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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y Mar 19. 2018

<내일로> 동해바다

정동진 추암 묵호 태백

2015.7.19 일요일. 흐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다열차를 끊으러 정동진역으로 왔다. 특실 칸인데 내일로 혜택으로 인해 7,500원에 끊다. 바다를 보며 게스트하우스로 걸어오다. 숙소 앞 벤치에서 심하게 취한 아줌마가 전화로 욕을 해댄다.

“이 나쁜 새끼야!”

그렇게 한참을 혼자 지껄이다가 벤치에서 잔다. 입 돌아가지 않을까.

라운지에서 토스트를 먹는다. 사장님과 사모님이 카운터에 계신다. 지나치는 손님들과 인사했다. 우유를 한 잔 더 마시고 있던 도중 그 취객이 라운지로 와서 기웃댄다.

“우와, 토스트다. 사장님 이거 저도 먹어도 되는 거죠?”

“아유 그럼요.”

그렇게 기웃대다가 혼자 노트를 쓰고 있는 내 앞에 앉는다. 매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음... 뭐 하고 있어요?

“글 써요.”

“오, 작가신가?”

“작가는 아니고.”

씩 웃는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제의 기록들을 정리한다. 아줌마가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자기는... 뭔가 천재 같은 느낌이 나. 킥킥킥”

매우 방해가 되긴 했지만,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되어 말장난이라도 할 요량으로 받아쳤다.

“천재의 정의가 뭔데?”

“천재? 그걸 몰라서 나한테 묻는 거야?”

“각자가 생각하는 천재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천재! 많이 아는 게 천재지.”

“뭘 아는데?”

“앎이란! 펜 좀 줘봐.”

갑자기 내 노트에다가 적기 시작한다.

“앎이란! 상식, 틀, 개념, 규칙, 규율 같은 거지.”

앎이란 그런 거였구나. 토스트의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문다.

“근데 너!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게 시종일관 반말한다?”

“굳이 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까.”

“왜? 내가 오십이 넘었는데?”

“나는 상식, 틀, 개념, 규칙, 규율 같은 걸 잘 안 지키거든.”

“뭐? 크큭! 너 좀 재밌다!”

갑자기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니 실컷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가야겠다.

“그럼 자기는 그런 거 다 무시하면서 사는 거야?”

“필요할 때는 존중하지.”

“뭐야! 기분 나빠. 그럼 나는 존중받지 못한다는 거지?”

그녀가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아니지. 진정한 대화의 자유는 서로가 동등할 때 가능하니까.”

“오. 역시. 그래 그럼. 너의 싸가지를 인정하노라!”

그 이후 군중심리, 인격, 사회질서 등의 열띤 토론을 펼치다 피곤했는지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굉장히 많은 얘기를 했지만 영양가는 없었다.

“자룡 씨 많이 힘들었죠?”

취객이 들어간 후 사모님이 나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재밌었는데요.”

“그래도 화 안 내고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저런 손님 오면 나도 감당이 안 된다니까.”

사모님은 웃으며 개밥을 한 움큼 펐다. 


게스트하우스 정문 앞에는 “정동이”라는 썰매개가 있다. 사람을 잘 따른다.


“자룡 씨 고생도 했는데 우리 게스트하우스 마스코트 보여줄까?”

사장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마스코트? 사장님을 따라가 보니 조그마한 사륜오토바이 하나가 나타났다. 

“이게 뭐죠?”

“고 카트. 내가 이거 산 지 이틀 짼데 진짜 재밌어. 어제는 하루 종일 탔거든. 이거 타고 강릉까지 갔다 왔다니까. 허허! 태워줄까?”

“네!”

시동을 걸자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조수석에 올라탔다. 고 카트는 왱왱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언덕과 해변길을 지나 질주한다. 정말 신난다! 어찌나 재미나던지 시동이 꺼질 때까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프게스트하우스 마스코트 고카트


고 카트를 신나게 탄 이후 다시 로비에 앉아 글을 쓰다. 

“뭐 쓰세요?”

알바 여자분이 부스스한 얼굴로 물었다.

“여행기요.”

“와 정말요? 멋지네요.”

그녀의 집은 서울이다. 삼 개월 전쯤 정동진에 놀러 왔다가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여기 직원으로 짐 싸들고 왔단다.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녔다고 한다.

“제주도가 정말 좋아요. 거기는 그냥 수영이 아니라 다이빙하고 그런다니까요.”

“그러면 그쪽처럼 게스트하우스에 눌러앉기도 하겠네요?”

“실제로 그런 일이 많죠. 대신 열정 페이. 아예 안 주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대신 질리도록 놀 수 있으니깐 뭐.”

“좋네요. 여기는 언제까지 계실 생각이에요?”

