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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y Mar 27. 2018

<내일로> 군산, 첫번째

온양온천, 군산 구도심

7.21 화요일. 비.

자던 중 여러 번 잠에서 깼다. 모기가 있나 싶었는데 물린 자국이 없다. 날파리가 괴롭혔었나 보다. 창문 밖을 확인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지중해 마을 앞 트라펠리스 아파트에서 시내버스를 타다. 경주에서부터 타 왔던 느릿한 시내버스와는 다르게 이 곳 버스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를 세차게 달린다. 승객 중 서로 정겹게 인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아마 몇십 년 후에는 자라목을 가진 시민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고급 아파트를 바라본다. 내가 이제껏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저런 비싼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잘 살았는데. 저런 게 과연 필요한 걸까.  

다음 버스를 타고 온양역에 도착하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뭘 먹어야 할지 추천을 구하자 원래 온양이라는 곳이 딱히 먹을 걸로 이름난 게 없단다. 그래도 배고픔을 해결해야 되긴 하니 무작정 온양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칼국수집 간판이 보여 가격표를 훔쳐보니 옆집 5천 원짜리 돼지국밥보다 비싸다. 고개를 돌리고 시장을 쭉 가니 빵집이 나왔다. 먹을만한 빵이 있나 보았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이 샌드위치 얼마예요?”

“하나 천 원.”

“허허 뭐가 이리 쌉니까? 이래 팔아가 뭐가 남소?”

“다 남아요. 하나 드릴까?”

“두 개 주소.”

빵을 사고 옆집 슈퍼에서 우유를 사려니 500ml 하나가 1,600원이다. 미친놈의 우윳값. 그냥 천 원짜리 주스를 샀다. 

먹을 곳을 찾아다니다 공중전화에 앉아 도라지를 파는 할매를 보았다. 

“할매. 요 근방에 어디 앉을 데 없소?”

할매는 말없이 자기 옆 공중전화를 권한다. 그래서 할매 옆 공중전화에 앉아 빵을 깠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지만 이젠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말없이 먹고 있자 다른 할매 하나가 얼쩡거리며 도라지 할매를 보고 말한다. 

“돈 좀 그만 세유! 저번에 그렇게 당해놓고도 그래.”

뭔 일이 있었나 보다. 얼쩡거리는 할매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뭐하는 사람이에유?”

“여행객입니다.”

“할매 옆에 있지 말고 그냥 가슈.”

“빵만 먹고 가려했는데요.”

그러자 더 이상 내쫓지는 않는다. 궁금해서 물었다.

“뭔 일이 있었어요?”

“저번에 저 할매가 다 보는데서 돈 세다가 날치기를 당했슈.”

“아이고. 이 도라지 팔아서 얼마 남는다고 그런 짓을 해요. 이런 썩을놈이 다 있나.”

“그래서 아저씨 보고 가라고 한 거유. 학생인 거 같은데 조금만 더 나이 들어 보였어도 당장 쫓아냈을 거유.”

암튼 쫓아낼 생각은 없나 보다. 잠자코 빵을 먹었다. 그러고 있으니 도라지 할매가 묻는다.

“아저씨는 어디서 왔어유?”

“경남 창원에서 온천욕 하러 왔어요.”

“우리 손자 나이만 하겠네. 우리 손자가 서울에서......”

묻지도 않은 손자 자랑을 늘어놓는다.

“...... 암튼 그 한화 거기 다녀유.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유?”

“나요? 내는 글 쓰는 사람이요. 전국을 돌아댕기면서 글을 쓰지.”

할매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한화그룹 다니는 손자에 비하면 그렇겠지.

“할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소?”

“사진은 왜?”

“도라지 때깔이 너무 고와가지고.”

“사지도 않을 거면서 사진은 왜 찍어유!”

짜증을 낸다. 잠자코 남은 빵을 마저 먹었다. 그러고 있으니 아주머니 한 분이 도라지를 사러 왔다. 

“이거 얼마예요?”

“5천 원.”

“4천 원에 해줘요.”

“그러면 남는 것도 없슈. 오천 원에 가져가유.”

