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태 Sep 24. 2022

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닥치고 이 책


안녕하세요. 김경태입니다. 


여러분 추석 명절 잘 지내셨죠? 저도 부산에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고향에서 부모님과 친척분들께 인사드리고 오래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해운대를 다녀왔는데 해운대는 갈때마다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의 추억들이 사라져서 아쉽기도 하지만 또 한편 외국같은 분위기와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흥이 났습니다. 덕분에 고향에서 재충전하고 돌아왔습니다. 


금주부터 매월 한편씩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소개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이름하여 <닥치고! 이 책!> 입니다. 




오늘은 첫번째 시간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준비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거장의 반열에 든 작가죠. 일본인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으며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세상은 그의 책에 주목하고 뉴스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런 정말 현존 최고 인기작가 중의 한명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교적 초기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먼북소리>입니다. 제 생각엔 이 책을 읽어보신분 거의 없으실 겁니다. 물론 들어보신 분들도 잘 없을거예요.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새> <1Q84>와 같이 제목이라도 자주 들어본 그런 유명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쓴 유럽여행 에세이입니다. 내용도 특별한게 없는 그냥 평범한 유럽에서의 일상을 써놨어요. 그런데 읽고나면 뭔가 느낌이 짠~~하고 옵니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여행 에세이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책이 안그라픽스에서 출간한 김영주 작가의 <캘리포니아>였습니다. 여행이 머무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곳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전해주는 책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 <먼북소리>를 읽고서는 여행 에세이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하루키가 그의 희대 역작 <노르웨이숲(상실의 시대)>을 쓰던 1980년대에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끄적인 글 모음입니다. 섬에서 집을 구하는 에피소드, 갑작스레 날씨가 추워져서 힘들어 하던 일, 달리기 하는 일상, 아내와 다툼, 동네를 산보하면서 사람들과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 고양이과 개들을 살피면서 여행자로서의 이방인 같은 느낌을 적었어요. 여행을 통해 삶의 정수를 깨닫는 그런 멋드러진 장면도 없습니다. 그저그런 평범한 일상이에요. 그런데 하루키의 상상력과 글솜씨기 이런 평범한 일상과 어우러지면 굉장히 행복하고 유쾌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첨가물을 쓰지 않은 맛있는 음식 같다고 할까요? 나영석 PD가 만들었던 <삼시세끼> 아시죠? 처음 이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시청자들 모두 뭐 저런게 예능인가? 의아해 했잖아요. 그런데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었죠. 사람이 밭을 일구고 밥을 짓고 또 밥을 먹고 설거지하는 평범한 일상인데 그게 힐링이 되는 이치. 이 책도 마찬가지에요.


이 책을 읽어보면 하루키는 그가 마흔이 되던 그 시기에 이런 평범한 일상이 진짜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걸 글로 남겨두었고요.  


저는 이 책을 자주 꺼내서 읽어요.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습니다. 한 다섯페이지 정도 읽으면 그냥 입가에 미소가 그려집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이 책을 꼭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자. 그럼 제가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들 몇 개 소개해 볼게요. 한번 들어보세요. 일상의 묘사 와중에 그의 인생관을 슬몃 엿볼수 있는 글이 있는게 너무 좋았어요. 




<좋은 문장들>


“어느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는 이 책 서문에서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어느날 문득 아침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알아차린 것. 그리고 그것이 파동이 되어 번지고 번져서 그가 아내와 함께 유럽으로 여행하게 됩니다. 자신에게만 들렸던 먼 북소리를 따라서 말이죠. 제가 아는 분들중에도 이 북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계발서를 좀 읽어보셨다면 아마도 누군가의 책에서 <먼북소리>책을 인용한 부분을 찾으신 분들이 있을거예요.



“나는 마흔 살이란 하나의 큰 전환점이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무엇인가를 뒤에 남겨두고 가는 때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그런 정신적인 탈바꿈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좋든 싫든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세월이란 앞으로만 나아가는 톱니바퀴라고 나는 막연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한국인만큼 나이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동네 유치원에 나가보면 새롭게 만나는 아이들끼리의 첫 질문이 ‘너 몇살이야?’에요. 직장에서도 몇기? 몇 년생? 같이 나이가 많은 것들을 대변해주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우리나라에서 마흔이라는 나이는 삶의 하나의 전환점으로 불립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흔이라는 나이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하루키는 일본인인데 일본도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나봐요. 그에게도 마흔은 제법 무게감있게 다가왔다는 걸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언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


제가 아는 제게 영감을 많이주는 한 분이 있는데 얼마전 그 분의 글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어요. 

“늘 더 잘하길, 왜 그것밖에 못했느냐고 자신을 채찍질했고, 쉬는 순간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자신을 다그치고 있는 스스로가 안쓰럽다” 

자기계발에 애쓰고 있는 여러분도 이 분과 비슷한 생각으로 살고 있지는 않나요? 하루키도 비슷한 불안감을 이야기 합니다.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할 무언가를 달성하지 않은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두렵다고 말이죠.  




그외 좋았던 문장들입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멀리 내 자신으로부터 떨어진 장소에서 또 다시 조금 이동하려 하고 있다.
무한 빼기 약간 또는 무한 더하기 약간.
어느쪽이라도 좋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인 것이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자신의 뼈를 깎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 집중력을 가능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대중 술집에 가는 사람이 있듯이,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여자와 자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달린다.
달릴 때 느낌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낯선 도시에가면 반드시 무엇을 하나요?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나요? 저는 새벽에 일어나 집 근처를 걸어봅니다. 어스름이 사라지지 않은 새벽은 고요하고 차분하죠. 그 가운데 본래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 사람들이 움직이기 전에 먹이를 찾아나선 고양이들, 한적한 길을 비추는 가로등. 이런 모든 것들이 원래 있던 그대로 가장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간이 제게는 새벽이에요. 그래서 전 새벽에 혼자 걸으면서 낯선 도시를 느낍니다.  



https://youtu.be/xha8JLEMoBY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해주는 책 3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