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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한 책들

<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자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반해, 글을 읽는 사람, 책을 사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다 못해 희귀하다는 소리까지 듣는 요즘이다.

그래도 웹소설이나 전자책이 보편화되면서 독자가 늘지 않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새로운 독자가 유입되었다기보다는 기존 종이책 독자의 독서 수단이 이동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 싶다.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판이지만.


요즘 세상에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오히려 책 읽는 시간에 다른 걸 체험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책 읽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할 정도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그래도 책 읽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은 충격이긴 하다.   


본업을 글쓰기로 삼은 지 3년. 생각보다 출간은 쉽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잘만 쓰면 사람들이 읽어주고,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쓰는 것과 한 권의 책을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독자는 단지 좋을 글을 사는 게 아니라 글을 포함하는 책이라는 상품을 사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공짜 글은 많이 써봤어도 유료 상품은 지금껏 만들어본 적은 없는지라 글만 잘 쓰면 다 해결된다는 내 생각은 출간을 쉽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습게 본, 매우 큰 착각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낯선 이름의 출판사 편집자께서 출간을 제의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작가가 발길에 차인다는 사이버 공간에서 미천한(!) 나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고,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때려지네 마네 하며 모자란 나를 한심했는데 졸지에 갑자기 인정받는구나 싶어 우쭐해졌다.


그러나 쫄보가 어디 가나.  계약을 하고 원고를 쓰는 기간 동안 부족하기 짝이 없는 글이 걱정이 되었고, 교정쇄를  넘기면서는 말끝마다 “부족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입에서 떨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편집자님은 이제 예쁘게 물건 만드는 일만 남았고,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작가님은 편안하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었다. 부족한 글을 완성이랍시고 보낸 것도 민망한데 편안하게 기다리면 된다는 말에 더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모든 상품이 다 그렇겠지만 제작부터 판매까지,  돈이 아닌 것이 없다.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어쩌면 출간 과정 중에서 글쓰기가 가장 저렴한 노동일지도 모른다. 창작 작업에 최저임금처럼 최저가가 책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리적인 무엇을 소비하는 행위도 아니니까. 즉 밑천이 들지 않는 노동이다 보니 늘 도매가로 후려쳐지곤 한다. 게다가 요즘은 글을 사는/읽는 사람보다  사는/쓰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넘쳐난다. 시장논리에 따르면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면 가격은 당연히 내려간다. 좋은 점도 있지만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양과 질은 다른 문제니.


사실 출간 비용의 칠 할은 책표지, 제목 그리고 홍보다. 그리고 저 칠 할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글만 좋으면 되지 표지가 뭐 중요하냐 싶겠지만 진짜 꼰대 같은 소리다. 아무리 재밌는 책도 표지가 별로면 사람들은 사지 않는다. 사람들은 멋으로 책을 산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책은 최고의 교양이자 가장 저렴한 사치다.


홍보는 말할 것도 없다. 신간을 소개하는 잡지나 기자들은 하루에도 몇십 권의 신간에 묻혀 산다고 한다. 잘 부탁한다는 말이 미안할 정도다. 그래도 신간의 유효기간이 한 달 길어야 두 달이라는 말을 기억하면 자본  집중 투하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유감스랍게도 대부분의 책은 신간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재고의 슬픔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교정의 횟수가 늘어나는 것, 출간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것, 완고가 나온 지 한참이 되어서도 제목이 결정되지 못하는 것. 모두가 나의 부족함 때문인 것 같았다. 내 글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고생을 하고 쓸데없는 돈을 쓰고,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 상품을 만들어주는 이 분들이 가여울 지경이었다!


 막상 내 손에 책이 쥐어지면 마치 세상을 얻은 것처럼 뿌듯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을 때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마냥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기운을 느꼈다. 이제 나는 <우세한 책들>에 대해서만큼은 무한책임자가 된 셈이다. 작게는 이 책의 오타, 비문부터 크게는 내가 제시하는 대명제까지 책임지라고 요구할 것이다. 사실 두렵다. 허술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쫄보라.

 그럼에도,


정성스럽게 키워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더불어 원래 부족한 자식들은 다른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야 더 잘 크는 법. 모쪼록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손을 오래오래 타길 바라며.


알라딘: 우세한 책들 (aladin.co.kr)

우세한 책들 - 예스24 (yes24.com)

우세한 책들 | 장윤미 - 교보문고 (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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