산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닐봉지에 도라지를 담는다. 아주머니는 잠자코 지갑을 꺼냈다. 말로만 듣던 장터 밀당을 직접 목격하니 흥미로웠다. 조금 앉아 있다가 할매에게 건강하세요 인사드리고 이동했다.

온천 도착. 노천탕에 가서 몸을 담그다. 팔을 양쪽으로 쭉 벌려 편안히 누웠다. 수 분 지나니 피로가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탕 내부에 웬 안마샤워기가 있길래 틀어보니 기관총을 쏘듯 내 몸을 갈긴다. 이 아픈 걸 영감님들은 똑바로 서서 맞고 계신다. 존경스럽다. 반신욕과 사우나까지 마치고 나니 피로가 싹 가셨다. 나와서 몸무게를 재보았다. 스무 살 이후로 58kg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내 몸무게인데 계기판은 57.9kg를 가리킨다. 여행이 고생스럽긴 한가보다.


온천욕을 마치고 온양역에 도착하다. 


역 옆에는 온천수로 시민들이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철길 굴다리 아래에는 술을 까는 사람, 화투 치는 사람, 마실 나온 사람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여있다. 자세히 보니 굴다리 한가운데에 사람이 한 명 쓰러져 구급대원이 실어 나르고 있다. 놀랍게도 구조대원 이외에 그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도 노름하고 족욕하고 술 마시기 바쁘다. 


한가운데 사람이 쓰러져 있지만, 모두 관심이 없다.


어릴 적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와 친한 사람들이 나에게 찾아와서 위로해주겠지? 내가 만약 죽으면 내 장례식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리가 없지는 않을까? 지금 실려가는 남자를 보니 그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사회는 한 개인이 아프던, 다치던, 죽어가던, 별 관심이 없다.

장항선 새마을호 탑승. 입석 칸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런 거 없단다. 꼭 그거 아니더라도 이용객이 그렇게 많지 않아 아무 데나 앉으면 된다. 그리고 대단히 편안하다. 뒤로만 꺾이는 게 아니라 발도 들 수 있게 해줘서 우등고속버스를 타는 느낌이다. 게다가 충전 단자가 있어 충전을 할 수 있다. 이제껏 바닥에 퍼질러 자다가 이런 대우를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다. 난 좌석에 앉아 30분을 내리 잤다.

눈을 떠 보니 저 멀리 논밭이 예쁘게 펼쳐져 있다. 열차는 충청도의 마지막 관문 장항을 지나 전라도의 시작 군산으로 들어섰다.

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불편해하는 할매를 발견했다. 

“할매. 도와줄게요. 내 손 잡으이소.”

“아이고 고맙네!”

둘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섰을 때 지팡이가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할매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했다. 역 앞 정류장까지 할매의 짐을 들어드렸다. 

“아이고 학생이 어찌 이리 착할까. 고맙네, 고마워. 어디서 왔는가?”

“내는 경남 창원에서 왔습니다.”

“그 먼데서!”

“멀기는. 어젠 강원도 태백에 있었는데.”

“대단하네, 대단해. 젊음이 좋아.”

할매는 환히 웃으신다. 나는 역 앞까지 짐을 들어드리고 할매의 건강을 빌어드린 후 버스를 탔다.

장애인, 노약자 분들을 위한 배려가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유럽에서는 시내버스에 휠체어 타신 분이 편하게 올라올 수 있게 당기면 내려오는 경사로가 있단다. 선진국이 되려면 그런 약자에 대한 복지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그런 약자가 된다.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군산은 한국에서 근대 일본식 건축물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동국사, 구 군산세관, 구 조선은행, 적산가옥 등이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의 중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영업한, 몇십 년 역사의 화교 식당도 많다. 대한민국 최초의 빵집 이성당 역시 군산에 위치해 있다. 

목조건물로 꾸민 외관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나비잠 게스트하우스가 나를 반긴다. 벨을 누르자 주인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가정집을 개조한 집이며, 아기자기하다. 게스트하우스로선 드물게 개별 화장실, 샤워실이 비치되어 있다. 

밖에 나와 일지를 작성하다. 게스트하우스 자체가 예뻐서 그런지 구경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글을 쓰던 중 여성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들어온다. 신기해서 물었다. 

“그거 대여해주는 건가요?” 

“네? 이거 제 거예요.”

