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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Nov 05. 2024

불안정한 주인공 그리고 하얀색 천사

- <롱레그스>(2024)




공포영화 속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은근히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영화 <롱레그스>는 이러한 모호한 이야기 속에 불안정한 주인공을 두어 관객들에게 섬뜩한 공포를 전한다. 이 불안정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성적이어야 할 FBI 요원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 직업적 특성과 모호한 상황이 대비되어 더욱 큰 불안을 자아낸다.


'롱레그스'라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주인공 리는 자신의 감각을 통해 범인의 패턴을 발견하고 추적해나가는데, 그 과정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공포보다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불안정한 주인공을 통해 관객들에게 서서히 조여오는 긴장감을 안겨준다. 공포영화지만 처음엔 살인의 규칙을 찾아 수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리의 불안정한 모습은 지적인 추리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게 FBI요원이라는 이성적인 직업을 가진 주인공 리의 진짜 모습이 하나 둘 드러난다.


[첫 번째 감정] FBI 요원 리의 두려움



리(마이카 먼로)는 뛰어난 직관을 통해 범인의 단서를 찾아내고 범죄의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할 때마다 무척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은 직업적인 스트레스만이 아니라 그녀의 과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영화 초반, 어린 시절의 리가 롱레그스(니콜라스 케이지)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그것에 대한 힌트로 먼저 등장한다. 비록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초반에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리의 불안정한 성격과 두려움은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영화는 암시한다.


리의 얼굴과 행동은 그 자체로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FBI 요원 중에서도 유일하게 그녀만이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해낸다는 것이다. FBI 요원 그 누구도 아무도 연쇄살인의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지만, 리는 홀로 그것을 꿰뚫어본다. 그건 그녀가 가진 직감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직감은 과거의 두려운 경험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연결고리가 결국에는 연쇄살인범과 닿아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모든 수사 과정에서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은 단순히 범인과의 추격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공포와 맞닿아 있다.


리의 두려움은 끝내 그녀의 결정을 흔들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집념 속에서도 불안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롱레그스의 존재를 떨쳐내지 못하고, 그것이 그녀의 행동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결국 리의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혼란이 맞물려 만들어낸 깊은 감정이다.


[두 번째 감정] 리 엄마의 무심함



영화 속 리의 엄마(알리시아 위트)는 주로 집안에 머무르는 인물로, 처음에는 그저 조용히 딸을 아끼는 평범한 엄마처럼 보인다. 딸과 통화할 때는 안정적인 목소리로 딸을 걱정하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일견 따뜻해보이지만 꽤나 건조하고 무심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집은 어딘가 정리가 안 되어 있고, 과거의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그녀가 과거에 사로잡혀 있음을 암시하며, 그녀가 남기고 싶었던 과거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녀가 놓지 못하는 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과거가 현재의 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리의 엄마는 겉보기에는 무심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녀는 딸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건조하게 대하며, 그 태도는 영화의 후반부가 되어가면서 점점 미스터리하게 다가온다. 관객은 그녀의 무심함 속에 무엇이 있는지 의심하게 되며, 그녀의 행동과 말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임을 느낀다.


리의 엄마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드러내며, 이야기의 반전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무심함과 차가운 태도는 결국 엄청난 진실을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리와 관객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그동안 감춰져 있던 엄마의 비밀은 영화의 핵심을 이루며, 리의 두려움과 혼란을 더욱 깊게 만든다.


[세 번째 감정] 롱레그스의 기괴함



하얀 얼굴의 롱레그스는 영화에서 가장 기괴한 존재로,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영화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그의 실제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그로 인해 기괴함은 더욱 증폭된다. 왜 그는 하얀색 페인트로 얼굴을 덮었는지조차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하얀 얼굴과 하얀 눈밭, 하얀 집이 영화에서 강조되며, 이러한 색채의 일관성은 그의 기괴함을 극대화시킨다.


롱레그스는 리에게 계속해서 '천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 말은 마치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롱레그스의 존재 자체가 단순한 살인마가 아닌,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는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을 파괴하려는 악마의 대리인 같은 존재로, 그의 등장 장면마다 영화는 관객에게 섬뜩한 공포를 안겨준다.


롱레그스는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그들을 저주에 빠뜨리고 파멸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 그를 돕는 사람이 별도로 있지만, 그는 주로 저주 인형을 만들어 아이들을 현혹시키고, 이를 통해 평범한 가정의 안정을 무너뜨린다. 그가 평범함을 파괴하고자 하는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그 미스터리함이 오히려 롱레그스를 더 기괴하고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준다. 어쩌면 롱레그스는 행복을 파괴하는 가부장의 또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영화가 담은 미국 중산층의 풍경


영화 <롱레그스>는 평범한 가정이 파괴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가 갑자기 모든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반복되는데, 이는 과거 미국 내에서 있었던 가부장제의 폭력과 그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난 파괴는 그만큼 일상적이고 안전해야 할 공간이 무너지는 공포를 상징한다.


또한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얀색은 천사의 순수함을 상징하면서도, 그 순수가 피로 더럽혀지고 망가지는 과정을 통해 아이러니한 공포를 자아낸다. 롱레그스의 하얀 얼굴이 피로 물들 때, 그 장면은 관객에게 극도의 기괴함과 불편함을 남기며, 이 영화가 단순히 오컬트 호러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롱레그스>는 대놓고 드러내는 공포보다는 모호하고 은유적인 공포를 통해 관객을 긴장시킨다. 오컬트적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요소들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음으로써 관객 스스로 영화의 빈칸을 채워나가야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롱레그스>는 다소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공포를 전달한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며, 그의 기괴한 모습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제작비 대비 큰 수익을 올린 이 영화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을 공포로 승화시켜, 관객들에게 잔잔하지만 섬뜩한 공포를 전달한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기괴함을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8RcVSsfFIaI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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