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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등급 귀신입니다(3)

나는 서른셋 동안 나는 치열하진 않았지만 게으르지 않았고, 남에게 친절을 베푼 적은 없지만 나쁘게 한 적도 없었다. 돈이 없어 도와주지 못한 친구는 있어도 돈이 있어도 빌려주기 싫어 숨긴 적은 없었다. 이익을 준 적은 없어서도 피해는 주지 않고 살았는데, 도대체 왜?



“자, 잘 들어. 용산역발 사망자들은 총 네 등급으로 나뉘는데 1등급과 2등급은 다른 사람을 구하고 죽은 사람들과 일하다 사고로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야. 뭐, 우리끼리 구분하려고 1등급하고 2등급을 나누긴 했는데 대우에는 큰 차이는 없어. 둘 다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거든. 너 얼마 전에 용산역에서 안전 게이트 수리하다 죽은 친구 기억나지? 그 친구가 1등급이야. 모두가 그 친구의 죽음을 슬퍼했지.”


기억난다. 그 친구의 가방에는 컵라면 하나와 젓가락 한 개,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적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용산역 4번 출구 앞에다 들꽃을 하나 꽂아놓고 왔었다. 마음 같아서는 예쁜 꽃을 사고 놓고 오고 싶었지만 주머니엔 컵라면값으로 남겨둔 이천 원이 전부였다. 그날 나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가 울었다. 김치 살 돈이 없어서, 김치가 없으니 맛이 없어서, 이것도 못 먹고 죽은 그 친구가 생각나서.


감상에 젖어 있는 나를 본 저승사자는 지금 안타깝고 불쌍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너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3등급하고 4등급은 자살로 죽은 건 똑같지만 3등급은 억울함을 못 견디고 자살한 사람들이고 4등급은 그런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야. 뭐 있다고 해도 별 볼 일 없거나.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준 너 같은 경우는 빼박 4등급.”


너 같은, 이란 말의 뜻은 아마도 3219호를 운행했던 기관사 아저씨에게 충격을 준 걸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날 사고로 충격을 받은 기관사는 트라우마로 그만뒀다는 말은 들었다. 멀쩡한 남의 밥그릇을 발로 찼다고 생각하니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 죽겠다.


“야, 급반성 하는 표정은 됐고!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잘 들어. 각 등급에 따라서 혜택이 있는데 이게 중요해. 1등급과 2등급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에 나타날 수 있어. 원한다면 저쪽 세상 사람들에게 행운을 줄 수도 있는데 길몽이나 태몽이란 말 들어봤지? 그거 다 그 사람들이 만들어서 보여주는 거야.”


그 사람들은 죽어서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3등급은 저 세상 사람들 꿈에 나타나거나 하지는 못해. 아무래도 억울함이나 분노가 있는 사람들이라 혹시 저 세상 사람들 꿈에 나타나서 사고 칠까 봐 제한을 한 거야. 대신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을 때 사물을 이용할 수는 있어. 갑자기 주변을 조용하게 만들어 관심을 끈다든지, 물건을 떨어뜨려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든지, 뭐 그런 식으로.”


고등학교 시절 야자 시간에 종종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다가 급 조용해질 때가 있었다. 선생님이 온 것도 아닌데 일순간에 교실이 조용해지는 순간. 애들은 농담으로 ‘귀신이 지나간다’라고 속삭였는데 농담이 아니었군.


“마지막 4등급. 유감스럽지만 4등급은 딱히 혜택이랄 게 없어. 아, 그건 할 수 있어. 바람이나 비 같은 자연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지. 그거야 뭐 어차피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그나마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까? 저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업이 쌓이면 위 등급으로 올라갈 수는 있어. 그럼 위 등급들이 누리는 혜택도 누릴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1등급 혜택을 누릴 수 있지. 땡기지? 물론 너 하기 달린 거지만.”


“정말요? 열심히만 하면 1등급 혜택 누릴 수 있어요? 그거 사고 칠까 봐 그냥 하는 말이죠? 괜히 꿈과 희망 주지 말아요.”

“야, 넌 내가 천사로 보이냐?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제일 무서워한다는 저승사자야. 그리고 니가 뭐라고 꿈과 희망을 주냐? 4등급이 아주 꿈도 야무지네.”     



죽기만 하면 모든 것들은 무의미할 것이라고, 죽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생겼다. 살아 있었을 때처럼 열심히, 늘, 노력해서 1등급 귀신이 되는 것, 그래서 우리 엄마 꿈에 나타나는 것. 엄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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