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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19. 2024

두 번째 회귀 16- 새로운 친구

기남은 시간에 맞춰 리포트 제출하는 건 물론 수업 시간에 질문도 많이 하고, 발표 역시 똑소리 나게 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교수들 사이에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그에 맞춰 그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한인 유학생 수도 점점 늘어났다.

그중 기남과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이는 물론 정완수였다.

그날 안면을 튼 후 둘은 만나면 서로 아는 체하는 사이가 됐고, 곧 기숙사 룸메이트까지 됐다.

어느 날 정완수가 기남에게 하소연했다.     


“기남아! 나 이번에도 시험 패스 못 하면 정말 유학 생활 어려워지는데 어쩌지?”

“그래? 내가 정리한 것 좀 있는데 볼래?”
 “그래도 돼? 그렇게만 해주면 나야 쌩큐지!”

“알았어. 이따 룸에 가서 줄게.”

“야! 정말 널 만난 건 조상이 도와주신 거다! 아니지! 엄밀히 말해 내 덕이지! 내가 너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애쓴 결과니까!”
 “나랑 친하게 지내려고 애쓴 결과?”

“너 기억 안 나? 내가 너 밥 먹는데 가서 눈도장 꼬박꼬박 찍다가 어느 날 말 시키고 그러다 네가 겨우 나한테 눈길 줬던 거?”

“그랬나? 기억이...”

“말해 뭘 해! 넌 그저 책만 파고 있었으니. 흐흐. 암튼 내가 그간 고생 꽤 했었지.”

“그랬어? 난 덕분에 맛난 반찬도 많이 얻어먹고, 반찬뿐인가? 나도 네 덕 많이 보고 있지!”

“그래! 이게 바로 상부상조 아니겠냐? 우리 공부 마치고 한국 나가서도 상부상조 이어가자고!”

“그러자! 흐흐.”

“그런데 넌 몰라도 난 공부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열심히 하면 될 거야! 나도 힘껏 도와줄게.”

“정말? 나 책임질 거야?”
 “책임은 무슨? 내가 왜 책임을 져? 책임은 그쪽이 지고, 난 옆에서 성심껏 돕겠다는 거지!”

“그 말에 대해선 책임지는 거다! 꼭!”
 “흐흐. 걱정 마! 꼭 책임질게!”     


둘은 성격이 잘 맞았고, 그래서인지 죽도 잘 맞았다.

둘 다 깔끔하긴 했지만,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기남에게 정완수는 자기가 아끼는 옷도 주고, 뭐에 꽂히면 그것밖에 모르는 기남을 여러모로 챙겼다.

정완수는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서열 최상위에 속하는 회사를 소유한 집안의 장남이었다.

착하긴 하지만 공부엔 별 뜻이 없었는데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 유학을 오게 된 거였다.

그래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기남과 친해지려 노력했고, 그 결과 자기 뜻을 관철했다.

기남의 마음을 얻고 그의 신뢰까지 얻은 것이다.

한편 기남은 자기가 부족한 걸 채워주는 정완수가 고맙고 든든했다.

자기보다 10달이나 빨라 형 같은 데도 있고, 재벌 집 아들 같지 않게 털털한 면모까지 있어 편했다.     

정완수는 기남 덕분에 시험을 잘 치르게 돼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해서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자 기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방학 동안 기숙사에 계속 있기도 뭐 하고 하니 우리 여행이나 다녀오자!”

“여행? 난 파트타임 일 알아보려고 하고 있는데...”     


기남은 아버지가 돈을 넉넉하게 부쳐주지만 되도록 돈을 절약하면서 실용 영어도 더 익히면서 경험도 쌓을 겸 방학을 이용해 파트타임 일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너한테 신세 좀 갚으려고 그래! 덕분에 나도 첨 가 보는 캐나다 여행도 좀 해 보고!”

“캐나다?”

“그래. 바로 위가 캐나다잖아!”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데?”

“바로 위에 있는 퀘벡주는 캐나다에서도 불어권이라 유럽의 정취가 있대. 그래서 방학되면 애들이 그쪽으로 많이 올라간다고 하더라고.”

“퀘벡?”

“주 이름이 퀘벡이고 주도는 퀘벡시티인데 제일 큰 도시는 몬트리올이라던데.”

“아! 우리 양정모 선수가 최초로 금메달 땄던 곳이지 아마! 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서?”

“그래. 맞다! 그때 코마네치라는 여자 체조선수 정말 앗싸라비아였는데! 흐흐.”

“그때 정말 코마네치 인기 대단했지! 흐흐.”

“난 한국 여자보단 왠지 서양 애들이 더 육감적으로 느껴져서 그때 코마네치 상상하면서... 그것도 많이 했는데!”

“그거? 그게 뭔데?”

“아 그거 있잖아! 독수리 오 형제!”

“아!”

“넌 누구 상상하며 했냐?”

“난... 없어!”

“설마! 너 혹시 고자야?”

“아니! 절대!”

“그런데 어떻게... 한 번도?”

“사람이 살면서 신경 쓸 게 많으면 그렇게 돼! 흐흐.”

“아무리 그래도 도저히 나로선 이해가... 암튼 그럼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올라가서 실컷 구경하고 오자!”

“구경? 무슨 구경?”