“글쎄요. 주위 친구들도 너 언제까지 그렇게 히피처럼 살 거냐. 취직도 해야 되고 결혼도 해야지 하는데... 당장은 이렇게 살아도 될 거 같아요.”

그녀가 웃었다.

체크아웃. 바다열차를 타러 오다. 돌고래가 그려져 있다. 기존에 파란색이 더 좋았는데 리뉴얼돼서 피바다 열차가 되었다. 약간의 비바람이 파도를 만든다. 구름 없는 맑은 날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좌석은 바다를 향해 설치되어 있다. 객실 하나하나에 바다가 가득하다. 시트엔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터널을 지날 때는 객차에 조명이 켜지는데 수족관 내부에 들어온 느낌이다. 텔레비전은 기차 전방에 달린 카메라가 비춰주는 길을 생중계한다. 창 밖 동해는 에메랄드로 빛난다.   

승무원에게 여쭈어 루트를 수정하다. 종착역 삼척은 볼 만한 게 없다고 한다. 추암에 내려서 촛대바위를 보고, 묵호에서 논골담길, 등대, 출렁다리를 보기로 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어달리 쪽을 가보는 것도 좋다. 왕복 티켓을 안 끊었는데 내일로니까 특별히 돌아오는 기차를 태워주겠단다.

기차 안에서는 자체적으로 라디오 방송이 나오며, 퀴즈, 빙고 등의 이벤트도 진행한다. 신청곡과 사연을 써서 승무원에게 건네니 텔레비전에 나의 사연이 떠올랐다.



“다음 사연 읽어드릴게요. 

23세 제대한 지 반년. 잘 다니던 알바를 그만두고 무작정 배낭여행 왔습니다. 11박 12일로 전국을 여행할 생각입니다. 

와 정말 멋지네요. 이자룡 씨, 남은 여행 일정도 파이팅하시고 즐거운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신청곡 제이레빗 – 요즘 너 말야 틀어드릴게요.”

기타 전주가 들리고, 신청곡은 바다를 따라 흐른다.


요즘 너 말야

참 고민이 많아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나봐

언제나 함께하던 너의 노래가

이제 들리지가 않아

사실 넌 말야

참 웃음이 많아

누가 걱정하기전에 툭툭 털고 일어나

해맑은 미소로 날 반겨줄 거잖아

앞에 앉은 아저씨가 사연을 보더니 나를 돌아보며 맞죠? 하고 묻는다. 맞습니다 하니 엄지를 치켜들며 응원해주신다!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어른이 된다는 건 말야

모두 너와 같은 마음이야

힘을 내보는 거야

다시 너로 돌아가 이렇게

희망의 노랠 불러 새롭게

널 기다리는 세상을 기대해봐

다시 달려가 보는 거야

힘이 들고 주저앉고 싶을 땐 이렇게

희망의 노랠 불러 새롭게

언젠가 모두 추억이 될 오늘을 감사해

기억해 힘을 내 

My friend




추암역에서 내렸다. 관광안내소에서 전체적 일정을 조율하다. 오후 5시쯤 묵호에서 태백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 일정상 어달리는 너무 멀다. 


촛대바위를 보다. 날카롭게 서 있다. 그 아래 바다는 맑게 빛난다.

한 남자아이가 씩씩하게 혼자 산책하고 있다.

“안녕.”

“안녕 아저씨!”

“몇 살이니?”

“다섯 살이요. 난 태교예요. 아저씬 어디로 가요?”

“나는 산책 중이야. 같이 걸을래?” 

둘이 동해바다를 산책하게 되었다. 삼 분 정도 걸으니 아이에겐 너무 멀리 온 듯하다.

“엄마가 걱정할 거 같아요. 돌아갈래요.”

“그래. 태교야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 

태교는 바위 위에서 귀엽게 포즈를 취해준다.



이리저리 걷다가 왠지 기차를 놓칠 거 같아 가보니 다행히도 딱 맞게 왔다. 무궁화호는 추암역을 경유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기차를 놓쳐버리면 시내버스를 물어 물어 타야 한다.


묵호역 도착. 수변공원이 어느 방향인지 모르겠어서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길을 여쭈어 보다. 여행지에서 최고의 길 찾기는 길가의 할머니에게 여쭤보는 것이다. 전국 어딜 가나 장보고 돌아오는 할머니가 길가에 계시니 예를 갖춰 여쭤보면 어디서 왔노? 자네는 어서 왔는가? 어서 왔어유? 각 지방 특유의 정으로 말을 건네주시니 정답게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묵호항을 구경하려고 보니 출입금지다. 어디서 바다를 볼 수 있을까 싶어 시장 쪽으로 가보니 어선 정박장이 있다. 혹시나 이쪽도 통제할까 봐 장터 할머니 분들께 여쭤보다.

