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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춘열 Mar 25. 2019

그저 툭~

심호흡, 산책 그리고 그저 툭~

며칠 전 급여명세서를 보고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하는 일은 더 많아졌으면 많아졌지 줄지 않았는데 몇 달 전부터 5년 전 급여를 받고 있다.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할 수 없는 조건이다. 5년 전과 동일한 직급으로 채용공고가 났고, 응시해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내용을 알고 지원했다. 몇 달이 지나 갑자기 외롭고 혼자라고 느낀 건, 이런 상황을 나 이외의 다른 직원들은 겪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알지도 못할 테고…….    


'하나, 둘, 셋!(들이마시고), 아무것도 아니다(내쉰다)'


가끔 가슴이 답답하거나 해결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며 천천히 들이마시고, 더 천천히 내 쉬며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되뇐다. 잡념을 떨치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다. 심호흡을 몇 번씩 해도 도무지 집중이 안되다. 옆 자리 동료가 땅 꺼지겠다며 한숨 좀 그만 쉬란다. 


사무실을 잠시 나왔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청사 안을 조금 걸었다. 여러 사람을 마주쳤고 인사했다. 벤치에 앉아 펄럭이는 태극기를 한참을 바라봤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깨끗하다. 태극기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리로 저리로 홀로 펄럭인다. 국가도 날 위로해주지 못했다. 외로웠다. 

사무실에 들어와 다시 책상에 앉아 일하려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처가 식구들과 저녁식사 약속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툭 털어놓았다.


“참… 5년 전 급여로 돌아가니... 갑갑하다. 직장을 옮긴 것도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오르잖아~”    


그저 툭 털어놓았고 아내가 아무렇지 않게 반응해 주니 갑자기 기분이 나아졌다. 심호흡하기, 산책하기 말고 또 다른 솔루션이 생겼다. 툭 털어놓기. 그리고 이곳에도 털어놓는다. 그저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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