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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wpw Jul 06. 2020

어른에게도 부모가 필요할까

외갓집의 냄새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자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쑥모기향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수구를 타고 올라온 날벌레들을 잡기 위한 엄마의 방책이었다. 쑥모기향 효과 없고 몸엔 안좋다던데. 그치만 엄마는 이 모기향을 제일 좋아한다.


하루에 버스가 딱 네대 다니는 시골 외갓집은, 시내에 깔린 우둘투둘한 징검다리를 건너야 갈 수 있었다. 소 세 마리와 꿀벌상자를 키우고, 담배를 팔고, 작은 논밭을 일구는 외갓집에는 변기마저 푸세식이었다. 뻥 뚤린 구멍을 가운데 두고 나무판자 사이에 앉아 용변을 보는 경험이란!


그런 외갓집에서는 늘 모기향 냄새가 났다. 쑥 타는 냄새, 장작불이 타는 냄새, 담배를 핀 냄새. 온돌이 지지는 방의 천장은 흙과 나무로 되어있었고, 도시에서는 그렇게 싫었던 냄새가 어쩐지 외갓집에서는 썩 싫지 않았던 기억이다.


우리 엄마도, 아빠도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국민학교 5학년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 시골 촌동네의 막내딸이어도 이제는 배워야 한다는 외갓집 어르신들의 깨어있는 마음 덕이었다. 그러나 서울 친척집에 살며 엄마와 너무 일찍 떨어진 딸아이의 생활이란. 지금처럼 SNS도 카톡도 휴대폰도 없는 시절의 외로움이란. 엄마는 상고를 나와 신세계에 들어갔다. 엄마의 어릴 적이, 젊음이 어땠을지 종종 궁금하다. 어리광을 한참 부려도 모자랄 나이에 어른이 된 엄마는 누구한테 힘들다고 했을까. 힘든 건 사치였을까.


아빠는 국민학교 2학년때 집이 망했다. 도시락 쌀 밥이 없어 수돗가의 물로 배를 채우고, 학교에 낼 기성회비가 없어 학교를 못가는 청소년기란 옛날 소설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게 아빠의 이야기였다니. 그래서 아빠는 군인이 되고 싶었단다. 밥을 세 끼 먹을 수 있고, 공부를 시켜준다고. 너무 어린나이에 맏이가 된 아빠는 그렇게 사관학교를 갔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정말로 굶어죽을 수 있는 어린이에게 삶이란 이미 어른의 것이었다 싶다.


내가 청소년기 무렵에, 우리 부모님은 그 어려운 역경을 헤쳐 온 힘으로도 어찌 할 도리없다 싶을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 이미 어른이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어려움이 우리 가족을 짓눌렀다. 가족들의 얼굴엔 늘 그늘이 져 있었고 안색이 죄다 흙빛이었다. 엄마는 때때로 나를 붙잡고 너무 힘들다고 했고, 아빠는 그저 니들은 아빠처럼 살면 안된다고 술기운에 한탄하시곤 했다. 나는 이런게 너무 싫고 힘들었다. 엄마도, 아빠도 위대하리만치 열심히 살아서 이렇게 왔는데 왜 저렇게 말하는지 속상했다. 


죽고싶다는 부모의 말을 들었을 때, 그건 말로는 감히 표현키 어려운 감정을 가져온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손이 파르르 떨린다는 느낌이 든다. 신경 끝을 전기로 지진다는 느낌을 알까. 죽고 싶다던 부모님이 어디라도 나갈때면, 새벽 일찍 깨서 현관을 열때면, 나는 자다가도 눈을 번쩍 떠서 황급히 일어났다. 복도를 바라보는 창문에서 바람을 쐬러 나가는 부모님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불안함은 이내 공포가 되어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외할머니는 내가 중 3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내가 스물셋일때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가끔, 지나가듯이 내게 너희한테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게 후회된다고 했다.

그치만 그렇지 않았다면 우린 무너졌을 테니까.


다만 그런 생각이 든다. 

너무 이르게 어른이 되어야 했던 엄마아빠에게도 사실은

엄마나 아빠가 오래 필요했을 거라고.


도라에몽이었나, 거기서 한 아빠가 돌아가신 엄마를 타임머신을 타고 만나는 내용이 있었다.

늘 근엄하고 딱딱한 아빠가 엄마 무릎을 안고 힘들었다고 펑펑 울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는 어디다 힘들다고 하기는 편하다. 세상이 힘들어도 괜찮다고 해 주는 편이니까.

온갖 책도 많고, 심리상담이나 정신과도 보편화되어있고. SNS에 해도 되고. 친구들한테 해도 되고.


근데 우리 엄마아빠 시대에는, 그럴 수 있었을까. 어디다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힘들다고 말하긴 어려워도 그냥 엄마아빠에게도 엄마아빠가 있던 시절이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엄마가 쑥모기향을 태울때면, 엄마도 외할머니가 생각날까.

엄마아빠도 부모노릇이 처음이어서 서툴렀을 뿐인데

인생이 처음이라 힘들었을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쓰라리다. 나는 내가 엄마아빠한테 기대지 못한게 힘들었는데

꼭 그렇게 생각할 일만도 아닌가. 하는 마음이 된다.

같이 어떻게든 버티고 왔으니까, 다른건 조금씩 또 나아지겠거니. 그런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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