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들러 책장을 훑던 중,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라는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글쎄,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야 나는 한국을 택하긴 어려울 것 같다. 왜냐고?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feat. 롤스가 말한 '무지의 장막').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성별로 어떤 장애 혹은 어떤 성적 지향을 지니고 태어나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다른 말로 하면, 적어도 한국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역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 중 한 곳이 되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불안하다.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여전히 정치는 불신의 대상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풍요의 역설', '민주화의 역설'에 대해 분석하고 결국은 '사회의 품격(social quality)'을 높이는 것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유용한 분석 수준은 바로 '세대'다.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등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세대론들이 논의되어 왔다. 이 책 또한 '세대'에 기대어 어떻게 한국 사회가 불신, 불만, 불안의 '3불 사회'가 되었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크게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와 '에코 세대(1979~92년생)'으로 세대를 이분했다. 이 구분이 과연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 최선의 구분인지는 차치하고, 저자의 분석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우리는 단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도덕과 규범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국가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하는 있는지에 대한 불신이 깊어서 '우리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세대를 불문하고 널리 퍼져 있다. 과거에는 모두가 가난했으나 출발은 평등했다. 현재는 어떠한가? '지위재(재화나 서비스 자체의 기능과 품질보다 그것이 가지는 이미지, 상황 등에 따라 결정되는 재화로, 학벌이나 직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상대적인 가치가 결정된다)'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다 못해 결국 '강남 8 학군'에 거주하는 정도여야 스스로 중산층이라 여기는 지경까지 왔다. 이러한 지위재에 대한 집단적 집착 때문에, 한국의 청년들은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에 머물게 되었다 (feat.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드퀸 효과'). 아무리 달려도 남들에 비하면 뒤쳐지는 듯한,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상대 평가'의 나라에서 우리는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 현재의 상대적 지위에 대한 '불만'은 사회적 '불안'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으로 유의미한 분석을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에코 세대'에 대한 분석은 아쉬움을 남긴다. 다음은 에코 세대에 관한 본문 내용의 발췌문이다.
"에코 세대는 이처럼 사회적 분위기가 바뀐 다음에 사회에 진출한 세대다. 당연히 과도한 위험회피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보릿고개를 경험하며 고난을 헤쳐나간 헝그리 정신을 지닌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풍요 속에 성장한 에코 세대에게 부모보다 가난해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공포를 갖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들은 안전함을 추구한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높은 교육을 받았고, 어학연수를 통해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추었으며,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공무원 혹은 공기업 채용시험에 몰리는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년 반복되는 기사는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안전 지향성이 강함을 잘 보여준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청년들의 '안전 지향성'이 과연 부모 세대와 무관한지 묻고 싶다. 저자가 말하듯, 베이비붐 세대의 불안은 '외환위기'로부터 왔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부모 세대가 배운 것은 공무원과 대기업은 그래도 사정이 좀 낫다는 것이었다. 자식들은 똑같은 아픔을 겪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자식 교육에 대한 투자와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권하는 집안 분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집안 분위기가 모여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결국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나 대기업으로 몰리는 것은 부모보다 가난해질 수 있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안전 추구 성향 때문이 아니라, 외환위기를 직접 겪은 부모 세대의 문화적 유산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정주영과 중국의 사례를 많이 든다. 청년들이 정주영이나 중국의 청년들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 정신을 가지고 창업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나 제도가 과연 그것을 허용하는지, 그리고 바로 그 사회적 분위기는 누가 만든 것인지 기성세대는 성찰해야 한다. 에코 세대 또한 다음 세대에 어떤 유산을 물려주게 될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또한 저자는 '물질주의(materialism) 대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의 대립구도를 적용하여 세대 간 이념 양극화를 설명한다. 예컨대, 한국전쟁을 경험한 윗 세대에게는 안보나 경제 등의 물질적인 측면이 중요한 반면, 젊은 층은 소수의 발언권, 양성평등, 다문화를 존중하는 탈-물질주의적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류의 이분법적 구도가 불편하다. 이분법적 사고는 때로는 거칠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개개인을 범주화해버리기 때문이다. '탈-물질주의'라는 60-70년대의 서구적 개념을 가져와 젊은 층을 윗 세대와 대립시키는 것은, 젊은 세대가 느끼는 사회적 불안과 세대 간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쉽고 편한 방식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미 있는 암시를 던진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갈등으로 가득하지만, 진짜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 해결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결국은 사회의 품격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품격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저자는 공동체와 사회 구성원 간 관계에 주목한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이 넘치되 각자도생 하지 않고 서로 신뢰하며 연대하는 곳, 체제의 규율과 일관성이 뚜렷하되 생활세계를 질식시키지 않는 곳, 활력 있는 시민사회의 도전이 체제를 기득권에 안주하지 못하게 긴장시키는 곳이 품격 있는 사회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청년이자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비관적인 냉소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겠다. 물론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류애를 잃곤 하는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냉소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미래에 후손들이 이 책의 제목을 마주쳤을 때 주저 없이 '네'라고 답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언젠가는 도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