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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라틴아메리카의 관료주의와 번영

관세 인하보다 절차 간소화가 더 중요한 이유

라틴아메리카에서 사업을 개시하는 데 평균 1,850시간, 거의 8개월이 걸린다. 일단 설립 후에도 매년 합법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약 1,577시간을 행정 절차에 쏟아야 한다.


안녕하세요, UN과 중남미를 잇는 이야기를 전하는 유엔이방인 김상엽입니다. 오늘은 전 칠레 외교부 정책보좌관의 시선으로 무역협정이나 관세 논쟁 이면에 가려진 더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보려 합니다. 최근 발표된 2025 관료주의 지수는 이 지역에서 기업이 설립되고 운영되는 데 소요되는 행정 절차의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에서 실험적 개혁이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중견 기업들이 납덩이를 매단 듯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관세 인하보다 행정 효율과 투명성 제고가 훨씬 더 큰 성장의 열쇠임을 강조하며, 이 지역이 진정한 번영을 원한다면 스스로의 붉은 테이프를 잘라낼 용기가 필요합니다.


라틴아메리카가 세계 무역과 발전에 대해 논의될 때마다 나오는 핵심 의제는 관세, 특혜 무역협정, 원자재 의존도, 그리고 미·중의 지정학적 경쟁이다. 이들 역시 중요한 이슈임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 지역의 무역, 경쟁력, 심지어 민주적 신뢰를 해치는 더 근본적인 장애물은 바로 관료주의이다.


이것은 새로운 불만이 아니다.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이 “관료들에게 절차는 전부이고 결과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고, 마르크스는 “관료제는 벗어날 수 없는 원”이라고 한 탄식을 남겼다. 여러 사상가들이 그 부작용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이러한 피해가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수치로 드러난다. 애덤 스미스 센터의 2025 관료주의 지수와 관련 연구들이 보여주듯, 행정을 위한 절차로 인해 과도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어 생산성이 저하되고 있다. 관세 장벽은 변화할 수 있지만, 관료적 장벽은 완강하게 남아 있으며, 눈에 띄지 않고 비용도 크다.


수치는 가혹하다. 애덤 스미스 센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사업을 개시하는 데 평균 1,850시간, 거의 8개월이 걸린다. 일단 설립 후에도 매년 합법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약 1,577시간을 행정 절차에 쏟아야 한다. 그 직접 비용은 기업당 약 5,800 미불이고, 기회비용은 1,100억 미불 이상, 즉 GDP의 13%에 달하는 생산성 손실로 환산된다.


증거의 무게

Latin Trade의 제리 하르는 이를 “관료적 수수께끼”라 부르며 혁신을 질식시킨다고 설명했다. C. 호르노크의 “무역에 대한 행정 장벽” 연구도 같은 결론에 이른다. 관세보다 절차의 무게, 중복, 불투명한 규제가 무역 흐름을 위축시키고 물류 결정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R. 라아하지의 콜롬비아 세관 연구는 관료적 병목과 부패가 어떻게 비용을 끌어올리고 특히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큰 피해자는 영세 상인들뿐만 아니라, 정책 논의에서 자주 배제되는 중견 기업들도 포함된다. 연매출이 10만~300만 미불이고, 고용 규모가 50~250명인 이 기업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성장에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이들은 소규모 사업체보다 자본과 규모가 크며, 기술과 훈련에 투자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현재 이들의 에너지는 복잡한 서류 작업과 허가 절차, 불투명한 행정 과정을 해결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


사례는 매우 많다. 멕시코에서는 외국 기업들이 매년 거의 500시간을 세금과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데 쏟고 있다. 정부는 1,400개 이상의 품목에 새로운 수입세를 부과하며 규제 복잡성을 더했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파라과이는 통신 장비에 대해 현지 인증과 함께 인증서를 보관할 법적 대리인도 지정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들은 기술적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실상은 혁신을 방해하고 투자 유인을 떨어뜨리며 경쟁을 제한하는 중첩된 장벽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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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기회

왜 관료주의가 이렇게 중요한 주제인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담론은 포퓰리즘, 불평등, 외부 영향에 집중되어 있지만, 관료주의는 이 모든 문제를 포괄한다. 과도한 절차는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며, 부패의 원인을 제공한다. 푸샨 더트의 연구는 보호무역 정책이 관료적 부패를 강화하는 상관관계를 보여주었고, 존 폴가-헤시모비치의 라틴아메리카 관료제 연구는 이것이 일시적 불편이 아니라 정치 문화에 뿌리내린 구조임을 상기시킨다.


기회비용이 매우 크다. OECD는 칠레와 페루에서 소규모 관료 개혁이 5년 만에 1인당 GDP를 2% 높였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관세 조정 이상의 이익이다. 어떤 무역협정이든, 메르코수르든 태평양동맹이든, 양자 협정이든, 국내 행정의 마비를 대체할 수 없다. 절차가 간소화되지 않으면, 기업은 개방된 시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신호들이 존재한다. 아르헨티나는 2024.6월에 Bases Law를 통해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규제 완화를 실행했다. 메르코수르 디지털 시민 이니셔티브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국민들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 디지털 ID를 사용해 행정 절차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콜롬비아는 세관 절차의 디지털화 실험을 통해 지연과 부패를 줄이려 했다. 이 해결책이 완벽하진 않지만,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다.


위험은 불완전한 개혁이다. 표면적인 조치만으로는 관료제의 구조적 중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기업들은 많은 준법 인력을 활용하여 복잡한 규제를 피할 수 있지만, 중견 기업들은 더 큰 피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 이들에게 관료주의 개혁이 실패하면 마치 달리기 선수가 다리에 무거운 족쇄를 차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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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길

교훈은 분명하다. 라틴아메리카의 성공은 관세, 보조금, 인프라 투자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눈에 띄고 정치적으로 매력적이지만, 행정 개혁 없이는 무의미하다.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정부는 효율성과 투명성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 절차의 디지털화, 엄격한 일정 준수, 표준화, 중복 제거가 중요하다. 또한, 부패 방지와 관료적 재량이 이익 추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는 “작은 국가”를 향한 이념적 설득이 아니라, 실용적인 강력한 국가 요구다. 절차가 명확하고 예측 가능하며 빠를수록 시민과 기업 모두 이득을 본다. 정부는 더 높은 세수 준수와 신뢰를 확보하고, 투자자는 불확실성 감소로 혜택을 누린다. 특히 민주주의 역시 이득을 얻는다. 국가는 동반자가 아닌 장애물로 인식될 때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라틴아메리카는 오랫동안 세계 시장 통합을 위해 보호무역과 자유화 사이를 오갔지만, 진정한 전선은 국경 검문소나 협상장이 아니라 기업이 매일 싸우는 등기소, 세무서, 세관, 디지털 포털에 있다. 관료주의 축소는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칠레, 페루, 콜롬비아 등에서 보여주듯, 서류 부담이 줄어들면 GDP 성장, 생산성 향상, 시민의 신뢰 회복이 자연스럽게 따른다.


이 지역이 진정한 번영을 이루고 싶다면, 먼저 자국의 불필요한 규제, 즉 붉은 테이프를 과감히 제거하는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 무역협정과 보조금은 기다릴 수 있지만, 기업가들과 특히 미래 경제의 핵심인 중견기업들에게 혁신과 투자, 확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은 지체할 수 없다.


역사는 몇 차례 정상회담이 열렸는지, 얼마나 많은 관세가 부과됐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스스로를 개혁하려는 용기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할 것이다.


사진 출처: 파나마언론, 아르헨티나언론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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