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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스윙에서의 악력은 어떤 의미일까?

날아가는 새를 잡는 듯한 부드러움이라니

나는 악력이 굉장히 약한 편이다. 평생 팔씨름을 한 번도 이겨본 적 없고, PT를 받을 때도 유난히 악력이 약해 스트랩을 꼭 사용해야 했다. 스트랩을 사용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풀업 개수의 차이가 현저하게 났을 정도다. 그런 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재앙이다. 왼손도 악력이 약한 편인데, 오른손은 오죽하겠는가.


골프에서 악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천하장사나 길가메시 급의 악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드는 사람들이다. 악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손목과 전완의 힘이 좋으면 장타를 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 비거리뿐만 아니라 정타와 일관성, 어프로치뿐만 아니라 심지어 퍼팅에서도 악력은 매우 중요하다.


어드레스에서 테이크백, 백스윙탑으로 올라가면서 트랜지션을 거쳐 다운스윙과 임팩트, 팔로스루에서 피니시까지. 골프 스윙의 전 과정에서 가장 악력이 강할 때는 언제일까? 우리는 언제 가장 강하게 클럽을 움켜쥐어야 할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클럽을 가장 강하게 움켜쥐는 스윙의 구간은 없다. 우리는 스윙의 전구간에서 절대 능동적으로 악력을 조절하지 않는다. 스윙의 목적에 따라 설정되는 악력이 있고, 스윙 구간에서 클럽 헤드의 스피드에 따라 반응하는 악력이 있을 뿐이다.


악력에 대해 설명할 때 가장 큰 전제는 바로 악력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악력의 기본 개념은, 클럽을 손에서 놓치지 않도록 손에 주어지는 힘이다. 우리가 클럽을 휘두를 때 클럽을 천천히 휘두를 때는 클럽을 놓칠 위험이 없고, 클럽을 빠르게 휘두를 때는 클럽을 놓칠 위험이 커진다. 클럽이 길어질수록, 헤드 스피드가 빨라질수록 클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어지는 악력의 크기는 커지고, 우리는 클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힘을 주게 된다. 악력은 수동적이다. 그리고 악력의 큰 부분은 오른손이다. 오른손의 악력이 강하면 클럽을 컨트롤하기가 쉬워진다. 왼손의 악력이 오른손보다 약하기 때문에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쉽고, 왼손에 힘을 주지 않고도 클럽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왼손에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다. 장타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양손 장갑을 끼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가지고 있는 악력에 더해 빠른 헤드 스피드를 버틸 수 있도록 장갑의 마찰력까지 빌리려는 의도이다. 비가 올 때 클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양손에 레인 장갑을 끼는 목적과 동일하다. 골프 장갑의 마찰력을 사용할 수 있으면 내가 쥐어야 하는 악력의 크기가 작아져 그만큼 손목을 더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다. 악력이 약한 여성 골퍼나 시니어 골퍼에게 양손 장갑을 추천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악력을 조금 더 확장하면 그립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데, 그립은 악력 이외에도 변수가 많은 분야이므로 따로 떼어 글로 설명하도록 하려고 한다. 그립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며, 골퍼의 그립 또한 골퍼의 수와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 골프의 3요소인 GAP가 Grip, Address, Posture로 이루어진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시 악력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골프 스윙을 하는데 필요한 악력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악력의 기본은, 가장 약하게 잡을 수 있는 강도로 클럽을 잡아보는 것이다. 악력이 수동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골퍼의 느낌상으로 악력의 크기가 가장 작은 클럽은 드라이버이며, 악력의 크기가 가장 큰 클럽은 웨지나 퍼터이다. - 필자는 퍼터 그립의 악력을 가장 강하게 잡는다. 퍼터 집게 그립을 사용하는 골퍼라면 웨지가 가장 강한 악력이 설정된 클럽일 것이다 -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데, 클럽 헤드 스피드가 가장 빠른 클럽은 드라이버이고, 그렇다면 드라이버를 칠 때 클럽의 악력이 가장 강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악력을 설정할 때는 드라이버의 악력을 가장 약하게 설정하라고? 여기서 골퍼의 혼란이 온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손목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헤드 스피드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클럽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악력은 약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빠른 헤드 스피드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가장 강한 악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악력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힘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고 약한 힘으로 긴 클럽을 잡고, 클럽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힘이 들어가게 놓아둔다. 클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가 주도적으로 악력을 조절하거나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일은 없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처음에 설정한 악력 이외에 클럽에 가해지는 모든 악력은 수동적이다. 클럽을 놓치지 않는 힘이 최대의 힘이다.


어프로치와 숏게임, 특히 웨지 컨트롤 샷을 유난히 어려워하는 골퍼가 있다면,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방법을 귀담아들어보길 권한다. 어프로치와 숏게임에서 자꾸 뒤땅을 치거나 견고하게 공을 타격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똑같은 스윙을 하되 클럽에 가하는 악력을 조금 높게 설정하면 정타를 맞히는데 도움이 된다. 그립의 악력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클럽 헤드가 그만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의미인데, 어프로치나 숏게임에서는 헤드가 자유로울 필요가 없다. 헤드가 자유로우면 로테이션이 원활하게 일어나면서 클럽 헤드 스피드가 빨라져 비거리가 늘어나는데, 어프로치는 긴 비거리가 아니라 정확하고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까닭이다. 평소 드라이버나 아이언을 잡을 때보다 조금 더 강하게 그립을 잡으면 클럽 헤드의 움직임이 제한되면서 좀 더 견고하게 공을 타격할 수 있다. 웨지 컨트롤샷도 마찬가지다. 웨지로 풀스윙을 할 때 보다 조금 더 그립을 강하게 잡아보자. 4분의 3 스윙을 하거나 엘투엘 등 백스윙의 크기를 조절한 웨지 컨트롤샷을 할 때 좀 더 헤드의 움직임을 견고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퍼팅을 할 때 그립을 가장 강하게 잡는다. 퍼터 헤드가 제멋대로 진자 운동을 하면서 공이 뻥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악력이 너무 강해서 어려운 골퍼는 퍼터 그립의 악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오른손 집게 그립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른손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이다. 퍼팅은 오른손의 역할이 가장 큰 스윙이고 골프에서 가장 예민한 스트로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퍼터 그립 또한 골퍼의 수만큼 많고, 스트로크의 방법이나 느낌 또한 골퍼의 수만큼 많으리라 생각된다. 퍼터 그립은 퍼터의 스윙 궤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퍼터 그립에 따라 아크 스윙을 하는지 일자 스윙을 하는지가 결정되고 이것이 퍼터를 고르는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퍼터 그립 또한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다. 퍼터만 레슨 하는 프로가 따로 있을 정도로 퍼터는 예민하고 어려운 부분이니 프로도 아닌 나 따위 골퍼가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심오하고 방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아는 부분만 따로 글로 적어보려고 한다. 운동학적으로 골프 그립을 설명하면, 내게 맞는 그립 타입을 정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그립을 이해하는데도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일관된 스윙에서 악력은 매우 중요하다. 악력이 강하면 클럽을 견고하게 움직일 수 있고 이는 더욱 빠른 헤드 스피드와 더 긴 비거리를 보장하는 원천이 된다. 하지만 악력은 절대 능동적으로 조작하는 힘이 아니므로 헤드 스피드와 클럽의 무게를 적절히 조합하면 악력이 약한 골퍼도 충분한 비거리를 일정하게 보낼 수 있다. 악력 훈련은 무조건 권한다. 그리고 악력은 골프 스윙에 참 중요한 힘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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