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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May 27. 2022

자전거 여행 1  

서해안길 (군산~ 보길도/2022. 3. 4~)

다시 길을 떠났다. 2013년  일본 시코쿠섬 자전거 순례 이후 여러 날 집 떠나는 여행은 근 십 년 만이다. 나도 자전거도 지난 세월만큼 낡아 삐그덕 거릴 것이다.


자전거 전국일주 주행구간

전국을 일주하되, '뚜르드월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연결한 CAK(Cycling Around Korea) 루트를 군산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시간이 된다면 진도와 제주도에 가서 섬을 일주하고 싶지만 일정상 어려울 것 같았다. 서울에서 군산까지는 한강과 오천길, 금강길로 이어져 있고 이미 달려본 길이라 다음에 시간을 내기로 했다.   
원통에서 DMZ 구간, 화천을 거쳐 춘천을 통해 서울로 돌아와야 이 순례가 마무리되지만 그 역시 일정이 허락할 때까지만 주행하기로 했다.



3월 4일 출발한 것은, 영하 10도 내외 혹한은 지나가고, 기대가 무망해졌지만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는 해야겠기 때문이었다.  

이번 대선은 폭등한 아파트 값이 이미 당선자를 가른 상태였다. 값이 폭등한 아파트를 가진 자들은 가진 자대로 못 가진 자들은 또 그들대로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벼르는 중이었다. 가진 자는 더 비싼 아파트에 비해,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와 비교하며 결핍감을 느끼면서 다 함께 불행해졌고 그 책임을 정권에 묻는 중이었다. 집권당의 정책이 더 정교했다면 민심을 만족시킬 해법이 나왔을까?  


혼잡한 출근시간 광화문 서울역 삼각지를 거쳐, 반포대교를 넘어 호남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남은 휴가를 소진하고 사직하기로 결심한 채 떠나는 여행이므로, 저 익숙한 출퇴근 행렬에 나는 당분간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홀가분하면서도 쓸쓸한 기분으로 차량들과 뒤섞여 시내 구간을 통과했다.

두어 시간 달린 뒤 정오 전에 군산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지인들이 알려준 월명 식당에서 물메기탕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한 시 경 본격적으로 주행을 시작했다

바람이 거셌다. 태풍급 바람이 분 날이었다.

새만금 방조제 42km를 두어 시간이면 통과할 수 있으려니 했으나 오산이었다. 바람은 때때로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기도 했고, 도저히 주행이 불가능해 내려서 끌고 가거나, 주행 속도가 시석 5km에 불과한 구간이 길었다. 첫날 첫 구간이 이토록 힘겹다니... 바다 위로 뻗은 사막 같은 길 위에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작정한 여행을 과연 다 마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힘겨운 순간들도 있겠지?

 

변산에 살고 있는 지인들과 오후 4시경에는 만날 줄 알았다. 지나가면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연락을 해두었는데 저녁 7시가 다 돼 간신히 변산에 '상륙' 했다. 변산에 살던 한 사내가 눈물겨운 밥을 사주었다. 변산으로 귀농해 잘 뿌리내리고 살다가 지난가을 갑자기 세상을 버린 또 다른 한 사내를 추억하는 자리였다. 몸도 마음도 위축된 상태에서 엉겁결에 '반승반속'의 수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한 농부의 사랑채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ㅁ 1일 차 -3월 4일 :  집~ 고속터미널 , 군산터미널~새만금 방조제~ 변산면사무소  72km


주인장이 깨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변산 해안으로 난 마실길을 따라 아름다운 바닷가를 한동안 달렸다. 변산에 살고 있는 거룩한 농부들을 몇 명 안다.  살갑게 마음을 표현 할 주변머리도 없지만 그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무언가 마음이 훈훈해지곤 했다.