“여기 구경할 수 있어요?” 

“구경? 많이 하면 만원이니까 팔천 원 치만 하거라!” 

깔깔 웃으신다. 자세히 보니 수박을 드시고 계신다. 내가 대뜸 말했다.

“그 수박 한번 맛있겠네!” 

“일로 와서 먹어라!”

뜬금없이 파티에 참석했다. 

“아이고 근데 어디서 온 양반인가?”

“고향은 경남 함양이고 집은 경남 창원이요. 전국을 여행하고 있지요.”

“장하네. 대단하구먼.”

“대단하지! 우리 아들이 제발 했으면 하는 게 여행이여. 우리 아들내미는 방구석에만 박혀있다니까. 엄마가 돈 줄 테니까 제발 좀 나갔다 와라 해도 안 가.”

그 말을 듣자 내가 말했다.

“아니 이렇게 여행도 해봐야 맞는 기지. 그래가 할머니들한테 수박도 얻어먹고!”

“아이고 우습다. 사람이 능글맞은 데가 있네.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어.”

“그나저나 요쪼게 수변공원인가 뭔가 방파제 예쁘게 깔린 곳이 있다카던데 어데로 가면 되요?”

“이 바로 앞에 있어. 이쪽으로 쭉 가봐. 여기 있는 수박 다 먹고 가거라!”

인심 좋은 할매들 덕에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었다.



수변공원. 방파제가 멋지게 깔려있다. 바다에는 배들이 떠 있고 해안가 저 멀리로 산이 보인다. 사람들이 많다. 낮술 하는 사람들,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 단체관광객들 등. 대낮부터 취한 아재가 혼자 떠들고 있다. 어느 도시에 가나 꼭 한 명쯤은 있는 것 같다.

논골담길을 걷다. 달동네로 향하는 길엔 바람개비들이 서 있고 담벼락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걷던 중간에 비가 조금씩 떨어져 다이소에서 산 우비를 입었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 다음부턴 제대로 된 판초우의를 가지고 다녀야겠다. 

묵호 등대 도착. 노트에 빗물이 한 두 방울 떨어져 번진다. 빨리 움직여야겠다 싶어 내려오다. 등대에서 내려와 출렁다리라는 곳에 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뭐가 없다. 이 정도 흔들 다리는 전국에 많고 많다.

발 통증 때문에 고생이다. 안동에서는 오른발이 아프다가 어제쯤 괜찮더니 이제 왼발이 아프다. 자기 전에 발 마사지를 해줘야겠다.

묵호역으로 돌아오다. 기차를 기다리는 내일러 두 명과 이야기하다. 커플. 전남 순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이러저러한 정보를 공유했다. 

여기서 여행자에게 말 걸기 위한 한 가지 팁을 소개하고자 한다. 역시 제일 좋은 방법은 길을 묻는 것이다. 내일러라면 길 같은 거 알 리 없다. 약간의 정적 이후에 내일러시죠? 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이 순천 커플에게는 이쪽 플랫폼이 태백 쪽으로 가는 게 맞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다 마음 맞으면 동행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어보자. 여행하면서 느끼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백으로 가는 기차를 타다. 내일 강원도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데, 오후 네시 반에 출발해서 아산까지 여섯 시간 정도 기차만 타야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좌석에 앉아 있다가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가 나서 열차카페 칸으로 갔더니 진상 중년들이 모여서 자리 깔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일행으로 보이는 아재들이 열차카페 노래방에 4명씩이나 들어가서 승무원에게 덥다고 난리다. 정말 진상이다. 

카페칸에서 빨간 바지가 준 과자를 까다. 질소가 다 빠져있다. 한 아저씨가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으시길래 당연히 그러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손에 하이트 캔맥주가 있길래 안주로 과자를 좀 드시겠냐고 여쭤보았다.

“그러면 내가 맥주 한 캔 대접할게요.”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하이트 한 캔을 사주신다. 혼자 여행 오셨고, 동묘 7번 출구에서 포장마차를 하신다. 이 아저씨는 젊을 적부터 국내외 무수히 많은 여행을 다니셨다. 딸이 둘이다. 예쁜 데다가 공부도 잘해 유학도 갔다 왔다고 자랑을 하신다. 자기의 자식 교육 철학은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알아서 잘들 큰단다.

“젊을 때는 견문 넓히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 그 견문을 어떻게 넓히느냐, 그게 바로 여행이거든. 많은 곳을 가 봐. 보는 눈이 달라질 거야.” 

격려해주신다. 그밖에 한참 동안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눴다. 태백역이 가까워지고, 인사드렸다.

