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일기장을 통해 주고받았던 기록
초등학생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운명이 있다면 일기 쓰기일 것이다. 어릴 때 학기 중에는 검사 전날, 방학 때는 개학 전날에 거의 팔만대장경을 집필하듯 쓰긴 했어도 어떻게든 써냈던 일기인데 요즘은 일기 검사를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말이 많다. 일기를 검사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는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래도 일기 검사를 한다. 많이 양보해서 일주일에 2편, 각각 10줄 이상이다. 그마저도 글자 크기를 너무 크게 하거나 띄어쓰기가 아니라 간헐적 쓰기 정도를 해서 줄 수만 늘리면 불러서 다시 지도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일기장 내기를 싫어하지 않고, 검사해서 다시 나누어 주면 일기장을 펼쳐보느라 교실이 잠깐 조용해진다. 왜냐 하면 일기를 내면 아이들의 글 옆에 매주 '선생님의 편지'를 붙여 주기 때문이다. 한 주 동안 선생님이 느꼈던 점, 가벼운 일상 나눔, 재미있는 이야기, 지금 우리 교실에 필요한 이야기(사실 잔소리) 등을 편지를 통해 이야기하다보면 아이들과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매주 글을 쓰게 된다.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고, 변하지 않기도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과 하루하루 전쟁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선생님의 일기장 편지. 그 기록들을 모아 보려고 한다.
선생님이 사랑하는 우리 거북이들에게 ♥
얘들아, 안녕? ㅇㅇㅇ 선생님이야. ‘지난 주에 비해 우리가 많이 친해졌지만, 더 많이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너희들의 일기장에 선생님의 글을 붙여주기로 했어. 이제 5학년이 된 작년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은 선생님의 일기장 편지를 아주 좋아했는데, 너희들도 그러면 좋겠다.
선생님은 3학년 때 3반이었어. 번호는 47번이었어. 선생님이 어렸을 때는 여자 번호가 51번이 아니라 41번부터 시작했었으니까 여자 중에서는 7번이었지. 그 때는 아마 생일 순서로 번호를 정한 것 같은데, 선생님 생일은 8월이어서 중간쯤이었던 것 같아.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어떻게 번호까지 기억하고 있냐면 선생님이 3학년 3반 47번, 합쳐서 3347이라는 숫자를 선생님 통장 비밀번호로 만들었거든. 3학년 때 학교 숙제로 부모님과 함께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통장을 만들 때는 비밀번호 4자리가 필요하거든?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3347로 했지. 그래서 올해 3학년 3반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면 너희들을 만나지 못했을테니까 4반이 된 것이 좋아. 선생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다 자랑하고 너희들에게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반 친구들은 어쩜 이렇게 예쁘고 멋지고 성실한 친구들만 모였는지! 선생님들은 3월 학기 초에 엄~~~청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피곤한데 너희들이 귀엽고 선생님 말에 집중도 잘 해서 선생님은 학교에 오는 발걸음이 가벼워. 아직 우리 반이 낯설고 학교 오는 것이 힘든 친구들도 있지?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하고도 친해지고 친구들하고도 친해지고 학교생활이 더 재미있어질 거야.
참, 아까 수학 시간에 말하려다가 깜빡하고 넘어간 게 있어. 선생님은 1학년 때 수학 시험을 보다가 한 문제를 틀린 적이 있었어. 왜냐면 문제가 <23을 읽어 보세요.> 였는데 선생님은 그게 ‘이십삼’이라고 글자를 쓰라는 말인 줄 모르고 그냥 작은 목소리로 이십삼~ 이라고 말하고 넘어갔거든. 선생님 말고도 그렇게 소리내서 말하고 넘어가서 틀린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 1학년이었잖아~ 아까 수학에서 263+112를 계산하는 방법을 말해 보세요 라는 문제가 있어서 저게 생각났었는데 종이 쳐서 그냥 넘어갔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자~ 안녕~
2023년 3월 7일 ㅇㅇㅇ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