“거기가 또 XXX 무희들이 죽여주는 곳이래! 탑리스라나 뭐라나? 웃통 아주 시원하게 드러내놓고 춤추는 거 있잖아! 한국에선 아직 그런 거 구경하려면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지만.”

“...”

“어째 반응이 이렇지? 남자라면 당연히 호기심도 느끼고 그래야 정상 아닌가? 너 아무래도 좀 이상해!”

“그런 거 아니야!”     

기남은 자신이 이미 아들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단 소리도 할 수 없고, 암튼 그냥 웃음으로 넘어갔다.

정완수가 기남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해 기남은 정완수와의 여행을 결국 약속했다.

그리고 둘은 방학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 캐나다로 여행을 떠났다.     


***
 

잠이 솔솔 오기 좋은 따뜻한 햇살 아래 둘은 차를 몰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완수가 렌트한 차는 포르셰였다.

정완수는 역시 재벌 집 아들답게 뭐 하나를 선택해도 폼나는 걸로 정했다.

여행 떠나기 전 그는 기남에게 당부했다.     


“이번 여행은 전적으로 내가 다 쏜다! 알았지? 이건 너와 나의 첫 여행인 동시에 그간 네가 나한테 보여준 우정에 대한 보답 여행이기도 하니까 내 뜻에 따라줘!”

“그래서 보답 여행을 여자들 구경하러 가자는 거야?”     


기남이 농담으로 진지하게 말하자 정완수가 얼굴이 불콰해지면서 말을 버벅거렸다.     


“정 그러면 나이아가라로 틀까?”

“흐흐. 됐어! 그냥 해 본 소리야! 나야 아무 곳이든 머리 식히고 눈요기만 하면 되니까 걱정 마!”
 “그렇게 말하니까 난 네가 다른 눈요기 원하는 줄 알았잖아!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이렇게 둘은 농담을 했고, 기분 좋게 출발했다..     

하이웨이 87N을 따라 그들은 아침 일찍 출발해 쉬지 않고 6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들녘과 숲, 그리고 간혹 보이는 마을들을 지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최고였다.

이제 얼마 후면 캐나다 국경에 도착하기 전 그들은 뉴욕 주 거의 끝부분에 도착했다.

관광안내소에 의하면 그곳엔 멋진 협곡이 있었다.

날씨도 덥고 해서 그들은 잠시 내려 쉴 겸 협곡을 구경하기로 했다.

협곡이라고 하면 서부 쪽에 있는 그랜드 캐년이 유명하다지만 그들은 규모 면에선 작아도 협곡이라는 매력적인 여행지를 놓칠 수 없어 들르기로 한 것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그들은 표를 구입한 다음 입구로 향했다.

날씨가 많이 더웠지만, 숲길을 향하자 시원한 숲 속의 공기가 바로 몸에 와닿았다.

더불어 피톤치드의 강한 향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남과 정완수는 기분 좋게 걸음을 옮기며 심신의 피로를 풀었다.     


“정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늘 학교 안에서만 맴돌다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 완전 딴 세상이구먼!”     


정완수가 시원한 숲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이렇게 내뱉었다.

기남 역시 그간 공부에만 골몰하다 머리를 식히니 살 거 같았다.     


“완전 동감! 인간과 자연은 역시 함께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학교 교정에도 나무나 식물들 엄청 많긴 하지만 완전 느낌이 다르네! 나무들도 우리나라 나무들보다 훨씬 크고 역시 서양이라 그런지 훤칠하네!”

“그러니까!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하다못해 식물들까지! 흐흐.”     


둘은 드디어 협곡이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아주 넓거나 크진 않았지만, 골이 깊게 파인 계곡이 아담하면서도 정갈했다.

그들은 산길을 조심스럽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 가던 정완수가 미끄러져 아래로 몸이 기우뚱했다.

그걸 보자마자 기남은 그의 팔을 붙잡고 나머지 팔로는 난간을 잽싸게 붙잡았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 그를 끌어올렸다.

그가 끌어올려진 후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이게 뭐야! 마치 내가 어린애라도 된 듯 날 어떻게 그렇게 가뿐히 끌어올린 거야?”     


정완수는 기남보다 키는 작았지만, 몸집이 꽤 있는 편이었다.

놀란 그를 보면서 기남은 무안한 듯 버벅거렸다.     


“그러게? 급하니까 사람이 초인적인 힘이 나오네?”     


기남은 이 일로 자신의 초능력이 공간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됐다.

더불어 정신을 집중하면 자기에게 어마무시한 파워가 생긴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그 후에도 기남과 정완수는 협곡 구경을 더 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차에 올랐다.

한 15분 지나 그들은 국경에 도착했고, 간단한 절차를 마친 후 다시 차에 올라 드디어 캐나다 땅을 밟기 시작했다.

말이 다른 나라지 풍경으로나 분위기가 뉴욕주 시골 마을과 별반 달라 보이진 않았다.

그러다 그들은 크게 다른 게 있다는 걸 곧 발견했다.

바로 영어가 아닌 불어가 도로 사인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불어는 모르지만 대충 빨간색으로 된 스탑 사인과 같은 건 멈춤 사인이라는 걸로 알고 정완수는 운전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운전 시 미국과 캐나다의 다른 점 한 가지는 미국은 마일을 사용하는 반면, 캐나다는 한국과 같은 킬로미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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