“아. 이 집 따님이세요?”

“아니요. 제 차 안에 넣어서 온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난 배도 고프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혼자 오셨으면 저녁 같이 할래요?”

“네? 저녁이요? 음...”

어어... 내 앞에 앉았다. 그녀는 식탁에 팔을 괴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뭐 먹을 건데요?”

“글쎄요. 여기... 쇠고기 뭇국 맛있다는데.”

이것도 나름 고민해서 낸 대답이다. 나 혼자 먹는 자리가 아니니까, 난데없이 초면에 돼지국밥을 먹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아유. 벌써 친구가 생겼네!”

주인 이모가 나오며 나에게 말했다. 이모는 대야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저 잠깐만 방에 갔다 올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들어간 후, “잠깐” 동안인 30분 후에야 나왔다. 그 사이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친 티가 났다.

“혹시 짬뽕 안 땡겨요? 우리 복성루 가요.”

“거기 오후까지 할걸요? 네시인가?”

“아 정말? 음...”

“한일옥 가요. 거기 되게 맛있대요.”

“짬뽕 먹고 싶은데.......”

결국 우린 한일옥으로 향했다. 저녁의 식당은 바빴다. 반찬들이 깔리고, 약간의 어색함이 흐른 후에 우린 서로를 알아갔다. 그녀의 나이는 서른, 현재 모바일 게임 디자인 일을 한다. 일주일 휴가를 받아 혼자 차 끌고 여행 왔단다.

“일은 재밌겠네요?”

“아, 그냥 일이에요. 게임회사지만, 회사죠.”

이 여성분과 대화를 해보니 맞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이 안 맞는 소개팅녀와 커피(사실은 뭇국)를 마시는 기분이다. 대화의 끊김이 상당히 많았는데, 나도 별 궁금한 게 없었고 그쪽도 별 그런 게 없었다.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뭇국이 나왔다. 이 집 뭇국은 차원이 틀린데 육수를 어떻게 우려내기에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보통 집에서 이렇게 만들면 맛소금과 조미료 맛이 나기 마련인데 이건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화학조미료가 아닌, 더 깊은 맛이 나왔다.

우린 결국 밥 따로 계산하고 헤어졌다. 솔직하게, 식사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뭇국이 코로 안 들어간 게 다행이었달까. 괜히 울적해져 구도심을 정처 없이 걸었다. 술 한잔 혼자 하고 싶은 날이다. 난 술 대신 이성당 빵집에 와 밀크셰이크 한 잔과 단팥빵을 먹었다. 간판은 별 꾸밈없이 신명조로 <이성당>이라 써 놓았고, 내부는 나름 예쁘게 꾸며놓았다. 팥빵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빵집들의 양심을 나무랄 정도로 앙금이 가득 차 있었고, 밀크셰이크는 잘 안 빨려서 양쪽 볼에 힘을 가득 주어 빨아야 겨우 나왔다. 단 걸 먹으니 기분이 좀 낫다.



이성당을 나왔다. 도저히 술을 안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길가 맥주집에 들어가다. 여행하다 한 번쯤 우울함이 북받칠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5천 원 내고 클라우드 한 병을 시켰다. 음악은 끔찍하게 시끄러웠고, 마담은 손님인지 기둥서방인지와 소파 한구석에서 농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 앞엔 구식 모기향이 뭉게뭉게 피었다. 

나는, 나는, 남의 눈치 보느라 나 자신을 숨기고 살았는데, 그러느라 진짜 나를 잊어버린 듯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나 자신답게 행동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도 그게 나였는데 여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에 맞춰 살아가느라 나 자신을 벽장 속에 가둬놨었다. 그 아이는 첫사랑의 손잡음에도 가슴이 쿵쾅거렸고 문 앞에 사마귀가 있다고 두려움에 떨었고 화가 난다고 전화기를 집어던졌고 참새가 죽은 걸 보고 펑펑 울었는데. 그 아이는 벽장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세월이 너무 길어서 이 아이는 삐졌다. 당장 기분이 풀릴 것 같지 않다. 나는 이제 벽장을 열어 이 아이를 달래보려 한다.


가게를 나와 거리를 걸으며 미친놈처럼 펑펑 울었다.

조금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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