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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경 Apr 09. 2019

인경씨는 왜 글을 쓰세요?

어떤 아픔은 행동의 동기부여가 된다.

작년 가을 아는 분이 주최하는 시낭독회에 간 적 있다. 그분과 인스타에서 알고 지낸지는 꽤 되었지만 실제로 만나 진지한 대화를 해본 적은 없었다. 가을밤에 시낭독이라니 얼마나 감성적인가! 다만 새로운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시간에 맞춰 모임에 참석했다. 시낭독회에 7명이 모였고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에세이 책 한 권을 쓰고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 박인경입니다.”

나의 소개가 끝나자 주최자는 물었다.    

“근데 인경씨는 왜 글을 쓰세요?”

“저는 살기 위해서 쓰는 것 같아요. 제 삶에 필요조건이었어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 음...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지? 내가 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었나? 글을 쓰지 않았다면 삶이 휘청거렸을 거란 말인가? 그날은 나 자신에게 당황한 채로 시낭독회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기 위해 글을 쓴다니 조금 궁상맞은, 혹은 작가의 허세가 담긴 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올해 봄, 어린이집 교사에서 필라테스 강사로 전향 중인 친구를 만났다. 5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던 친구가 최근에 퇴사를 했고, 필라테스 강사가 되기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친구의 변화가 새삼 놀라웠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자신이 하던 일과 관계없는 일에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 지금 내가 몸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5년 동안 필라테스를 배웠다는 친구에게 나는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필라테스를 배울 수 있었어?”

“나는 대학생 때부터 허리가 안 좋아서 일하면서도 계속 아팠어. 그래서 안 아프고 싶어서, 살려고 배운 거야. 난 동기부여할 만한 게 있으니까 계속할 수 있었어.”    


아픈 허리 때문에 안 아프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필라테스를 배웠다니. 근데 이 말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살려고 글을 쓴다. 어머... 내가 전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랑 비슷하잖아. 시낭독회에서 자기소개할 때 한 말, 생각해보면 마냥 허세는 아니었을 수 있겠다. 나도 안 아프고 싶어서 글을 쓴 거고, 살고 싶어서 글을 쓴 거니까. 마음이 울적할 때,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일기장을 펼쳐 써나간 비밀스러운 글들이 떠올랐다.    


어떤 아픔은 행동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대학생 때부터 허리가 아팠던 친구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싶어 5년 동안 필라테스를 배워왔고, 어린 시절부터 마음 아플 일이 많았던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싶어 중학생때부터 일기장에 빼곡히 글자를 채워왔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자신을 보호하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무엇으로 자기를 지켜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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