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의 노래가 당시 제일 잘 나가는 TV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지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만 갔다.
여기저기서 지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획사의 입단속은 더욱 심화됐다.
기남은 그즈음 기획사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권유에 따라 싱어송라이터 가수 외 댄스 가수들도 영입하기로 맘먹었다.
자신의 생각을 기획사 식구들에게 밝히는 자리에서 기남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보니까 마이클 잭슨 인기는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음악성은 물론 그가 추는 춤은 동네 아이들까지 다 따라 할 정도였죠. 우린 춤과 노래에 더해 작곡 능력까지 있는 그런 가수를 발굴했음 합니다.”
“마이클 잭슨이야 슈퍼스타죠. 그런데 우리도 그렇게 노래와 춤 겸비에 작곡까지 되는 가수를 키울 수 있을까요? 지금 센셔이션한 바람을 일으키는 박남재와 김원선 정도라면 모를까.”
매니지먼트 담당 최준혁이 회의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앞으로는 자기 이야기를 곡과 가사로 쓰고 거기에 춤을 곁들일 수 있는 가수가 분명 나올 겁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가수를 제일 먼저 선보이자는 거죠.”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죠. 한데 아직 우리 음악 수준은 그 정도까진...”
“노래와 춤만이라도 숨 안 차고 완벽하게 같이 할 수 있음 더할 나위 없죠. 흐흐.”
보컬 트레이너 직을 맡고 있는 이준호와 프로듀서 정찬도 비슷한 회의감을 보였지만 기남은 계속 말을 이었다.
“기억하시죠? 세 분 처음에 다 지우에 대해 희의적이셨던 거요? 하하!”
그때 춤을 담당하는 홍경진이 나섰다.
“작곡이나 작사는 공부하거나 노력해서 가능한데 춤이라는 건 사실 천부적인 걸 무시 못합니다. 몸에 밴 리듬감이라는 게 배워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계속 반복하고 노력하다 보면 될 거라고 전 믿습니다.”
이렇게 자기 의견을 밝힌 기남이 잠시 후 다시 덧붙였다.
“그리고 제가 생각한 게 있는데... 꽤 여럿을 한 팀으로 만들면 멤버들 각자 강점도 있을 거고, 서로의 약점 보완하기도 용이할 거 같은데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여러 멤버라 하심은...”
“일단 여섯일곱 명 정도로 시작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기남이 말하자 최준혁이 나섰다.
“대표님 말씀 좋은 생각 같은데요? 서로 약점 보완하고 각자 잘하는 거 하나씩 맡아서 하면 될 거 같고요. 그런데 여섯, 일곱은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여섯, 일곱 멤버면 그중 메인 보컬 둘, 나머지가 댄스를 맡고 그중 한두 명이 작곡하는 구성이 되는 건가요?”
이렇게 질문한 건 프로듀서 정찬이었다.
“그렇게 구성해도 좋고 아니면 그중 한 두 명은 랩도 좋을 거 같은데... 멤버 중 노래 실력이 상대적으로 가장 떨어진 사람에게 맞는 포지션이니까.”
이렇게 말한 이는 보컬 트레이너 이준호였다.
그즈음 랩을 구사하는 힙합 뮤직이 선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때라 그들 모두 그룹에는 찬성하는 분위기를 보여줬다.
“자 그럼 우리도 열심히 능력 있는 신인들 발굴해서 일단 시도해 보죠!”
물론 기남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가 살던 원래 삶에서 자긴 사느라 바빠 음악 쪽은 신경 쓰지 못했었지만, 간간이 TV에서 봤던 5인조 ‘HOT’ 그룹과 시원한 여름 노래를 부르던 ‘쿨’이란 그룹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삼인조도 꽤나 이슈를 몰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들과 똑같이 하긴 그렇고 해서 인원을 더 늘려 생각해 봤던 거였다.
기남은 댄스 대회를 개최하게 해 유망 있는 이들을 우선 대거 영입하게 했다.
“일단 댄스 페스티벌을 구상하고 개최해서 숨은 보석들을 찾기로 하죠!”
이렇게 기획사에서 주최, 주관하는 댄스 페스티벌이 얼마 후 열렸고, 거기에 참가한 많은 참가자들 중 유독 눈에 뜨이는 세 사람이 나타났다.
당시 외국물을 먹기 원하던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미군 부대와 인접한 이태원이라는 곳이었다.
그곳 클럽에서 춤을 추거나 DJ를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국문화를 쉽게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에 그곳 출신들이 대거 댄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세 사람 역시 이태원 클럽에서 춤을 추거나 디제잉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곳에서 이미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
춤을 담당하는 홍경진이 세 사람 춤을 보자마자 득달같이 기남에게 달려왔다.
“대표님! 눈에 확 뜨이는 신인 세 명 찾았습니다!”
“그래요? 기량이 그렇게 훌륭하나요?”
“네!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 불가입니다! 직접 한번 보실래요?”
