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지는 가을엔 이유 없는 허전함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으로도 스산함이 가시지 않던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저녁상을 물리고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냉장고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열어본 냉장고에는 HMR 제품들이 가득했습니다. 집밥맹신자인 아내는 ‘내 자식들 건강한 음식 먹인다’는 일념으로 평소 HMR 제품을 죄악으로 여겨온 터였습니다. 의아해 이유를 물었습니다.
“스타필드에 있는 피코크 매장이 문을 닫는다고 세일을 하더라고. 어떤 맛일까 궁금한 것도 있고, 다른 데서 사 먹던 제품도 싸게 팔기에 사왔어.”
오랜만에 만난 ‘맛난 HMR’이 우선 반가웠습니다. 그중에는 즐기는 파스타 소스도 있더군요. 곁에 있던 아내가 “이전에는 피코크가 오아시스마켓보다 비싸게 팔아서, 오아시스마켓에서 사던 제품”이라고 한마디 거듭니다. 그러면서 피코크가 더 비싼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나름 담당분야(?). 임차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많이 드는 오프라인 매장의 특성을 설명하고, 그런 이유로 다른 피코크 매장도 철수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줬습니다. 제법 긴 설명 끝에 아내는 “그래?”라는 짧은, 그리고 조금은 허탈한 반응을 보이며, “온라인 쇼핑이 그래서 할 만한 거구나”라고 하더군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내는 직접 제품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독한 건강염려증 덕에 식재료는 아이쿱생협이나 한살림에서만 구입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해부터 오아시스마켓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용횟수도 점점 늘어 요즘은 주 2회 정도 오아시스마켓을 이용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아내는 오프라인 쇼핑에서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는 일반 소비자들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얼마 전 만난 아마존 매니저도 그 비슷한 얘길 하더군요. 유통업체 MD들이 직접 상품을 보고 입점을 시키던 시절은 지났다고요.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된 지금 세상에서는 소비자의 즉각적인 반응인 댓글이 MD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선배 소비자들의 댓글만 보고도 상품 구매 여부를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거죠. 그런 구매 경험이 쌓이고 쌓여,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게 됩니다.
‘신뢰’가 상품 선택에 가장 중요한 대표적인 분야가 금융입니다. 예금이나 적금, 펀드, 보험 상품 등은 형태가 없는, 무형의 상품입니다. 그럼에도 가격은 다른 상품에 비해 월등히 비쌉니다. 무형의 고가 상품을 어떻게 팔겠습니까?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절대 팔 수 없습니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이름에 ‘트러스트(TRUST)’가 유독 많이 들어간 이유입니다. 그걸 얻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는 거고요.
결국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 비대면 온라인 쇼핑의 시대에는 온라인에서의 승자가 유통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심에 소비자 신뢰가 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매커니즘은 달라져도 그 힘의 원천은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