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갓 Mar 23. 2023

아메리카노

 이 글은 원래 올해 초에 썼었다. 글을 쓰던 중 허탈한 마음이 들어 끝을 내지 못하고, 두 달이 넘게 지나고 나서야 다시 쓰는 글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나는 능숙하게 주문을 하고, 핸드폰 번호를 눌러 적립까지 끝낸 후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듯이, 매일 아침 출근하면 나는 커피를 샀다. 6개월 전에는 세 잔씩, 3개월 전부터는 두 잔씩, 그리고 오늘부터 한 잔이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이제 나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었다’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초에 나는 혼자였고,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뿐일지도 모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이 걸어가는 그 길은 내가 스스로 택한 길이다(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들을 내보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어느 회사를 가든 동료들과 깊은 관계는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는 것도, 실망을 하는 것도, 내가 그들에게 기대나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인공지능 로봇처럼 일만 하고 지낸 것은 아니다. 나라는 인간에게 호기심이 생겨 먼저 다가오면 나는 굳이 철벽을 쌓지는 않았다. 퇴근 후에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냥 그들에게 적당히 호응을 해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될 때면 나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항상 떠나던 쪽은 나였다. 4년 전 여름 나는 부장님에게 한 달 반 뒤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부장님은 안된다고 답했다. 물론, 함께 일하던 팀원들은 그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장님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살던 원룸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도 시켜준다고 부동산에 함께 가기도 했다(월세 차익금은 회사에서 내준다고까지 했다). 결국, 나는 예정된 퇴사 날짜에 야반도주를 했다. 사실, 밤에 도망친 것은 아니지만. 팀원들은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팀원들에게도, 부장님에게도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연락을 하지도 못했다. 1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같이 일하던 사람들(부장님께는 연락을 못 드렸지만)에게 연락을 했고, 지금도 종종 만나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를 허탈함이 느껴졌다. 나는 주문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천천히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따라 아메리카노가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날씨 탓일까?

작가의 이전글 모래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