격포를 지나고 전북 학생수련원 앞 솔섬을 지났다. 갑자기 죽은 그 사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곳이다. 세밑이면 이곳에서 '새해맞이 커피장사'도 하고 물 때 맞는 가을 밤이면 이웃들과 까르르 웃으며 돌게를 잡고 해삼을 건져올린다고 자랑했었다..서울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부럽기도 했었다. '이승에 살아있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상심하던 그 가을에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한살림 생산자 조직도 '산들바다공동체'고. 아침 바다 윤슬이 눈부셨다. 무슨 금속처럼 단단하게 빛을 되쏘고 있었다. 서울에서 겪게 되는 팍팍한 순간들이면 '남쪽 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 무엇인가에 쫓기고 내몰린 채 '따뜻한 남쪽 바다' 삼포를 찾아가는 백화와 두 사내. 그 장면을 연상할 때마다 나는 변산반도의 풍요로운(그렇게 보이는) 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한살림 생산자 조직도 '산들바다공동체'고. 윤구병 선생도 변산을 '산 살림 들 살림 갯 살림이 다 풍요로운 곳'이고들 하지 않았던가.  


변산반도를 돌아 구불구불 갯벌 사이로 난 길을 지나 고창에 들어섰다. 동아일보 김성수 일가의 고향이라는 부안면 인촌리. 마을  당목이 장해서 잠시 땀을 들이며 사진을 찍었다. 김성수의 호가 인촌이라 마을 이름이 이렇게  것인지, 고향마을 이름을 호로 정한 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만주 사변 이후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면서 김성수는 적극적인 친일로 돌아섰다고 한다. 마지못해 한 정도가 아니라 열성적인 부역자가 된 것인데...

스스로 살아온 삶에 침을 뱉고 훼절하며 인생을 망가뜨리는 사람을 이해할  없었는데, 하도 그런 이들을 많이 보다 보니 인간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같은'86세대' 가운데는 입에 민주니 대안적 사회 사회적 경제니 입에 달고 다니지만 정작 자신들이 남루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면 난폭하게 휘두르며 주변을 짓밟고 침묵과 맹종을 강요하는 자들이 적지 않. 민주적 소양은  그 사람이 속한 세대나 그가 즐겨 쓰는 언어가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다.     

고창 갯벌 위로 난 구불구불한 자전거 길을 통과한 뒤 동호해수욕장에서 구시포까지 명사십리 해안길을 한동안 달렸다.. 이 년 전 사업평가를 하자며 몇몇 이서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많은 말들을 했지만 그 말들의 무게를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 


 

 주말 나들이 객이 제법 있었다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이 '명사십리'라는 이름이 괜한  아니었구구시포에서 식당에 들어가 장어탕을 시켜 점심을 먹었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보자니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이 떠올랐다.

영광대교를 건너 아름답다고 소문난 백수 해안길을 달렸다. 바다를 보며 달릴 수 있는 해안길은 과연 아름다웠다. 다만 고적감이 아쉬웠다. 겨울날 통행이 뜸한 평일이라면 이 길은 더욱 충일할 것 같다. 흐린 하늘에 눈마저 흩뿌린다면 말이다.

부안 고창을 지나는 동안 사람이나 차를 만날 일도 드물었는데 백수 해안길은 혼잡했다. 무슨 동호회에서 단체로 왔는지 소음기를 뗀 스포츠카들도 굉음을 내며 떼 지어 달리기까지 했다.  

 

해안길도 좁고 갓길도 좁아 여간 위험하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서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었다. 여행 내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침이면 의욕이 넘치고 오후가 되면 진이 빠져 기분마저 침울해지곤 했다. 백수해안을 지날 때가 그랬다.

해안길을 벗어난 뒤로는 풍력발전기가 끝없이 이어진 간척지, 조금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비로소 잠자리 걱정을 되기 시작한 저녁 다섯 시 반 경 적당한 시간 적당한 곳에서 두우리 해변을 만났다. 미처 저녁 장을 보지 못했지만 있는 것들로 하룻밤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송림이 있는 두우리 해변. 주민들이 관리하는 무료 야영장에 첫 노숙 텐트를 쳤다. 여전히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밤 새 잠을 설쳤다.


