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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원장 Nov 29. 2022

저는 백돌이입니다

골프 클리닉 연재를 시작하면서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이 글을 첫 글로 준비하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골프 클리닉에 방문하는 환자분들이 제 실체(?)를 알게 되면 어떡하나 고민이 되어서요. 한편으로는, 이거 숨겨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실력은 다 까발려졌고, 저는 이 실력에도 불구하고 2023년부터 USGTF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현재 수강 중인 TPI 또한 내년까지 메디컬 레벨 3 수료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숨 가쁜 연말의 한 자락을 붙잡고, 브런치를 시작합니다.


블로그 기록을 찾아보니 골프 클리닉 포스팅을 처음 올렸던 날짜가 2021년 8월 31일이네요. 오늘로써 15개월째 골프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했습니다. 지금도 골프 클리닉은 제 한의원의 메인 클리닉 중 하나입니다. 여전히 다른 클리닉의 포스팅보다 조회수가 월등히 많고, 제 블로그를 성장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매출의 큰 덩어리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고요.


원장님 골프 잘 치시나 봐요.

원장님 설명하는데 스윙이 좋으시네요.

원장님이랑 필드 가서 레슨 한번 받아보고 싶네요.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꽤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환자의 통증 원인을 설명하고자 스윙 동작을 취하면, 유연성이 좋고 스윙이 이뻐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키는 작지만 PT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했던 탓에 남자 중에서는 꽤 좋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다리를 펴고 손바닥이 바닥에 닿고, 레슨 해주던 프로로부터 투어를 뛰었던 자기보다 더 유연성이 좋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유연성이 있으면 자기보다 거리가 더 나야 한다는 채찍 섞인 말을 하기 위함이었지만요.


이것저것 뒤져보니 제가 골프를 처음 접한 것은 스물일곱이었고,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것은 2017년 4월이었네요. 유튜브를 보고 카페에 가입하고 연습기를 사고 연습장을 등록하고… 머리를 올린 골프장은 레이크사이드였습니다. 저를 골프로 이끈 형님 - 그때 이미 싱글이셨던 - 들과 함께 4, 6, p를 들고 18홀을 정신없이 뛰어다녔었네요. 아직도 그때가 많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레슨을 시작하고 공부를 하면서 골프에 빠지게 되었고, 유튜브를 보다 만난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백돌이입니다.


필드에서 두 자릿수 스코어를 기록한 적도 꽤 있지만, 제 실력은 백돌이입니다.

골프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골프를 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처음엔 필드도 나가고 연습장도 등록하고 레슨도 받고 하다가, 일이 바빠지고 한의원을 옮기게 되면서 처리해야 할 일도 적응해야 할 것들도 많아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필드 나갈 시간과 연습할 시간은 자꾸 뒤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유튜브 레슨 영상을 보며 공부하는 것과 갖가지 연습기를 사서 원장실에서 빈스윙으로 휘둘러보는 것 - 다행히 이전 원장실은 층고가 2.4미터에 달해서 유틸리티 클럽까지 무리 없이 휘두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한의원에서는 7번 아이언을 휘두를 수 있네요 - 뿐이었습니다. 공을 칠 수 있는 연습장에 한 달에 한두 번 겨우 갈 수 있었으니, 필드는 말할 것도 없었죠. 1년에 두세 번 겨우 잔디를 밟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왼손잡이 오른손 골퍼입니다. 제게 골프를 권한 형님이 절. 대. 왼손 골퍼는 안된다고 못을 박으셨습니다. 처음 등록한 실내 연습장에도 왼손 타석은 없었고, 첫 레슨 프로도 충분히 오른손으로 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 근력과 유연성이면 충분하다는 말에 저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렇게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스윙은 좋아졌지만 공을 맞추기는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여건 탓에 저는 빈스윙 연습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빈스윙만 열심히 연습해도 충분히 잘 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연습하면서 빈스윙이 좋다는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필드에 나가면 여지없이 티샷부터 무너지곤 했습니다. 드라이버는 슬라이스가 났고, 로컬룰에 의한 OB티로 이동하는 카트 안은 늘 분노와 좌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어프로치와 퍼팅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린에 가까워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파 5에 오면 한숨을 내쉬기 일쑤였습니다. 18홀 내내 드라이버를 한 번도 안치고 5번 우드나 20도 유틸리티 클럽으로만 티샷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티샷 OB는 줄었지만 그렇다고 스코어가 확 나아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동반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빈스윙 영상을 본 사람들은 의아해했습니다. 스윙이 좋은데 샷이 안 좋다, 는 칭찬일지 욕 일지 모를 말은 어느새 주문처럼 귓가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골프 클리닉을 떠올린 것은 선릉으로 한의원을 옮겨 진료하면서 뭔가 새로운 클리닉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근육학에 관심이 많았고, 운동신경이 좋지는 않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자연스레 관심은 스포츠의학으로 기울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열심히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골프 클리닉이 스쳐갔습니다.


그때도 이미 지인들이 골프로 인한 통증이나 부상으로 한의원을 찾아오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 MZ세대의 골프붐이 일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선릉역은 직장인이 많은 오피스 상권이고, 무엇보다 제가 골프를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골프 클리닉을 구상하고 런칭했습니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리자마자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하루 20-30회 정도밖에 되지 않던 블로그 조회수가 200회를 훌쩍 넘어가고, 블로그를 보고 상담과 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막 골프를 시작한 골린이뿐만 아니라 은퇴한 골프 프로, 구력이 오래되신 중상급자 들도 골프 클리닉을 찾았습니다. 통증으로 인한 1회성 치료가 만성 통증 클리닉으로 이어졌고, 골프뿐만 아니라 축구, 야구 선수들도 클리닉을 찾아오면서 골프 클리닉을 스포츠클리닉으로 확대하여 더 많은 환자분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테니스 붐이 일어나면서 테니스 동호인들도 클리닉을 많이 찾아오시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백돌이입니다.


골프 클리닉을 하면서 제 골프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져갔고, 그래도 요즘은 주 3회 정도 연습장을 방문해 공을 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공을 치는 연습을 하니 실력이 느는 속도가 현저하게 빨라지더라고요. 이전에 빈스윙 연습을 열심히 했던 것이 허무하게 날아가지는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공을 치면서 드러나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찾고,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이제는 백돌이의 샷이 아니라는 칭찬까지 듣게 되었죠. 그래서 내년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80대를 칠 거라는 다소 허풍 섞인 장담을 해가면서 말입니다.


골프 클리닉을 운영한 지 1년 3개월이 되어갑니다. 내년에는 TPI Lv3 자격을 획득해서 좀 더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 재활 코칭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내년이 기대되고, 올해 겨울을 누구보다 알차게 보낼 계획입니다. 바쁜 하루의 연속이지만, 골프는 참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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