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병이 행복의 조건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질병이 행복의 무조건적 적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질병에 걸리면 일단 괴롭고 암울해지기 쉬우니 행복보다는 불행이 더 가까운 이웃임도 분명하다. 하지만 병이 나으면 병에 걸리기 이전보다 훨씬 행복감이 커질 것이니 그 시점에는 이웃이 달라진다. 또 질병으로 인한 공포감이 성찰의 계기가 되고, 인생과 건강을 돌보게도 만든다.
과연 행복과 불행 중 누가 더 질병과 가까울까? 질병으로 인해 불행해지는 경우는 다음 세 가지뿐이다. 하나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병이 고통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며, 결정적으로는 절망에 빠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제외하면 질병은 행복의 적이 아니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질병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행복해질 수도 있다. 물론 질병으로 고통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라고 삐죽일 수도 있다. 내가 걸려봐서 아는데, 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2
올해는 흰소가 끌어가는 해라고 한다. 흰소는 우리에게 낯설다. 누런 소와 함께 살았고 누런소를 먹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소를 중시하는 동남아 국가에는 실제 흰소들이 있고 대체로 다른 소들보다 신성시하는 분위기도 있다.
누런 소나 검은 소보다 흰소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풍조는 왜 생긴 걸까. 흰의 이미지와 흰소의 희귀성 때문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더욱 흰의 가치가 높다. 흰소를 주제로 한 작품들에도 흰의 성격이 나타나곤 하는데 화가 이중섭의 <흰소>는 ‘군살 없는 소’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흰소가 검은소보다 더 강인해 보이는 (나로서는) 희한한 그림이다. 소설가 박범신의 <흰소가 끄는 수레>나 한강의 <흰>에도 흰의 공통점이 있다. 애련함이 강인할 수 있다는 모성애 같은힘이다.
새해 유업계에서는 젖소도 흰소라며 우유 마케팅을 시작했는데 과연 먹힐지 모르겠다. 그들에게도 흰이 있기는 하지만 젖소는 아무래도 얼룩소 아닌가. 젖소를 얼룩소로 여기는 이들은 나이든 꼰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3
아주 잘 짖는 개가 있는데 그 개를 명견으로 여기는 이는 개 주인뿐이다. 오래 전 어느 시대, 도둑이나 강도가 많았을 때는 개소리가 중요했다. 세컴도 없고 방범대원도 없을 때는 크고 강한 개소리가 엄청 든든했다고 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시대에 말 잘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높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말이 너무 넘쳐나고 시끄러운 세상이 되자 말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렇다고 침묵이 금인 시대는 아니지만… 말 잘하기보다 잘 말하기가 실은 어렵다. 입으로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말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 시대다. 마스크를 쓰고 흰소를 찾아가는 2021년, 더바이어도 그 역할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