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wpw Oct 20. 2019

실천이 보내는 경고

보수 집회의 근처에서



한창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관심이 많았을 때, 나는 우익 보수의 집회나 의사표현을 폄하할 때가 많았다. 그 현장에 내가 갈 일은 없었고, 나에게 그들의 정치적 의제는 부정의 대상이었으니까. 나는 늘 그들의 요구를 반박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때로는 지적인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회적 활동이라곤 길에서 구걸하는 이의 동전함에 천 원짜리를 넣는 정도의 일 말고는 하지 않는 날에, 우연히 보수 집회의 옆을 걷게 되었다. 솔직히 의외였다. 광화문에서 매주 집회가 있는 일은 알았지만 경복궁을 지나 효자동까지 집회를 이어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탄핵무효, 한미관계, 한국경제에 대한 말을 외치는 사람들이 북적였고, 너도 나도 태극기를 흔들었다. 군중은 성조기와 태극기와 자유를 자신들의 것 마냥 휘둘렀고,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그럼에도 놀랐던 것은 내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물론 그들이 누군가의 추측대로 특정 정치적 집단의 금전적인 지원을 통한 동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내가 알아낼 도리는 없으니 그 날 거리에 있던 사람들만 가지고 생각을 한다면, 어쨌든 꽤 많은 인원이었고 세대도 다양했고 성별도 다양했다. 물론 진보 집회의 다양성에 비하면 조금 편향되었다는 느낌은 있다. 비교적 나이가 많고, 비교적 남성이 많고. 그렇다고 할 지라도 흔히 낙인찍는 나이 든 노년층의 박정희에 대한 향수나 고집이라고만 생각할 세대의 집합은 아니었다는 부분에 놀랐다.


집회를 나가보면 알지만 집회란 불편한 것 투성이다. 아스팔트 바닥은 잘 포장되어있어도 사람이 앉거나 눕기 위한 길은 아니다. 등산방석을 들고 앉아도, 돗자리를 깔고 앉아도 엉덩이가 배기고 허리가 당긴다. 하물며 뜨거운 날씨가 저문 선선한 가을날이라곤 해도 대낮에 계속 햇볕을 받는 일은 썩 편안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집회가 무슨 레크리에이션 행사장도 아니고, 소풍도 아니다 보니 재밌을 만한 것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집회에 참여한다는 정치적 행위란 무척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귀한 주말을 반납하고 거리에 나와있다는 의미는, 늘 그렇지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짜증은 났다. 집회에서 다뤄지는 정치적 의제들은 사실 행정부에서 무언가 하기에는 어려운 일들 뿐이었다. 한미관계의 회복이라거나, 한국경제를 살려내라거나, 탄핵을 무효화하라거나, 집값을 올려달라거나. 이러한 정치적 의제는 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는 의미와 함께 무척이나 진지하고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저 메시지가 실제로 분권화된 시민사회의 정치에서 행정부나 대통령(그들은 문재인이 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이 손가락질 한 번에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의견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갖고 거리까지 나왔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의무라고 한다면, 그 의견 이면의 감정적 맥락 역시 고려하는 것이 사회의 성숙도와 관계있다고 본다. 사람들의 언어는 늘 의식화된 상태로 교환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고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솔직한 말을 꺼내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솔직해진다는 일은 무척 큰 용기와 부담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때로는 엉뚱한 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집회의 어젠다들이 꼭 그런 식으로 나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한 시대를 잘 버티고 이끌어낸 사람들이 정말로 저런 의제들에 대해 정치적 효과 외의 진정성을 고려하지 못할 만큼 맹목적일까 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정치와 사회의 의제는 아름답게 표현하더라도 결국 힘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당장은 그들의 의제가 이 사회에서 힘으로 밀리고 있다지만, 이러한 실천의 '경고'는 또 다른 힘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의제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해소시켜야 하는지 사실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단지 나처럼 무시해도 되는 사람들이라거나, 어리석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거리에 나오는 일은 무척 수고스러운 일이고, 그 어려운 걸 몇 주째 나와서 저러고 있다. 저 사람들이 정말로 탄핵을 무효화시키길 바라고 한국 경제를 여당과 정권의 탓이라고 깊이 믿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사회가 마주한 어려움에 대해 많은 시민이 특정한 불만을 표출하고 싶다는 점, 그리고 그런 어젠다의 몇몇은 분명하게 개인의 삶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우리 사회가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여유가 생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좋아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