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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y Mar 29. 2018

<내일로> 군산, 네 번째

춘장을 직접 만든다는 홍영장에서 짜장을 먹으려 했지만 이 집은 딱 오후 3시까지만 한다. 그 근처에서 찾아간 곳이 각종 영화 촬영장으로 유명한 빈해원. 


짜장 한 그릇을 시켜먹다. 맛은 딱히 특별한 게 없다. 이렇게 정식 코스요리를 파는 중국집은 처음이라 화교 주인께 여쭤보았다.

“여기서 어느 정도 괜찮게 먹으려면 일인당 얼마 정도 생각해야 하나요?”

“혼자 드시게요?”

“아뇨. 다음에 가족들이랑 같이 와보려고요.”

“그러시군요. 코스요리는 1인당 만 오천 원부터 시작되고, 기본 4가지의 음식이 나옵니다. 금액을 추가하시면 더 다양한 음식이 나오지요.”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손님, 물통이 비었으면 채워가시죠.”

주인의 배려에 기분이 좋았다.


히로쓰 가옥에 도착했을 땐 6시 15분이라 관람 불가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이다. 이렇게 된 바엔 동국사를 갈까 생각이 들어 발길을 돌렸다.

“학생은 어디 가는 길이에요?

웬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저는 동국사 가는 길입니다.” 

“그래요? 우리도 거기 가는데. 차에 타요.” 

나는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올랐다. 차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딸도 동승했다.

“노트를 정말 열심히 하네. 뭐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써?”

“아, 제가 책을 내보고 싶어서요.”

“책? 좋지. 내가 시인이자 수필가야. 다음에 내 이름 처 봐.”

검색해보니 정말 나오긴 나왔다. 딸은 스물넷에 서울에서 대학 다닌단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군산 전체를 둘러보고 있다고.


막상 동국사에 도착해보니 공사 중이다. 그러나 양해를 구하고 들어갔다. 동국사는 한국에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지붕이 상당히 크고 경사가 가파르다. 주목할만한 점으로, 대웅전과 다른 공간이 분리되어있지 않고 일자로 연결되어있다. 

“그러니깐 이런 절은 전국 어딜 가도 없어. 그, 자네, 적는 것 잠시 중단하고 내 얘기에 집중해.”

내가 필기를 하고 있자 자기 말을 들으라고 혼낸다.

난 동국사만 보려 했는데 반강제적으로 계속 따라가게 되었다. 

“여기 내리자. 해망굴이라는 곳인데, 잘 보면 한국전쟁 때 총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이 시인 선생은 말하기 굉장히 좋아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자기가 옳은 것을 강조하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꼰대의 전형이다. 

“이 곳은 내항 뜬다리야. 하루 1백50량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지. 1량이 기차 한 칸이니깐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이런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이 흔해? 나는 문화해설사 해도 될 정도야. 맞아, 자네가 책을 낸다면, 소제목을 이렇게 끄라고. 근대-현대-미래가 함께 있는 군산! 근대는 일제 강점기, 미래는 새만금이지.”

내 책의 소제목까지 결정해버리니 참 당황스럽다. 난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숙소 근처에 내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시간을 침범당한 기분을 벗어날 수 없다. 

근처 슈퍼에서 산 피쳐와 약간의 안주로 나를 포함한 남자 셋이서 술을 마신다. 한 명은 창원에서 온 스무 살 대학생, 다른 한 명은 서울 의류회사를 다니는 서른 살 형님.   

“동생은 왜 여행 왔니.”

내가 물었다.

“아, 저는 아버지가 강제적으로 보냈어요. 방학 내내 게임만 하고 있으니깐 어느 날 아버지가 내일로 티켓을 끊고 저한테 주시더라고요.

“그건 쫓겨난 거 아닌가?”

행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름 재밌어요.”

“그렇구나. 행님은 회사 다닐 만하십니까?”

“글쌔. 나도 직장생활 4년 차고, 이제 자그마한 의류사업이라도 내 힘으로 해보고 싶지. 근데 나도 내 길을 확실히 모르겠어. 그래서 여행 온 것도 있고.”

“회사가 맘에 안 드세요?”
“처음엔 소기업이다 보니 사장이고 직원이고 다 같이 으쌰 으쌰 했지.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사장도 결혼하니깐 처음에 가졌던 도전정신이 많이 사라지더라고.”

“음... 전 영화를 했었거든요. 4년 정도. 처음 가졌던 열정은 결국 사라지지 않나요?”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나? 내가 영화 했다면, 만약 다시 하고 싶다면 현장 시다로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할 것 같아. 다만 거기에 모든 걸 바칠 열정 없이 어중간하게 할 생각이면 애초에 안 하는 게 낫고.”


밤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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