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시생의 취업뽀개기?
기억도 까마득한 취준생 시절이다.
나의 첫 아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의 권유로 M사에 원서를 접수하고 나서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언시생'(원래 대한민국에서 고시라는 말은 자격이나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보는 시험이고 주로 공무원 시험에서 쓰는 말이어서 사실은 행정고시나 국가고시라는 말은 쓰지만 사법시험도 고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만 그 응시생이 많고, 뚫기 어려운 관문을 지나야 한다는 뜻으로 최근에는 언론에도 고시라는 말을 갖다 붙이곤 하니, 언시생이라고 해두자)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했다.
말도 안 되는 접수번호를 받아 들고 보니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전략도 목표도 없었던 나는, 그야말로 '언론고시'계의 천둥벌거숭이였다.
급한 대로 녹색창에 '기자가 되려면''언론인 취업''방송국 입사''방송국 시험''기자 취업' 등등 별의별 검색어를 입력해 가며 정보를 그러모아 보기로 했다.
쉽지 않았다.
사법시험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비슷한 분야조차 아는 사람이 없으니 도움받을 곳이 없는 것도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수 차례 검색 끝에 알게 된 한 사이트.
취준생에게 취업뽀개기가 있다면 언시생에게는 아랑이 있더라.
실시간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가 넘쳐났다.
카페 멤버의 활동이 많은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방송/신문/통신사가 지역별로, 직군별로 내놓은 채용공고, 필기/실기시험과 면접 후기, 스터디 모집 광고까지.
그야말로 정보의 보고였다.
가입을 서둘러 글 보기, 글쓰기 권한 등을 얻고 나니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방대한 정보,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 방대한 정보를 보려고 눈에 불을 켠 언론사 취업 준비생이었다.
보이지 않는 경쟁자이자, 어쩌면 조력자, 또 어쩌면 업계의 동료가 될 수도 있는 그들 틈바구니에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초시생에 비법대생이면 받아주는 스터디가 없었는데, 여기도 역시나 그렇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스터디 모집 광고마다 쪽지를 보내며 나를 PR 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운 좋게 가입하게 된 곳은 온라인 논작 스터디였다.
논작이라...
언론사를 준비하면서 논작이라는 게 뭔지 처음 접했는데, 아무래도 어감이 논술 같기도 하고, 작문 같기도 하니 그런 건가 보다 하며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5명이 모여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매주 논작 주제를 선정해 투표한 뒤 그에 맞는 글을 정해진 시간 안에 올리면 나머지 멤버가 댓글로 지적을 해 주었다.
가끔 칭찬이 있었고, 대체로 글감을 신선하게 잡아서 새로운 시작으로 전개한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건 좋은 평가.
두 세 문장 뒤에 이어지는 비평은 대체로 어수선하거나, 논리가 빈약하거나, 문장이 길거나 등이었는데 이런 비판을 수용하고 퇴고를 거친 글을 올려놓는 게 스터디를 진행하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아마도 많은 언시생이 지금까지 이런 방법을 쓰며 이를 갈고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움이 됐다.
그 글들을 지금 다시 보건대 다소 거친 면이 있지만 논거나 상식, 배경지식이 오히려 지금보다 탄탄하고, 소재도 기발했다.(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더 똑똑했던 나를 발견할 것 같다)
글을 쓰는 훈련이 안 된 사람에게도, 정보와 시사에 능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정보 검색을 통해 취재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초안을 잡고, 문단을 잡고, 글을 써 내려가고, 다듬고...
그 과정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을 하다가
나는 스터디에서 나왔다.
글솜씨보다는 아이디어에서 빛이 났던 한 언시생에게
구성원 중 가장 먼저 합격 통보가 왔던 그 날,
나는 스터디 구성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계속 남아서 글을 쓰다가 이직을 할지도 모를 일이니 축하 인사는 받되, 스터디에 계속 참석할지 말지는 여지를 남겼다.
고마운 분들이다. 계속 남아서 활동을 해도 좋다고 했지만,
밤낮 없는 수습기자에게 이직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랑으로부터, 스터디로부터 해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