“내 명함이야. 나중에 동대문 오게 되면 우리 포장마차 한 번 들리게. 연락해!”

“연락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꾸벅 인사드리고 태백역에 내렸다. 


이번 여행은 내일로 티켓 5일권에 7일권을 붙인 장기여행이다. 이 중 5일권 발원지가 바로 태백역이다. 무료 숙박 혜택이 있다. 매표소에 가서 내일로 태백 발권자라 말씀드리니 역무실 내부로 안내해주시고 커피를 타 주신다. 숙박증을 작성하고 기념품을 받다. 

“태백에 오면 주로 어디를 가나요?”

“바람의 언덕을 제일 많이 가지요. 관광객들이 가장 만족하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내일 오전 열 시까지 태백역으로 오시면 차량 지원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대신 편도니깐 돌아갈 땐 시내버스를 타야 해요.”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역 문을 나섰다. 시(市)라고는 믿기지 않는 작은 동네를 산이 감싸고 있다. 한여름인데도 습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시원한 바람이 나를 지나친다. 숙소를 향해 걷다.

“계십니까.”

문을 열고 여쭈었다. 사장님이 텔레비전을 보다 나오신다. 숙박증을 건네드리자 지하로 안내해주신다. 방 문을 열자 큰 방이 나왔다. 본래 내일러들이 같이 쓰는데, 오늘은 나 말고 아무도 오지 않았으니 혼자 쓰란다. 짐을 풀고 와이파이를 켜니 잡히지 않는다. 씻으려고 보니 수건이 없다. 1층에서 혹시 수건 있냐고 여쭈었다.

“공짜로 재워주는 마당에 수건까지 찾아? 그런 건 들고 다녀야지.” 

웃으시며 허리를 굽혀 창고로 들어서더니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수건을 건네주셨다.

빨래를 드럼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 씻고 밥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은 토스트, 점심은 그냥 우유, 간식으로 김치만두를 먹었다.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적이 없다. 모르면 물어서 가라는 나의 신조대로 쉬고 있는 아줌마에게 물으니 앞으로 가서 옆으로 쭉 간 다음 연못에서 꺾으면 된단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황지자유시장은 모든 상가가 휴일이다. 시장에서 먹는 게 가장 저렴하지만 어쩔 수 없으므로 시장 주변에서 먹기로 하다. 


시내 한복판에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이 낙동강의 발원지다. 보통 발원지라면 깊은 산속에 숨겨져 있는 옹달샘을 떠올리는데 낙동강의 발원지는 번화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식당을 찾으려고 길을 걷다가 가게에 제비가 들어와 못 나가고 있는 걸 보다. 별 이상한 동네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한참을 걷다가 김밥천국에 도착했다. 김치찌개 한 그릇에 4천5백 원. 싸다. 허겁지겁 먹고 걸을 힘이 없어 택시를 탔다. 차 안에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사 년 동안 네 편. 수상경력 없음. 쏟아부은 돈 약 사백만 원. 수치로 나타내면 그 정도다. 

영화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동안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SNS에 얼마 전 남긴 두 문장. 이제 끝이다. 몇 년간 나를 정의했던 "독립영화감독"이라는 꼬리표가 사라졌다. 이제 앞으로 나를 정의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왜 갑자기 그러는데.”

시화가 물었다. 두 개의 머그컵 속 커피는 반쯤 남았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아마도

“더 잘할 수 없어서겠지.”

“얼마나 해봤다고 그래.”

“음... 사실 이젠 영화가 재미없어.”

거짓말이다. 난 그냥 핑계 대고 있는 거다. 타인에게 평가받는 삶에 지친 것이다. 그게 두려운 거고.

시화는 네 번째 작품 <톡 Talk>의 촬영감독이었다. 현장을 경험해보겠다는 열정 하나로 짐 싸들고 서울로 상경했고, 현장에서 촬영을 배우고 있다.

그녀가 말했다.

“그려. 연출 말고 제작 쪽으로 배워보든지.”

“영화 말고 다른 거 할 것도 많을 텐데 뭐.”

“흠.”

“일단은 좀 찾아볼래. 상담치료도 받아야 되고.”

“그려. 당분간 좀 쉬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녀는 항상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 그것도 괜찮지.

남은 커피를 마신다. 내가 말했다.

“여행이나 가볼까.”

“그것도 괜찮지.”



방이 온돌방이어서 그런지 후끈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동네는 여름에도 열대야가 없는 관계로 밤에 팬티만 입고 자다간 감기 걸리기 딱 좋다. 

빨래를 널고 옥상 위에 올랐다. 옥상에서는 무려 유플러스 와이파이가 터진다. 사진을 정리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하늘을 덮었다. 

은하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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