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늘 식구들의 의견을 먼저 물어요. 눈치 없는 식구들은 그것을 오랫동안 몰랐어요.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미안하면서도 사과가 아닌 핀잔하는 투로 말하고 말았네요.
"말을 해야 알지. 말 안 하면 어떻게 알아?"
남편이 에둘러하는 말의 의미를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러고 보면 식구도 관심을 기울여 경험해야만 서로를 알 수 있어요. 대화를 나누며 알아가지 않으면 남보다 모르는 게 많아요.
남편과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가 후식으로 나온 딱딱한 복숭아를 포크로 찍으며
“처형 저 딱복 좋아해요.”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뭐라고? 딱복을 좋아한다고? 우리는 물복만 먹잖아?”
“그건 당신하고 애들이 물복을 워낙 좋아하니까.”
“야, 앞으로는 복숭아 살 때 제부몫으로 딱복도 같이 사.”
“알겠어, 언니. 딱복 하나, 물복 세 개.”
그의 아내는 결혼한 지 10년도 훨씬 넘어 남편의 복숭아 취향을 알게 된 거예요.
식구들 챙기는 것도 좋지만 자신도 신경 쓰라고 말하면 "에이, 나는 됐어."라고 말해요. 낮은 목소리에 실린 그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무심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해요.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지만 물렁한 복숭아를 주로 사는 그 남자도 같은 말을 해요. 식구들이 좋으면 자기는 괜찮다고요. 두 남자에게 식구란 거느려야 하는 식솔의 의미가 더 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들의 말에서 인절미에 잔뜩 묻은 고소한 콩가루가 떠 올랐어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신에 묻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다 보이거든요. 다른 사람 눈에 뻔히 보이는 마음이 식구들에게 가장 늦게 보이는 게 우리 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늘 그래왔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살아요. 그냥 살다 보니 감각이 둔해져 발견이 더디기만 해요.
식구는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잖아요. 한 상에 둘러앉아 같이 밥 먹는 사람말이에요. 그럴리는 없지만 정말 밥만 먹는다면 어떨까요. 생각만으로도 냉한 온도에 추워집니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 이야기 나누는 것이 같이 밥 먹는 것만큼 큰 의미가 있죠. 얼굴 마주하고 음식을 나눠 먹다 보면 서로에게 후해지더라고요. 농담도 술술 나오고, 웃음도 자연스럽게 나와요. 식구들이 하는 말에 집중도 잘 되고요. 음식을 먹을 때 위가 탄력 있게 움직이는 것처럼 마음도 탄력이 더해지는가 보다 해요.
식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한 해 한 해 더해지면서 말 안 해도 알게 되는 것이 하나씩 늘어요. 편하게 말해도 되겠다 안심되어 표현도 잘하고요. 전 같으면 콕 꼬집고 지나갔을 문제도 슬쩍 넘어가 주는 센스를 발휘하게 되죠. 눈치가 빠삭해지는 걸까요. 여하튼 식구들 사이에 넉넉한 여유가 생기네요. 그게 다 잘 아는 사이가 되어가기 때문일 거예요. 안다는 것은 예측가능하다는 말도 되겠죠. 예측가능하면 좀 편하더라고요. 서로를 알아가면서 믿음도 전보다 도타워져요. 내 속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식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 아닐까요. 식구들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한 걸음씩 가까워져요. 친구처럼 말이에요. 가정 안에서 친구를 얻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했을 때 너무 부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남편이 말 뒤에 숨긴 속마음을 식구들은 알아가고 있어요. 물론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이 있어요. 남편말에 대답하기 전 생각하는 공간에 잠시 머문 후에 반응한다는 거예요. 남편에게 묻거나 우리끼리 먹고 싶은가 보다 눈짓으로 대화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해요. 이렇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