 다른 칸으로, 태준 씨와 나는 같은 칸으로 갔다. 태준 씨는 국내외 매우 많은 여행을 다녔단다.

“독일 옥토버페스트 갔을 때였어요. 워낙 세계적으로 알려진 축제여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오는데,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서 맥주를 마시는 거예요. 진짜 웃긴 게 서로 말도 안 통하는데 막 웃고 떠드는 거 있죠. 그러다 벨기에 남자랑 독일 남자랑 갑자기 팔씨름을 하는데 사람들이 다 거길 둘러싸가지고 테이블을 치면서 우 우 우 우 우 우 우 우 우 우 하고.......”

“하하하 와 진짜 재밌겠네요.”

“자룡 씨도 시간 나면 꼭 가보세요. 되게 재밌어요.”

둘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조금 전부터 건너편에 앉아있는 할매가 전화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 그래가 밥상을 차리주니깐 이 영감쟁이가 저녁밥 꼬라지가 이기 뭐꼬 하는기라. 아요 김도 있제 김치도 있제 계란 후라이도 있제 밥도 한그슥 퍼놨제 미역국도 끓이놨제 와 그리 승질을 부리요 하니까는 밥상을 탁 엎는기라. 그래가 내가 그걸 치우면서 너무 서러워가꼬 짐을 한 보따리 싸가꼬 밀양서 아침 일곱시... 일곱시 사십분차 그 서울가는기차 타가꼬 아침도 못 먹고 며느리한테 전화해가꼬 아가 내가 며칠만 느그 집에 있어도 되겠나 카니깐 어머니 그런거 있으면 미리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요 이칸다!”

할머니가 한탄하는 소리가 기차 한 칸을 울릴 정도가 되자 승무원이 다가와 말린다.

“할머니.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조용히 해주세요.”

“응? 므라꼬예?”

“좀 조용히 해주시라고요.”

“내가 너무 서러워가 안 이라능교”

할머니는 좀처럼 조용해질 것 같지 않다.



안동역에서 내리다. 역내 자율 보관대에 캐리어를 두고 이름을 걸어놓다. 일행이 있다면 찜닭을 먹으러 갔을 텐데 혼자 먹기엔 너무 비싸다. 안동 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음식은 간고등어인데 시장 안에서는 백반을 팔지 않는다. 역 바로 옆에 있는 집이 가장 유명하다. 한 끼에 구천 원이다.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아끼고 싶어 장터 안에서 삼천오백 원어치 보리밥과 칼국수를 먹다. 맛있지는 않으나 배불리 먹다. 할매의 인심이 넉넉하다.

하회마을 가는 버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미리 시간을 체크하지 못해 삼십 분을 마냥 기다렸다. 시내버스에 승차해 휴대폰 NFC를 찍으니 사용할 수 없는 카드라고 한다. 소도시나 시골에선 이런 경우가 흔하니 잔돈을 미리 챙겨두는 게 좋다. 하회마을까지는 40분 정도 소요된다. 여행 혼자 와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딱 두 가지인데, 밥을 혼자 먹어야 된다는 것과 이동시간에 딱히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큰 장점이다. 40분의 시간 동안 창 밖을 바라보며 기록을 정리하고 중간중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썼다.



하회마을. 시내버스에서 내리면 하회마을 입구까지 따로 셔틀을 타고 가야 한다. 셔틀에서 내리니 저 멀리 초가집들이 보인다. 도착했을 때 탈춤이 시작되는 시간이어서 바로 공연장으로 갔다. 



탈춤을 구경하다. 공연은 일반적 경상도 사투리와는 차이가 있는 안동사투리로 진행된다. 대사 하나하나에 풍자가 녹아있다. 

“소 염통 살 사람 없소? 염치없는 사람이 사면 염치가, 양심 없는 사람이 사면 양심이 생기오.” 

성적인 욕망 역시 숨김없이 드러낸다. 아낙네가 소변보는 걸 목격한 중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낙을 이끌고 간다. 소불알을 사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는 양반과 선비가 서로 가지려고 다툰다. 



하회마을을 둘러보다. 전주 한옥마을이 관광객과 잡상인들로 시끄럽고 격자 구조의 거리 안 비슷한 한옥들의 반복이었다면 안동 하회마을은 평온하고 새마을 운동 전의 농촌 마을을 찾아온 느낌이다.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 중인데, 시에서 이 모습을 유지하려 하다 보니 전기선 하나 설치하는데도 허가가 까다롭다. 



마을 중앙엔 커다란 당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의 바람이 한가득 걸려있다. 

강변에 앉아 쉬다. 들꽃을 바라보다. 남들이 정한 볼거리를 쫒다 보니 들꽃의 아름다움을 지나칠 뻔했다.

시내로 돌아오다. 간고등어 정식을 먹다. 9천 원. 거금이다.  안동 간고등어의 명성에 기대한 바가 커서인지 실망도 크다. 내가 입이 저렴해서인지 시장에서 먹는 돼지국밥이 되려 낫다.

게스트하우스에 연락하자 사장님이 픽업하러 오셨다. 사장님이 차를 몰면서 중간중간 보이는 것들을 설명해주신다. <류> 게스트하우스는 월영교 옆에 위치해 있는데 1층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시골 큰아버지 댁이랄까. 주인 내외분들도 큰아빠 큰엄마 같으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해져 스승님께 전화 걸다. 안 받으신다. 



테라스 창 너머로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이 들어와 방 안을 채웠다. 이불 위 채 백일이 안 된 아이가 스승님을 보며 웃고 있다.

“기분 좋아? 까꿍! 엄마하고 산책 갈까?”

스승님을 뵐 때 항상 외유내강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엄마로서의 스승님은 그 내강한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외유 내유. 모녀를 보니 행복이 느껴진다.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스승님께 여쭈었다.

“음... 그런 느낌이야. 이제까지 나는 항상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느낌이었거든. 근데 아이를 낳고 가만히 보니까, 어떤 책임감이 들어서 함부로 그런 생각 못 하겠는 거야. 이 아이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런 의무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단순히 엄마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어.”

“굳이 엄마라서가 아니라요?”

“그렇지.”

아기는 기지개를 켠다. 아등바등하다 나를 가만히 본다. 그러고 활짝 웃는다.



방 안 룸메이트들과 월영교 구경을 하다. 은은한 조명으로 치장한 목조 다리 월영교가 조용히 빛나고 밝게 뜬 달이 잔잔한 강가를 덮는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술을 사 와 방 안 여성분들을 불러 자리를 마련했다. 이야기가 오가면서 술이 점점 줄어든다.

달이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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