기남은 춤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 시절보다 몇 년 뒤까지 더 살아봤으니 한 번 그들의 수준을 보기로 했다.
그가 보기에도 세 사람의 춤 실력은 당시는 물론 몇 년 후에 나타나 자기가 봤던 댄스 가수들보다 훨씬 뛰어나 보였다.
“훌륭하군요!”
“저 몸짓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꺾는 각도와 움직임이 그야말로 타고났습니다. 또 저기 저 사람은 파워풀한 게 장점입니다.”
군계일학에 비견할만한 특출난 세 사람을 한꺼번에 발견한 홍경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 그리고 저기 저 둘은 가수들 백 댄스도 가끔 한다더군요.”
당시 뮤직비디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TV에서도 화려한 안무를 선보이는 가수가 많아졌는데 그러다 보니 웬만한 댄스 가수들에게는 다 백댄서를 배치하곤 했다.
이들은 이미 실력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이들이었던 셈이었다.
기남이 흔쾌하게 동의한 후 의견을 피력했다.
“네! 일단 실력이 검증된 사람들이라니 위험 부담은 없겠군요. 하지만 제 생각엔 이들과 또 차별화되는 댄스 가수들을 영입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그걸 자연스럽게 춤에 녹여낼 수 있는 그런.”
“네. 말씀대로 그런 사람들도 더 찾아보겠습니다!”
그렇게 기남의 기획사는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어 기남은 미국을 방문해 한국 내한공연을 할 수 있는 미국 가수들을 섭외하려고 계획했다.
당시 미국은 여러 멤버를 가진 보이그룹이 이미 어느 정도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였다.
해서 그들을 초대해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보이그룹이라는 걸 소개할 참이었다.
더불어 보이그룹뿐만 아니라 걸그룹까지 이미 기남의 머릿속엔 그림이 그려졌다.
‘보이그룹이 있는데 걸그룹이라고 없으라는 법 없겠지?’
그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97년에 대한민국엔 첫 걸그룹이 탄생했지만, 그는 그런 쪽에 신경을 쓸 여력이 전혀 없어 한국에 걸그룹이 존재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선견지명으로 한국의 음악산업이 어떻게 발전하리라는 걸 예견할 수 있었다.
미국물을 먹은 그답게 그가 가장 눈여겨본 미국 걸그룹은 우선 TLC였다.
데뷔하자마자 그들은 음악성으로도 대중성으로도 최고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특히 그들이 앨범에 담은 사회비판적 메시지에 기남은 환호했다.
연주가 당했던 일, 그리고 성폭행을 일삼았던 정명식 사건과 맞물려 여성의 성적인 권리와 안전한 성관계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녀들의 노래에 깊이 공감했다.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여성들의 인권과 자발적인 성 권리가 시대의 흐름이 될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기남은 연주에게 그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연주의 의사를 물었다.
“아직 한국엔 들어오지 않은 음악이라 유학 시절 친구 통해 어렵게 구한 건데 들어보니까 어떤 거 같아?”
“사실 난 팝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음악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그렇다면 가사 신경 써서 한 번 들어봐.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연주가 열심히 듣더니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어려운 단어는 없는 거 같은데 듣기가 쉽진 않네. 그나마 노래 부분은 조금 들리는데 잘 모르겠어.”
“음악 장르는 힙합에 R&B이고 자신의 성적 권리를 말하는 거야.”
“그래? 알아들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힙합과 R&B라 그런지 난 주로 그쪽 음악을 많이 듣는데 이 걸그룹 크게 성공할 거 같은 예감이 들어.”
“그래? 그럼 우리도 이런 걸그룹 만들면 어떨까?”
기남이 흔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 생각도 나와 같군!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이런 걸그룹 만들면 좋을 거 같아 내일 회의에서 말해보려고 해.”
다음날 기남은 회의 중 기획사를 책임지는 네 명에게 걸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에서 보이그룹이 탄생해 이제 겨우 시작 단계긴 하지만 머잖아 세계 여기저기에서 걸그룹도 나올 거 같은데 우리도 준비를 하면 어떨까요?”
“네? 남자애들은 몰라도 여자애들을 단체 합숙시킨다는 게 쉬울 거 같지 않은데요, 대표님?”
역시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최준혁이 가장 먼저 우려를 표했다.
“세상이 아주 빨리 변하고 있어요! 미국 여자 그룹 TLC만 봐도 이제 곧 그들 노래가 플래티넘에 오를 거 같은데요.”
“어, 그걸 어떻게 예상하시죠?”
“느낌이 그래요. 힙합과 R&B는 물론 스윙까지 다양하게 담은 데다가 사회적 메시지까지 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시간문제겠죠.”
이건 기남이 미래를 살아봤기 때문에 알게 된 게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여러 분야 음악을 많이 들어왔던 그였기에 음악을 들으면 성공할지 안 할지 일종의 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네 사람의 눈이 기남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