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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경 Jun 19. 2021

오븐에 넣으면 뭐라도 나오겠지

베이킹을 하며 채워지는 마음

몇 년 전에 여동생과 나는 방이 두 개 있는 집에서 같이 살았다. 그 애는 가끔씩 쿠키와 스콘을 구웠다. 집 안에는 온통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차고 때때로 타는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동생이 베이킹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생이 깜빡하고 잠들어서 쿠키가 타기도 하고 딱딱하게 벽돌처럼 굳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내 부지런한 동생은 실패에 별로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반복해서 만들며 자기만의 레시피를 알아가는 거라고 그랬다. 그렇게 집에서 뚝딱뚝딱 만들며 연습을 하더니 플리마켓에 나가 팔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퇴근하고 베이킹 자격증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잠실에서 퇴근해서는 강남역까지 부랴부랴 가서 3-4시간을 서서 빵을 만들고 비닐에 담아 퀭한 모습으로 돌아오던 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싶었으나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보다. 자격증을 결국 따고 캐나다로 떠난 동생은 이제 밴쿠버에서 케이크를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그게 꽤나 잘 되고 있단다. 캐나다에는 우리나라처럼 예쁘고 화려한 케이크를 안 판다고 하네. 1년만 있다가 돌아올 줄 알았던 동생은 벌써 2년이 넘도록 오지 않고 거기에서 자리를 잡아 지내고 있다. 


가끔 동생이 만들어주던 달지 않고 통밀의 텁텁한 맛이 나던 스콘이 먹고 싶었다. 작은 집 안에 느껴지던 뜨거운 열기와 빵 냄새와 동생이 그리웠다. 복합적인 이유였다. 정확히는 무엇이 가장 큰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것들이 그리웠다. 동생에게 레시피를 따로 물어보지 않고 그때 먹었던 스콘의 맛을 내고 싶었다. 오븐을 한참 알아보다가 광파 오븐이란 걸 알게 됐고 내 형편에 맞게 적당한 선에서 구입했다. 광파오븐은 전자레인지 기능이 함께 작동되어서 베이킹할 때 온도가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내가 베이킹을 시작한 건 2020년인데, 이 때는 직장생활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로 몸과 마음이 유난히 피폐해져 있을  때다. 모든 것들이 내 마음같이 않아서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자신감도 자존감도 바닥을 치면서 내 삶의 의미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고작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던 시기.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피로해서 골골대며 누워서 시간을 죽이는 패턴으로 살았었다. 그러다가 아 작은 뭐라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동생이 해주던 스콘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요리는 잘하는 편이니까 베이킹도 곧잘 하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을 가져보았다.


상당한 무게의 오븐을 집에 들이고 유튜브로 통밀 스콘 만드는 영상을 수집했다. 거기서 알려주는 각종 재료들을 인터넷 쇼핑으로 사모았다. 통밀가루, 자일로스 설탕, 현미 오일, 레몬즙, 녹차가루, 쑥가루, 치즈가루, 코코아 가루, 아몬드가루, 베이킹파우더 등 끊임없이 택배 상자를 뜯어야 했다. 


만드는 과정 자체는 간단했다. 모든 재료를 적절히 믹스해서 구우면 되는 거였는데, 처음이라 스콘이 빵처럼 부풀기도 하고, 녹차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써지기도 하고, 타기도 하고, 덜 익기도 하고, 딱딱해지기도 하고, 하나도 안 달기도 하고 그랬다. 몇 번 실패하다 보니 동생이 하던 말이 수긍이 됐다.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이런 말이었구나 싶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정확한 레시피를 알려줘도 우리 집 오븐에 따라, 내 손기술에 따라, 내 입맛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에 나에게 맞는 레시피로 만들어나가야 했던 거였다.


가끔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통밀 스콘 하나만큼은 레시피가 한 곳으로 수렴되었다. 가끔 동생이 해주던 맛이 나기도 했고, 내 입맛에 맞게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내가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원래는 없었던 것을 있게 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고작 나인데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서 아주 약간의 즐거움과 만족감, 확신, 명료함을 느꼈다. 베이킹은 과학이라고 한다. 재료를 담을 때 미세 저울로 그램을 측정하는데 단 1그램의 차이로 달라질 수 있기에 정확하게 측정해서 어우러지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딱딱 떨어지는 수학 공식처럼 나만 정확하면 크게 실패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불안할 때, 자신이 없을 때, 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오븐을 한번 쳐다보다가 얼른 일어나서 스콘을 굽는다. 180도에서 15분을 기다려 오븐을 열면 역시나 명료하게 떨어지듯 만들어진 스콘이 나온다. 이 순간이 가장 만족스럽다. 뜨거운 스콘을 포크로 찍어 한입 먹어보고 한 김 식혀서 내일 만날 사람들에게 나눠줘야겠다며 포장한다. 나는 베이킹을 해도 거의 먹지도 않는데 배는 부르고 마음도 가득 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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