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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Jul 21. 2024

고국 방문기 6

예기치 않았던 사건

지난번에도 잠깐 언급했던 나의 대단한 실수, 아니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속초 '체스톤스 호텔'에 세탁기가 구비되어 있었고, 한참 체크인 문제로 열받아 있던 나는 마음도 진정시킬 겸 남편과 다미안이 수영장으로 내려간 사이 어머니와 동생과 대화를 이루며 세탁을 시작했다.


평소 남편은 캐나다에서 자기 세탁은 스스로가 하고 있었고, 나는 내 것만 살피면 되는 게 일상이었던 지라 아무 생각 없이 세탁물을 세탁기에 다 집어넣고 세탁을 시작했다.

잠시 후 세탁이 끝났고, 건조기 기능이 없던 터라 세탁물을 꺼내 말리려고 하던 중 난 남편의 반바지가 꽤 묵직하다는 걸 발견했다.

설마 하면서 주머니를 뒤져보니 거기에 글쎄! 남편의 여권이 들어 있었다.

다른 한쪽엔 지갑이 들어 있었고 말이다.

세탁 시작 전엔 왜 무게를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속으로 내 스스로에게 원망을 퍼붓었다.

'너 바보 아니니? 어떻게 그렇게 부주의할 수가 있니? 세탁할 때 주머니 살피는 거 기본 아니니?' 등등 수많은 생각과 한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당시 느꼈던 당혹감이 지금도 선명하게 뇌리와 가슴에 전해진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을 때의 안타까움과 밀려드는 후회와 절망감, 부끄러움 등등 복잡 미묘한 심사가 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 다미안이었다!


만 5살 때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디즈니월드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일본 여행에서 제일 먼저 원했던 게 바로 디즈니랜드 방문이었고, 우린 도착 다음날 디즈니랜드를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권이 이렇게 망가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임시여권을 하루라도 빨리 만드는 것이었고, 아무리 빨라도 만 하루는 걸릴 텐데 그렇다면 우리의 일정은 어차피 수정이 불가피한 듯보였다.


게다가 아쉽지만 속초 '델피노 소노 펠리체 리조트'를 건너뛰고 우리가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일요일 다음날인 7월 1일 월요일은 캐나다 국경일이라 대사관은 휴무였다.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딱!이었다!

홀로 낙심에 젖어 돌아온 남편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난 용기를 내 결국 입을 열었다.

이야기의 전말을 들은 남편은 첨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침착했다.

그런 남편에게 더 미안해 난 계속 사과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미안에게도 사정을 이야기했고, 아무래도 디즈니랜드는 가기 힘들 거 같단 얘기를 전하며 사과했다.

다미안은 남편보다도 더 침착하게 대응해 날 놀라게 했다.


잠시 후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어머니와 동생 역시 안타까워했지만,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7월 2일 아침 대사관이 문을 열기도 전 우린 일착으로 대사관 정문을 통과해 인터뷰어들이 일을 시작하길 기다렸다.


피 말리는 시간이 지나고 얼마 후 문이 열렸고, 우린 둘이 같이 좁은 인터뷰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인상이 다부져 보이는 인터뷰어가 우리 사정을 듣고 다음날 우리 비행시간을 물었다.

다행히 오후라는 걸 알게 된 그가 장담은 하지 못하지만 일찍 여권을 픽업해 공항으로 갈 수도 있으니 모든 걸 다 준비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번 보장(개런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린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비행기 티켓부터 변경해야 했고, 변경할 때마다 수수료가 붙는 터라 낮은 확률에 기대기도 그렇고 어차피 인터뷰어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건 만 하루에 가능하단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불안해 다음날로 비행기 티켓을 바꾸기로 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허겁지겁하다 보면 또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여유를 갖길 원했다.


그렇게 해서 결론적으로 우린 클룩에서 예약했던 디즈니랜드 티켓은 수수료 조금 떼고 그대로 환불처리받았고, 7박 8일이었던 도쿄 여행 여정은 6박 7일로 변경했고, 도쿄 호텔도 6박에서 5박으로 일정을 바꿨다.

그리고 손꼽으며 기다렸던 인터뷰어의 메일(임시여권을 신청한 다음날, 일본 여행 떠나기 전날 아침 여권이 준비되었으니 픽업하라는)을 받았을 때 우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번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캐나다 대사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인터뷰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바쁜 그를 면담요청할 순 없었기에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임시여권을 손에 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내 생전 임시여권이라는  걸 만들게 될 줄이야!~"

날 미안하게 하려는 말이 아닌 줄 알기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되는 거니까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날 우린 여유롭게 인천공항에 도착해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서야 드디어 일본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임시여권을 신청한 날 진행상황을 연락받을 때까지 아침식사를 하며 기다렸던 정동의 샌드위치집. 알고 보니 제법 유명한 집이었다!
임시여권을 픽업하러 택시를 타고 정동으로 향하면서 보게 된 '왕희문'. 대신 중고등학교 모습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런 해프닝이 없었다면 정동을 방문할 일도, 유명한 '정동국시'집에서 식사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권 사고가 없었다면 교보빌딩에 있는 '파리 크랴상'을 방문할 일도 없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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