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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Jun 13. 2023

나는 굳이 해보는 걸 더 좋아하니까

맥북 VS 갤럭시북이 깨닫게 해 준 나의 가치관


“나는 맥북 쓰는데 이제 삼성 못 돌아가.”

“나는 전부 삼성이라서 애플은 안 써.”


장장 7년을 써온 노트북이 드디어 파업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어떤 명령을 내려도 바로 대답해 주지 않는다. 코앞에 있는 물을 한 잔.. 아니 두 잔은 넘게 마셔야 원하는 답을 알려준다. 몇 초 안에 창이 뜨지 않으면 고객들이 퍼널에서 이탈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느릿느릿한 인터넷 속도를 마주할 때면 노트북 화면을 꺼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멀쩡한데 쓰자는 생각으로 버티다 보니 어느새 7년이 되었다. 점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중, 한 오픈마켓에서 빅세일을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바꾸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노트북을 살 때 '삼성과 애플, 둘 중에 무엇을 사는가'라는 크나큰 관문이었다. 일단, 나는 물건을 한 번 사면 쉽게 바꾸지 않는 성향이라 AS를 받는 일이 편해야 했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AS를 받는 것이 좀 더 번거로운 노트북 브랜드는 제외했다. 


맥북을 사면 좋은 점은 디자인 관련 작업을 할 때 노트북이 잘 버텨준다는 것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고 있기에 노트북까지 맥북이라면 애플 생태계가 만들어져 생태계의 장점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또, 배터리가 길어서 굳이 충전기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팬이 없기 때문에 조용한 카페에서 갑자기 열을 식히겠다고 위---윙 선풍기를 돌리며 자기만 생각하는 노트북의 입방귀에서 멀어질 수 있다. 반면에, 맥북을 사용하게 되면 더 많이 사용하는 윈도우 데스크톱과 번갈아가며 쓸 때마다 단축키나 기능이 헷갈려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또, 핸드폰/패드/노트북이 애플이라면 생태계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 누군가에겐 안정적인 생태계이겠지만 나에겐 새로운 결정을 막는 자물쇠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갤럭시 북의 경우 비슷한 가격에 더 고사양, 더 많은 용량의 SSD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윈도우 노트북이라는 점에서 사용이 편리하고, 굳이 적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다만,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발열이 심할 수 있다는 점, 팬 소음이 꽤나 크다는 점, 배터리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등의 아쉬움이 있었다. 또, 노트북 커뮤니티에서는 갤럭시 북 3의 발열, 맥북의 그래픽 최적화 등의 이유로 맥북을 계속 추천해 주었다. 그래픽 프로그램을 쓰는 사람들은 다 갤럭시 북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맥북을 사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결국 사기 직전엔 갤럭시 북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그때 내가 내린 결정의 명확한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렴풋이 내 마음을 추측해 보건대 덤으로 주는 1TB 용량과 CPU 사양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가진 예산으로는 맥북 M1 에어를 사거나 갤럭시북프로3를 사야 했는데, 갤럭시 노트북을 살 때는 나름 고사양으로 살 수 있는 가격이지만 그 가격으로 애플 노트북 중에선 M1 에어밖에 못 산다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결정적으로 성능 테스트에선 갤럭시북프로3가 M1보다 더 좋다는 결과를 보기도 했고) 그래서 결국 14인치 갤럭시북3프로를 샀다.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노트북을 고르고 구매하는 과정에서 문득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전자기기를 살 때, 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 갤럭시 라인과 애플 라인으로 명확히 나누어진다. 하지만 나는 핸드폰만 해도 삼성, LG, 애플 모두를 써봤다.  어느 생태계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 고객의 지위를 유지했다고 해야 할까? 무엇 하나에 정착하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끌리는 대로 모험을 택했다. 설사 그 모험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모험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사진 등이 날아가는 일이 있어도 굳이 그 순간 끌리는 것을 샀다. 


이러한 나의 결정을 되돌아보니 전자기기 쇼핑하기라는 별거 아닌 것 같은 결정이지만 이 작은 결정에도 내 가치가 묻어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정적이고 무난한 것을 선택하기보다 그 순간에 끌리는 새로움, 모험을 선택해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나도 모르는 사이 문신처럼 남아 있는 나의 가치였다. 그다음엔 어떤 결정을 또 내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무난하다는 이유로 결정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굳이 해보는 걸 더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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