#2일  -  3월 5일  변산읍~ 격포~  고창~백수해안~ 두우리   총 주행거리 120km

아침 기온이 아직 영하 3도를 기록할 정도로 아직 추웠다. 남해안에 가면 기온이 올라가겠지 생각했다. 일찍 길을 나서야겠다 싶어 한살림 크림수프, 변산을 빠져나오며 하나로 마트에서 산 카스텔라로  아침을 먹었다.  


자전거길은 영광에서 함평으로, 함평읍내를 통과해 함평천을 따라 영산강으로 연결된다.

해가 뜬 뒤에는 따사로운 봄기운이 안도감이 느껴졌다. 남녘의 봄이다. 

 2020년 5월. 영산강 종주를 할 때 비탈을 오르면 당황했던 느러지 전망대. 내려다보는 강줄기가 한반도 모양을 닮았다. 무슨 이유인지 이곳을 통과하며 고글을 잃어버렸다. 고개를 다 내려와 몽탄대교를 건너기 전에야 깨닫고 고글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울면서' 전망대까지 다시 올라가 보았지만 끝나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햇살이 눈을 찔러 며칠 애를 먹었다.

이 년 전에 왔을 때, 해가 저문 뒤 어두운 들판을 해매게 하던 공사장은 여전히 마무리가 안 된 상태였다.
그 당시 끝내 길을 못 찾고 다급한 마음에 자동차 공용도로로 목포시내를 달리던 기억이 났다. 영산강 하구 구간은 이번에 처음 달려본 구간이 꽤 길었다

숙영지로 생각한 목포 삼학도 공원에 도착하니 해가 설핏 기울고 있었다. 땀이 식은 데다 영하의 기온이 여전히 손을 곱게 만들어 저녁을 지어먹을 엄두가 안 났다. 텐트를 치려면 인적이 드물어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싶어 머지않은 목포역 인근 독천식당에 가 연포탕을 먹었다.

낙지는 이 고장을 상징하고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그 이에게 집중되었던 이 고장 사람들의 열망과 맺힌 마음이 애잔하기도 했다. 목포역 주변 구도심은 한 집 걸러 폐업한 상점들로 황량하게 쇠락해 가고 있었다.  때마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운동원들이 썰렁한 거리에서 확성기를 틀고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고 목청 높여 연설을 하고 있었다. 행인이 끊긴 채 어둠이 내리던 그 저녁의 풍경이 어쩐지 쓸쓸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광경이 가끔 떠올랐다.

#3일 차  영광 두우리~ 목포 삼학도 공원 , 총 주행거리 116km


삼학도 공원 화장실 뒤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화장실은 문을 열면 조명이 켜지고 '목포의 눈물'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주행 중에 핸드폰으로 카카오맵 자전거길 안내를 이용해야 했기에 1만 mlA 보조배터리를 충전해야 했다. 전날 두우리 해변 화장실에서도 핸드폰과 보조 배터리를 방치해둔 채 충전을 했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보니 충전기와 보조배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핸드폰을 함께 두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삼학도 공원 인근 갓바위. 해식지형이 특이했다.

난감했다. 보조 배터리 없이 앞으로 이어질 시골길을 주행할 자신이 없어  텐트를 걷고 짐을 챙긴 뒤 영산강 하구언둑 인증센터 부근 하당동 신시가지 쪽으로 이동했다. 대형마트나 상점들은 9시 10시나 돼야 문을 열 테니  아침 일찍 문 연 카페를 찾아 요기를 하면서 당근마켓 거리를 시도했다. 8시경 팔겠다는 분과 연락이 돼 1만 원에 중고 배터리를 사서 9시경 다시 길을 떠났다.

