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워크 이론과 장기투자의 중요성
필자가 주식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분들께 권하는 책들 중 하나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버튼 멜키엘(Burton Malkiel) 교수의 "시장 변화를 이기는 투자" (원제: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라는 책이다. 이 책은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움직이는 원리와 그에 따른 투자방법에 대해서 깊이 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1973년 출간된 이래 꾸준한 개정으로 북미에서는 주식투자의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멜키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주식시장에는 수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매 순간의 주가 변동은 마치 만취한 사람의 걸음(Random Walk)과 같아서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는 현대 투자이론의 기본 가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 재미있는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멜키엘 교수는 원숭이들이 신문 주식 페이지에 다트를 던져서 다트에 맞은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투자 전문가들의 포트폴리오보다 높은 수익을 낸다("A BLINDFOLDED monkey throwing darts at a newspaper’s financial pages, could select a portfolio that would do just as well as one carefully selected by experts”)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심지어 실험으로 검증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유럽판은 2000~2001년 실제로 멜키엘 교수가 이야기한 것과 같은 실험을 했고 충격적이게도 원숭이는 투자 전문가들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버렸다. (출처: Wall Street Journal Europe)
원숭이는 애초에 투자에 관한 개념도, 투자 의사도 없었기 때문에, 이 실험 자체를 원숭이 vs 인간의 대결구도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실험 당시의 주식시장이 상승장이었던 점, 그리고 실험이 1년 동안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더 오랜 기간 많은 데이터로 실험을 했으면 달라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실험 방법을 잘 살펴보면 원숭이가 인간 투자자와는 달리 확실한 투자룰(물론 원숭이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간 투자자들은 해당 기간 동안 주식분석을 통해 개별종목 매매를 자유로이 반복했지만 원숭이의 경우에는 한번 찍은 주식을 계속 보유(Buy and Hold)했다는 점이다. 즉, 원숭이는 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해 잦은 매매를 하기보다는 1년이란 기간 동안 비교적 장기 투자를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애초에 월스트리트 유럽판의 실험 자체는 주가 변동의 불확실성, 즉 주가가 얼마나 무작위로 움직이는 가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원숭이가 해당 기간 동안 주식을 잦은 매매 없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결과는 무작위로 추출된 개별종목들로 만들어진 포트폴리오를 장기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상승장에서는 좋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장기투자에 관련해서는 투자의 대가들도 같은 조언을 한다. 워렌 버핏은 "시간을 포트폴리오의 자연스러운 친구로 만들어라"라고 강조하곤 했다. 조지 소르스와 함께 퀀텀펀드의 공동창립자인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도 "확신이 없다면 기다리는 것도 투자다."라고 이야기했다.
고로, 인간 투자 전문가들이 원숭이한테 주식투자 수익률에서 졌다고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멜키엘 교수와 월스트리트 저널 유럽판의 실험 결과는 전문지식 혹은 내부정보가 없는 우리 개미 주주들에게 장기투자는 전문가의 투자분석보다도 단순하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