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열심히 살았다
연말이기도 하고 틈이 조금 생겨서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23년이 되었다. 올해는 작가의 서랍에 글을 버려두지 않으리라... 2022년에 뭐 했나 싶다가도 캘린더를 훑어보니 올해 나름 큰 이벤트들이 있었긴 하다. 역시 생각과 기록의 차이는 크다.
사람들의 진심에 닿아가기
세 번째 회사에서 보낸 시간은 어떤 마음으로 조직(구성원)을 대해야 할지, 팀을 꾸려갈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나름의 신념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안전한 협력 관계 안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특별한 기회를 경험했다. 타인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끔 돕고 싶었고, 이전의 머뭇거리는 태도(리모트 환경이라는 소통의 장벽이 존재)를 버리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나의 이득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을 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소통의 맥락을 설명하고 나의 변화를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의도를 좋게 해석해 주고 힘을 실어주는 구성원들 덕분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과정이 누적되면서 내 역할과 행동에 조금씩 확신을 얻게 됐다. 지금까지 전형적인 한국식 교육을 받고 자라온 사람이라 회사 안에서 무언가를 강하게 밀어보거나 과감하게(?) 소통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덕분에 용기가 생겼다. 당시 모 님께서 민지님은 스우파(한창 유행하던 시점이었음)에 나오는 센 언니들처럼 다 비켜! 하면서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많은 구성원들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반해 그에 비해 문화적 토양을 잘 가꾸지 못하는 부분이 아쉬웠다. 조직문화를 함께 고민해주던 경영진이 퇴사하는 상황까지 오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간절함은 더 커졌다. 사람들이 조직에 기대를 하지 않는 순간 떠나게 마련인데 그들을 머물게 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더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얽혀있는 이슈를 해결해 나가면서 사람들의 진심에 닿아갔던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처하고 싶은 상황은 아니지만 나름의 최선을 다해보았고, 얻은 게 많았던 시간이다.
모험에 모험해 보기
백수 3개월이 되어가는 시점, 슬슬 심심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한자리 숫자의 회사는 처음이었고 초기 멤버 합류 수준이라 약간의 우려는 있었으나 회사는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백날 고민해봐야 답도 없고, 커리어도 인연처럼 여기는 편이라 첫 만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모험에 모험이라고 뜻하지 않게 직무 변경의 기회로도 이어졌다. 이게 가능했던 건 업의 도메인이 HR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비즈니스 모델과 사용하는 용어와 업무의 맥락을 이해하는 작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일의 얼개가 허술했던 상태여서 과정을 촘촘하게 설계해 나가는 과정과 일을 완성해 나가는 데 에너지를 투입했다.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회사의 여러 영역에 걸쳐 도움을 주는 부분에서 나름의 만족스러움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평가가 후하지 않은데, 여기 와서는 신기하게 '오 나 이것도 잘하네?' 같은 생각을 심심치 않게 한 것도 소소한 놀라움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이 모여서 쓸모 있게 된 것도 있을 테고, 아직 팀원이 소수다 보니 각자의 능력 발휘 범위가 안 겹치는 점도 있을 거다. 제네럴리스트로 여러 범위를 담당하는 게 어쩌면 나에게 더 잘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결론은 경험과 구조적 환경의 조합이라 하자. 살다 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는 날도 오는 걸 보며... 좌절의 순간도 오겠지만 극복해 나가면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을 건 파티 꾸리기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던 걸 하고야 말았다. 2021년 들어 혼자의 삶이 매우 잘 맞아서 점점 싱글의 삶에 최적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사람은 타인과 부대끼며 살 때 다듬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함) 커져갔다. 이와 맞물려 문득 모 님의 결혼관인, 결혼 또한 '자신의 가치를 파는 것'이란 점이 부쩍 공감되기도 했고. 신의와 애정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사회적/신체적/정신적 등의 요소도 관계에 영향을 주니까.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니 나에게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결혼을 하던 하지 않던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건 꽤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간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기로 했다.
소개팅 후의 씁쓸함을 맞이하는 순간은 유쾌하지 않지만 100번쯤 시도하기 전까진 포기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지금의 파티원을 만났다. 멘탈이 최악이었던 시점이었고,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소개팅에서 보통 잘 보이려고 하는 태도와는 정반대였다는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다음번 만남으로 이어졌고 '어쩌면 이 사람과 결혼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왔는데, 그 이유는 신기할 정도로 가치관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져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결혼하기 전에는 굉장히 비장한 마음이었는데 막상 결혼의 세계에 들어오니 수능 본 후 앞으로 뭐 하고 살지?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동화처럼 그렇게 둘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제 파티 맺었으니 몬스터 잡으러 갈 일만 남았다.
놓지 않았던 것
-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찾아가 감사 인사를 했다. 인생을 돌아보니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항상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잊지 않고자 노력해야겠다.
- AC2에서 4분의 멘토링을 진행했다. 3개월 이후에도 1분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뿌듯하다. IT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보니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다.
- 기회가 있을 때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지금은 나와 연결점이 없는 것 같아도 느슨하게 맺어둔 관계에서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걸 경험해보니 모든 만남이 소중하다.
- 여행. 예전만큼 신나진 않아서 좀 슬프다 아이슬란드는 책에서 보던 빙하 지형을 원없이 봤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못 가게 되어 임시 체류지로 방문한 터키가 의외로 만족스러웠고, 파티원의 로망이었던 야쿠시마에도 가봤다. 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이 된 섬인데 자연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