자전거길은 영산강 하구언둑을 넘어 금호도를 거쳐 진도대교까지 갔다가 해남으로 연결돼있다. 진도에 오면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생중계되던 그 끔찍한 광경은 우리에게 집단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를 남겼다. 여전히 진실규명이 안 되는 점도 의아하다. 진도 일주는 100km 거리다. 하루를 꼬박 돌아야 한다. 그리고 아직은 진도를 마음 편히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천받은 울돌목 앞 한정식 뷔페는 과연 좋았다. 보리새우를 넣은 아욱 된장국과 갓김치, 고슬고슬한 밥. 길거리 뷔페식당에서 영혼이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흘릴 땀을 걱정하며 언제 이런 밥을 또 먹을지 모르겠다 싶어 과식을 했다.

77번 국도를 따라 봄 햇살 속에 해남반도를 달렸다. 들이 넓고 간간이 바라를 만나는 길. 그러나 직선으로 다시 뚫은 도로는 어쩐지 갈증을 불러왔다. 화산면 소재지를 지나고

방축리 지석묘에서 '보급'을 하며 잠시 쉬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이라고 한다. 돌을 눌러 묘를 만든 그 마음을 생각해본다. 권력을 쥔 자들이 시신이나 부장품을 지키고 싶고, 살아서 누리던 것을 저 세상에서도 누려보고 싶은 욕망으로 무덤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것이겠지. 죽고 나면  다 부질없을 것을...

방축리 지석묘

오후 5시가 다 돼 해남 반도의 끄트머리 송호해수욕장에 닿았다. 해변에 화장실도 있어 간단히 씻고 야영을 할 만했지만 망설이다가 내처 땅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땅끝 갈두항까지 벅찬 업힐 구간을 넘으며 후회가 밀려왔다. 

후회도 늘 그렇듯 소용없는 일. 모든 오르막은 언젠가 내리막과 만난다. 오르막에 흘린 땀과 거친 숨을 보상받듯 경쾌하게 달려 내려오다가 해남 로터리클럽에서 세운 땅끝 표지석을 만났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1. 진실한가?

2. 모두에게 공평한가?

3.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4. 모두에게 유익한가?"


로타리클럽 중요한 명제인 모양인데, 말 자체는 성찰을 하게 하는 울림이 있었다. 주변에 대한 실망이 큰 시기였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땅끝항(갈두항)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20분. 매표소에 문의하니 보길도 가는 마지막 배(내화도)가 10분 뒤에 떠난다고 했다. 엉겁결에 표를 끊고 승선했다. 자전거는 따로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고등학교 때 지리 선생님이 보길도의 윤선도 유적지에 대해 무척 감동적으로 설명하셨기에, 꼭 와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와보게 된 것이다.  

 

 배는 노화도 산양진항진 가 닿고 보길도는 내화도에서 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배 위에서 매표소에서 소개받은 보길도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항구에서 보길도까지 꽤 먼 거리니 그냥 가까운 곳에서 자라고 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산양진항 주변에는 아무 시설도 없었다. 지친 몸으로 산을 넘어 내화면 까지 달려가 모텔에 방을 잡았다. '바다 뷰 4만 원'이라고 해 기대하고 들어갔더니 부옇게 흐린 창으로 경치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가까스로 문 연 식당을 찾아 메뉴판을 보고는 삼겹살(13,000원)이 만만해 보여 달라고 하니까 홀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주인 사내가 콧방귀를 뀌고는 '겁도 없이 혼자 와서 고기를 시키네요?' 한다. 불 값도 안 나오기 때문에 3인분 이상 아니면 고기 주문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분이 상했지만 섬의 관행인가? 싶어 참고 그럼 뭐가 되느냐고 하니 갈비탕을 먹으라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낯선 섬 해안길에 어둠이 깊어가고 있었다.

#4일 차 3월 7일, 목포 삼학도 공원~ 진도 대교~ 해남 땅끝~ 노화도 산양진항~ 면소재지  주행거리 120.5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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