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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는 4등급 귀신입니다 (1)

징글징글한 4등급     


 “아니 왜 제가 4등급인데요?”

 지겹다. 죽어서도 4등급이라니. 해도 해도 너무하네, 진짜.     







서른셋 늦은 여름에 용산역 4번 플랫폼에서 뛰어내렸다. 사실 진짜 뛰어내릴 생각은 없었다. 아니다. 뛰어내릴 생각은 있었지만 열차가 진짜 올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3219호 1호선 열차를 운행했던 기관사 아저씨한테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괜히 나 때문에 못 볼 꼴을 보고.  


 이십 대 마지막 날에 공시생 인생을 시작했다. 알바생, 인턴생, 취준생을 거쳤지만 수능 4등급 지거대 출신을 환영하는 기업은 없었다. 아니다. 한 곳 있었다. 지방에 있어도 나름 내실 있는 회사로 이미지 관리를 잘한 중소기업이었다. 사장 동생이자 상무 사촌이자 부장 조카인 실장은 수습 3개월 동안은 일을 배우는 기간이기 때문에 본봉의 반만 지급한다고 했고 진짜 월급은 입사 4개월 후부터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 중에서 첫 월급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4개월을 못 버티고 나갔다. 나는 끝까지 버텨서 그나마 한 달 치 월급을 받고 그만두었다.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했지만 월급은 최저 시급 곱하기 이십 일치에서 단 십 원도 더 주지 않았다. 그때 나는 죽어서 저 사장 새끼한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남들보다 공시생 생활을 늦게 시작한 만큼 마음이 조급했다. 남들보다 열심히 하리라고 맹세했지만 남들은 나보다 더, 늘, 열심히 했다. 내가 잘 때도 그들은 깨어 있었고, 내가 일어날 때면 그들은 이미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죽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그놈의 망할 4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험마다 모두 떨어졌다.

내가 죽은 그날은 서울시 공무원 합격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본 시험이었다. 이번에 떨어지면 집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월세도 학원비도 더이상 엄마에게 빌붙을 수 없었다. 3년 동안 죽자고 패를 돌렸는데도 승률이 없다면 그건 내가 가진 패가 개패라는 증거다. 그리고 그날 나는 개패임을 비로소 확인했다.



 나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고 있었다. 소음 차단 기능을 켜고 듣는 노래는 나를 섬으로 만들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섬. 나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섬.

노래 가사처럼 나에게서 또 하루가 멀어져갔다. 아니 모든 것이 멀어져갔다. 지난 사 년 동안 나는 무엇으로 나를 채웠을까. 눈이 뜨거워졌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안경 안에 떨어진 눈물에 빛이 반사되면서 아주 작고 희미한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이 무지개를 밟고 저 반대편으로 건너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지개가 헛것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무지개를 밟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발짝 더 내딛는 순간 나는 허공을 밟았고 열차는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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